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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Nov 19. 2022

시지프 신화와 복사집 아저씨

노량진 언저리에서


참다운 노력이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며 괴이한 식물들을 관찰하는 일이다.

- 시지프 신화 中 -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비탈길. 등이 굽은 노인이 보입니다. 타들어가는 햇볕이 피부 속을 파고들고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됐습니다. 몸덩어리만한 돌덩이를 이고 있는 노인 표정은 일그러졌고, 까맣게 타들어간 피부 가죽들 사이로 갈비뼈만 앙상합니다. 운명이라는 돌덩이는 한없이 무거워만 보입니다. 생각도 없고 희망도 없고, 헐떡거리는 숨소리만 들어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보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입니다.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은 겁니다. 죽을 때까지 되풀이해야 합니다.


부조리였습니다. 삶에 대한 부조리. 알베르 카뮈는 인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들 삶이란 무의미한 일들이 반복되고 피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운명처럼요. 다람쥐 쳇바퀴 같고 희망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살아야 할까요.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끊임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카뮈는 누구보다 부조리한 인생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으로 어릴 때 돌아가셨고, 가난을 달고 살았습니다. 결핵에 걸리며 대학 진학은 일찌감찌 포기했고 자동차 수리공 등 허드렛일을 전전했습니다. 그에게 삶은 무거운 돌덩이와도 같았지만, 그는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덧없는 조각들을 맞춰갔습니다. 부조리한 인생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 노량진 수험생도, 우리 인생도 부조리의 연속


인생이란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가혹합니다. 재미없는 일들이 반복되고 어떨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저 역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노량진 수험생일 때는 매일같이 7시에 일어나 8시까지 독서실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침 2시간 동안 50문제의 회계를 풀고 하루에 11시간씩 빼곡하게 공부량을 채우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10여 년 넘게 이어진 무의미한 반복이었습니다.


컵밥 한 잎에 청춘을 어묵 국물 한 모금에 그날의 피로를 씻어 내렸습니다. 저녁 8~9시에도 노량진 컵밥 거리는 환하게 밝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모인 수험생들로 북적거립니다. 그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일까요. 하루하루 기약 없는 돌덩이를 옮기는 수험생들이 보입니다. 부조리였습니다. 세상은 앞으로 가는데, 저 혼자만 뒤쳐지는 느낌.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한 없이 작아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누군가의 병풍이 된 기분이었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습니다. 언제쯤 끝이 보일까요. 우리들의 인생도 비슷할 겁니다. 돌덩이를 산꼭대기까지 올리는 것을 반복하듯,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겠죠.



■ 부조리한 삶에서 희망을 엿본 복사집 아저씨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눈빛 속에서 작은 행동 속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노량진에는 어느 복사집이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일주일에 하루 쉬는 곳이지만, 아저씨는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숱하게 복사를 하면서 지문도 닳아 없어졌지만, 인생에 감사한다는 아저씨. 수년간 복사집을 하면서 수백 명의 합격생들이 거쳐갔습니다. 모의고사부터 시험 안내표까지 잉크가 마를 겨를도 없이 분주한데, 그곳을 지날 때면 정겨운 잉크 냄새가 납니다.


다람쥐 쳇바퀴같이 무의미한 일이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의미도 있습니다. 돈을 주고받으며 끝날 수도 있지만, 합격생들은 으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웃고 울고 슬프고 즐겁고 노량진 수험생들의 희로애락이 복사집에 깃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 역시 합격생들을 보며 희망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의미하게 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치가 있었던 겁니다. 제가 한 문제 차이로 떨어져 낙담하고 있을 때, 합격생의 이야기를 하며 힘내라고 위로 했습니다. 2천 원 남짓 되는 책 제본비를 안 받겠다고 하셨지만, 괜찮다고 전하며 복사집을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인생은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카뮈는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시지프에게 삶의 무의미는 인생 결말이 아닌 시작이었던 겁니다. 마침표가 아닌 출발점. 자살로 부조리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를 받아들이며 이를 극복했습니다. 시지프의 카뮈는 바위의 카뮈보다 단단해졌습니다. 프랑스 이주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알제리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카뮈. 가난이 그의 숨통을 조일 듯 쫓아왔지만 그는 마음까지 빈곤하지 않았습니다. 부조리한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간 카뮈는 국적과 계층, 철학 속에서 방황하던 이방인의 굴레를 벗어던집니다. 그리고 1957년 카뮈는 역대 두번째로 최연소 노벨문학상을 받습니다.   


어린 시절 위로 내리쬐던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나는 원한이라는 감정을 품지 않게 됐다.

- 카뮈 中 -




<작가가 궁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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