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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Jan 16. 2023

[감상문] 규칙과 편견 쌈 싸 먹은 세계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당신을 구하러 우주에서 왔습니다.



남편 눈빛이 돌변하고, 현란한 무술이 이어집니다. 배가 고팠을까요. 립밤을 양갱처럼 으깨먹던 남편이 버려진 풍선껌을 입속으로 집어넣습니다. 영화 시작 5분 만에 판이 뒤집힙니다.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던 평범한 일상이 시공간 변화와 다중인격, 가상현실을 넘나드는 '버스점프'로 탈바꿈했습니다. 신비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버스점프'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일까요. 다리 3개 달린 빌런들이 공중부양을 하며, 총에 맞은 핏자국이 사실은 유기농 케첩이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알파버스. 이해되지 않는 개념들이 속사포 랩처럼 쏟아집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영화를 관통하는 한줄평입니다. 알파 레이먼드가 양자경을 구하러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폭력과 배신으로 점철된 현실세계를 정화하는 세계관입니다. 대척점에 '조부 투파키'가 있었죠. 객관적 진리에 대한 믿음과 도덕관념이 없는 빌런입니다. 다중 우주의 무한한 힘과 지식을 자유자재로 씁니다. 귀여운 아기돼지와 함께 등장하고, 일본 갸루상 화장을 뒤집어쓴 저 세상 텐션을 갖고 있습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도덕적 이야기를 영화는 철저하게 B급 코드로 풀어냅니다. 성인용품으로 경찰 머리를 망치질하고, 날아오는 총알이 눈알로 돌변하며 도덕과 윤리 선생님들을 물 먹였습니다.  



자아를 도는 소우주, 편견을 깬 대우주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이 돌듯, 양자경을 중심으로 다중 우주가 움직입니다. 자아를 도는 소우주와 시공간을 초월한 대우주입니다. 느닷없이 이혼 서류를 들고 온 남편과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 한 딸, 이들 모두가 양자경에게는 원수입니다. 정해놓은 틀과 상자 안에 스스로를 가둔 양자경. 혼란과 혼동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영화는 한 장면을 반복합니다. 호적을 파버린다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며 남편과 택시에 올라탄 상황. 그때 일이 파노라마처럼 반복되며 자신을 후회하죠. 가지 않은 길을 갔다면, 영화배우로 성공했을 겁니다. 그리고 상상이 현실이 됐습니다. 영화 시상식에서 말쑥한 양복차림의 레이먼드와 마주합니다.  


진심이 아니라면 그런 행동하지 마. 당신과 빨래방을 하며 세금을 내고 살아도 행복했을 거니까. 레이먼드는 예상 밖의 말을 하며 떠납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며 대우주를 돌았지만,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언제나 후회의 연속입니다. 양자경은 성공했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자신과, 팍팍한 현실 속에서 과거에 저당 잡힌 자신을 발견합니다. 결국 파랑새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죠. 자신 주변을 행성처럼 돌고 있는 딸과 남편이라는 원수를 부둥켜안으며 자신과도 화해합니다. 탄생부터 지금까지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자신을 파멸로 이끈 원수는 바로 자신이라는 점도 알게 됩니다.



영화와 현실 한계를 뛰어넘은 '버스점프'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며 능력을 얻는 '버스점프'가 영화 안팎에서 독특하게 나타났습니다. 영화는 진부한 클리셰를 엿 바꿔 먹으며 기존 틀부터 깨버렸습니다.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시공간과 엿같이 귀에 착착 달라붙는 시나리오와 특수효과가 그렇습니다. 다중 우주 세계를 아이디어 하나로 돌파했는데, 9명의 특수효과 참가자 중 전공자는 단 한 명이었습니다. 국세청에서 창고로 들어가는 장면과 여배우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장면 모두 슬로 모션으로 촬영한 뒤 빠르게 테이프를 돌렸습니다. 몇 명이서 일당백 버스점프를 하며 할리우드에 fuck you를 날립니다.  


배우부터 감독 이야기도 영화 같습니다. 레이먼드 남자 배우는 인디아나 존스 아역배우로 무술감독을 하다가 20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습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오디션에 합격하며 노익장을 과시했죠. 다니엘 쉬이너트와 다니엘 콴 두 감독 이야기도 신선합니다. 영화 '스위스 아미 맨'부터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까지 시종일관 화장실 유머, 병맛개그로 일관했습니다. 휴지 없이 화장실을 간 기분이지만, 영화가 끝난 뒤 찝찝함 보다는 아련함 밀려옵니다. 가족의 애틋함부터 가슴 뭉클한 휴머니즘으로 장식된 영화. 그래서 영화보다 현실 같고 '버스점프'같이 현실감각이 떨어지지만 뭉클한 감동이 있는 '모든 것은 모든 장소에 한 곳에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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