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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Oct 11. 2022

집착과 애착이 토해낸 응어리

'헤어질 결심' 영화 한줄평

누군가 미친 듯이 사랑해 봤는지에 따라 영화에서 스며드는 묵직함이 다를 것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닌 무관심이듯, 열병처럼 찾아온 사랑의 응어리는 각자가 다르다.


영화는 사건 중심이 아니다. 서로의 대화와 공감 중심으로 멜로가 이어지면서 138분이라는 시간이 홀린 듯 지나간다. 2시간이 넘는 시간임에도 몰입도가 높고 막상 영화가 끝났을 때는 마지막 잔상을 떠 앉고 영화관을 나서게 된다. 해준(박해일)의 씁쓸함이 묻어 나온다. 마치 하루키 소설을 읽은 것처럼 디테일한 감정표현이 그렇다. 어수룩한 저녁노을을 보면서 탕웨이의 감정이 전염된다. 스산하다. 두 뺨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나 역시 그랬다.


꽃이 피고 지는 연애의 스토리가 불륜으로 담겼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첫사랑의 애틋함처럼, 선을 넘을 듯 말 듯 넘지 못하는 정서에서 아쉬움은 배가 된다. 영화 초반은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2.0였다. 다만 합법적인 형식을 빌렸다. 경찰과 피의자라는 그럴듯한 껍데기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관찰한다. 열중한다. 환자를 돌볼 때도, 숨 쉬는 장면에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도 느껴진다. 기름종이가 유분을 흡착하듯, 집착한다. 스토커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이들의 사랑은 점점 더 치닫는다. 더크레셴도.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조사를 받을 때도 탕웨이의 상처를 찍을 때도 질문을 반복할 때도 그랬다. 특히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의 제3자 시각처리나 가까이서 토해 뱉는 숨소리를 찍는 장면에는 숨이 막혔다. 일본 AV의 asmr을 담은 듯 관객들을 극도의 긴장과 쾌감에 몰아넣는다. 탕웨이의 색계보다 야하다. 색계가 시각적이라면, 청각적으로 상상력을 자극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마주하듯, 깨어나는 본능과 마주했다.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서로의 눈을 보며 건배하듯, 흔들리는 동공 사이로 해준의 양심도 흔들린다. 그리고 붕괴. 그때부터 시소의 무게 추는 한쪽으로 기운다. 탕웨이의 애착이 빚어낸 서사극이 펼쳐진다. 두 번째 남편을 만나면서, 두 주인공이 이포로 이사 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점이다. 무진의 안개처럼 뿌연, 그래서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집착과 애착의 응어리가 쏟아진다. 박해일의 음성 녹취를 듣는 서래처럼, 점점 해준의 심장을 조여 온다.


결국 산 꼭대기에서 사고가 터진다. 격정적인 안면 충돌, 급작스럽다. 추돌과 충돌의 뒤범벅된 사고 현장에서 심장 폭행에 살색 화면을 장식하는데, 아무런 대사 없이 서로 숨소리가 합을 맞춘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시각을 넘어 남녀 주인공의 숨소리는 하나의 교향곡이 됐다.



결국 이 영화는 누군가의 말처럼 '00 없는 사랑 포르노'가 맞다. 육체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서로의 농밀한 감정 교류만으로도 끊적거린다. 아내 정안(이정현)의 말처럼 일주일마다의 관계는 그저 노동이 됐지만, 애착과 집착이 뒤엉킨 그들의 감정 라인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서래의 대사처럼 그녀의 죽음은 미결 사건으로 해준의 심장을 도려냈다. 끈적거리면서 발칙하고 애틋하면서 답답하다.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다. '당신의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다'는 서래의 말은 곧 헤어지지 않을 결심인 것이다. 해준의 가슴에 딱딱하게 굳은 응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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