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위해 한평생 몸담았지만, 끝은 허무했습니다. 권고사직, 그 한단어가 수십 년 직장생활을 요약했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 구두창에 땀이 나도록 뛰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회사를 향했던 열정노동과 재능기부도 물거품이 됐습니다. 드라마보다 현실 같은 이항제 비서실장 이야기입니다. 진양철 회장과 순양일가를 국내 1위 대기업으로 우뚝 세웠지만, 피비린내 나는 '형제의 난'에서 작렬하게 전사합니다. 그림자 실세, 조직 2인자, 회장 오른팔 등 그를 따라다니던 이름들은 한낯 수식어에 불과했습니다. 조그만 땅이라도 주인답게 살고 싶다던 고백이 허공에서 메아리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이항제는 진성준(첫째)을 향한 최후의 반격을 시작합니다. 마름(소작농 관리자)으로 태어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본인 의지대로 주인을 선택했습니다. 순양그룹 비자금 문서를 막내아들(송준기)에게 건네며, 전쟁의 흐름을 바꿔버립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 49대 51 상황에서 판도를 뒤집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비서실장은 해결사 킹메이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순양 일가는 송준기에게 패륜아 프레임을 씌우며 전투에서 이겼지만, 결국 전쟁에서는 지게 됐습니다. 공격과 수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듯, 그래서 사람이 중요합니다.
■ '형제의 난' 해결사...무한신뢰에 감사한 비서실장
수년 전 경기도 양평군 어느 강변에서 싸늘한 변사체가 발견됐습니다. 신문 헤드라인을 연이어 장식한 주검의 주인공은 롯데그룹 이인원 부회장이었습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 최측근 오른팔로 40년 넘게 한솥밥을 먹었습니다. 롯데 산증인이었죠. 신동주와 신동빈 '형제의 난'을 매듭지을 핵심 열쇠이기에 검찰도 서둘러 조사에 나섰지만, 오히려 탈이 났습니다. 횡령과 배임으로 조사를 앞둔 이인원 부회장은 유서 한 장만 남기고 목을 매 숨진 겁니다. 짧은 유서. 롯데그룹에 횡령과 배임은 없다며 신동빈 회장 경영승계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씁쓸한 상황이었습니다.
죽어서까지도 충절을 지킨 이인원 부회장. 자신을 믿고 신뢰한 롯데 일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겁니다. 이인원 부회장은 롯데일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보기 드불게 실질적인 2인자였습니다. 롯데그룹 심장부인 정책본부 수장으로, 총수 일가는 물론 경영까지 총괄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재계 7위의 롯데그룹을 당시 재계 5위로 도약시킨 핵심 인물로 거론됩니다. 그만큼 그룹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웠고실력도 검증받았습니다. 신격호 회장의 총예를 받다가 '형제의 난' 이후 신동빈 회장 쪽으로 노선을 갈아탔는데, 신동빈 회장 역시 그의 자살 소식에 버선발로 뛰어와 울부짖었다고 전해졌습니다.
■ '용의자 딜레마' 배신 vs '동기부여 이론' 연대
부정승계. 횡령과 배임. 뇌물 수수. 기업 일가를 조사하던 검찰들은 똑같은 결과를 내놨습니다. 삼성 그룹부터 롯데 일가까지 데자뷔처럼 스쳐갑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검찰조사가 이뤄졌고, 그때마다 신문 1면을 잇따라 장식했습니다. 비자금 문서부터 페이퍼 컴퍼니까지 수법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경제학에 나오는 '용의자 딜레마'처럼 파레토 최적상황이 있지만, 배가 아파서 그렇게는 안됩니다. 어제의 형제가 오늘 적이 되듯 고발과 고소가 빗발칩니다. 박근혜 게이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국민연금 외압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이어졌습니다. 기업이야기만은 아닙니다.
40년 가까이 MB집사를 자처한 김백준, 박근혜 정부 왕실장 김기춘 씨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용의자를 자처했습니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 무한신뢰를 받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본인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용의자 딜레마를 뒤집는 동기부여 심리학입니다. 매슬로의 동기부여 이론 중 존경의 욕구가 있는데, 자신의 신념을 인정받고 가치연대가 이뤄지면,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겁니다. 난세가 되어야 영웅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낭떠러지에 다다르면 사람 본심이 나옵니다. 옳고 그름과 정치이념을 떠나 사람대 사람으로 말입니다. 여야 할 것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