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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Oct 10. 2022

구절초 '치유의 숲' 품은 수목원


산기슭에 피어도 이리 순결할까요.
그리움이 물들어 저리도 애틋한 향기를 품었을까요.

- 김도연 <구절초> 시 中 -



애틋한 향기를 품었다는 내용처럼 구절초는 가을의 꽃내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을의 여인'이라는 구절초 꽃말처럼 9월과 10월, 가을을 수놓는 대표적인 들국화입니다. 연보라색이기도 하고 하얗기도 한 구절초는 한 올 한 올 자태가 수수합니다. 청초한 듯 호리호리하고 사연이 있는 듯 아픔을 감춘 구절초는 갈기갈기 뻗어 나온 초록색 잎들 사이로 나풀나풀 꽃잎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구름 위를 걷는 듯 방문객들의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소나무 숲길 따라 솔향을 맡으며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 꽃밭에서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요. 사계절 내내 자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꽃들이 낭자한  '사계정원'부터 허브향과 방향식물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작은 유리온실 마음 치유소'까지 율곡수목원 곳곳은 치유의 숲입니다.



한뜻으로 수목원 조성…'구절초 치유의 숲' 마련


율곡수목원 입구를 지나 소나무가 우거진 '침엽수림'에 오르면 구절초 '치유의 숲'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즈넉하게 펼쳐진 구절초 너머로 울창하고 그윽한 산림과 임진강이 보이는 정경이 펼쳐져 있는 겁니다. 율곡수목원을 대표하는 꽃답게 곳곳에 피어난 구절초를 보며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이용객들의 편의에 맞게 배치된 평상에서 한가로이 산림욕도 즐길 수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은은한 구절초 향기가 마음을 치유해줍니다.


지난 2008년 계획 이후 시민과 군인들이 한뜻으로 가꾸며 지난해 율곡수목원이 정식 개방됐습니다. 수목원 내에만 21개의 주제원에 1천300여 종의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시민들이 70그루의 나무를 기증하며 자발적인 참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관군의 구슬땀이 모여 결실을 맺었는데요, 율곡수목원만의 치유 프로그램들도 한창입니다.



■ 아홉 번 장원 급제한 율곡의 이야기 '구도 장원길'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무심한 가을 하늘 사이로 은빛 반짝이는 억새가 무성하고, 억새 한 올 한 올들이 나풀나풀 바람에 나부낍니다. 귀를 간지럽히듯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억새가 무성한 진입로를 지나면 '구도 장원길'이 보이는데, 율곡 이이의 이야기가 담긴 이곳은 2천700미터 길이로 장사진을 이룹니다.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아홉 차례 장원급제에 오른 율곡 이이의 기운을 받으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곳곳에서 모인 수험생들도 '구도 장원길'을 오릅니다.  


친구들과 우정을 나눈 '지우정'과 성취의 기운이 담긴 '구도 장원종'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구도 장원길'의 둘레길을 따라 도달한 전망대에서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조망하고 대자연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율곡 수목원은 전국 명소로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2천 명 넘게 시민들이 찾고 있습니다.



■ 유해만 돌아온 군인들, 참혹함에서 꽃 피운 수목원


수목원을 지나다 보면 전쟁의 참상이 엿보입니다. 곳곳에는 유해발굴 과정들이 보이고 참호의 흔적들도 있습니다. 북한과 인접한 곳으로 군부대의 도움으로 수목원 부지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수목원 꼭대기에 올랐을 때 감회가 새로웠는데, 산봉우리 너머로 보이는 곳이 북한 땅이었습니다. 꽃 같은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킨 순국선열들의 숨결도 느껴졌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다던 강태수 일병의 친필은 그렇게 가슴 한편을 쓸어 내렸습니다. 살아서 돌아가겠다던 청년의 목소리는 허공에 메아리가 됐을 뿐 고국땅을 밟은 것은 그의 몰골과 부분적으로 돌아온 그의 뼛조각뿐이었습니다. 아흔이 넘은 이등병은 국가 원수에게 거수경례를 했고, 본인만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분단된 조국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무심히 피어있는 구절초 사이로 군인들의 유골들이 보이고 갑자기 울려 퍼지는 아리랑 노랫가락에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작가가 궁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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