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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Jan 29. 2023

다나카의 뚝심과 '개콘' 폐지

노량진을 떠나고


다나카 유키오. 흥남 엔터 소속의 28살 일본인입니다. 샤기컷과 울프컷이 섞인 가공의 일본인으로 지난 임인년 대한민국 곳곳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유튜브부터 지상파 예능 프로까지 종횡무진했고, 음악 콘서트부터 팬 사인회까지 열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인플루언서로 예능부터 음악, 엔터까지 섭렵한 생태계 교란종입니다. 꼬ㅊ미남, 제비꼬ㅊ를 연발하며 방송통신위원회 심의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가 하면, 테슬라 경영인 일론 머스크 성대모사를 하며 자신도 화성(경기도)에 가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한때 도지코인에 수천만 원이 물려 을왕리에서 호두과자도 팔았다고 합니다.


남모를 사연도 많았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지명을 한 번도 받지 못했지만, 뚝심 하나로 버텼습니다. 학창 시절 학교 선배 조세호로부터 개그맨 권유를 받았는데, 조세호가 자신의 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책임지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김경욱과 조세호는 그 후 SBS 개그테스트 대상을 받으며 공채 6기 개그맨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인생은 내리막길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동료들의 부상으로 엑스트라를 전전하다가 드디어 개그맨 22년 차에 빛을 봤습니다. 다나까 이름만큼이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다 낚으며 웃음사냥꾼, 예능치트키, 뚝심의 아이콘으로 거듭났습니다.



■ 개콘 폐지 이후, 예능 춘추전국 시대 열렸다


희극인들의 꿈과 희망, 오늘과 내일이 함께 숨 쉬던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1999년부터 무려 21년간 방영된 TV 프로그램이자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예능 등용문이었습니다. 갈갈이 패밀리 옥동자부터 영계백숙 정형돈, 먹방요정 김준현까지 수많은 코미디언을 배출해 낸 최장수 코미디 프로. 한때 최고 시청률 37%까지 찍으며 지역과 계층, 세대를 아우르는 전 국민 안방극장이었습니다. 활광어처럼 찰진 유머와 파닥거리는 플래시몹 개그를 선보인 웃음 사냥꾼들은 웃음 사망꾼으로 그렇게 수의를 입었습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무대부터 객석까지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개콘 이후 코미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 무색해졌습니다. 개그맨들이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유튜브 플랫폼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예능 춘추전국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구독자수 240만 명의 숏박스부터 피식 대학, 빵송국까지 개그맨 하나하나가 걸어 다니는 중견기업이 됐습니다. 쇼츠부터 릴스까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며 월화수목금금금 하루하루가 바쁩니다. 간절하면 통합니다. 적어도 실력이 없어서 못 떴다는 지금 핑계가 됐습니다. 대한민국 예능 생태계가 그렇게 진화했습니다. 뚝심으로 밀어붙이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 "못난 나무가 조상 무덤을 지킨다"


이틀 전 친한 MBC 기자 형과 술 한잔 했습니다. 돈 없고 배고픈 수험생 시절을 생각하며 신촌 밤거리를 걸었습니다. 영화 '신세계'의 황정민과 이정재 관계와 비슷할 겁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기자 지망생과 아나운서 지망생으로 처음 만났는데,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옛날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혁명가를 운운하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던 기자 지망생부터, 현란한 말솜씨로 거대 담론을 쏟아내던 현직 기자까지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습니다. 그때는 한없이 높아만 보였지만, 지금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기자 형이 덧붙였습니다. 자신은 뚝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며.


그 형도 사연이 많았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삼수에 사수를 거쳐 군대를 제대한 이후 대학에 들어갔고, 언론사 스터디에서 친구들이 합격하는 것을 묵묵히 응원하며 늦은 나이 30살에 MBC에 들어갔습니다. 기자생활도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광 뿐인 상처를 앉고 파업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념과 파벌, 야망 그 언저리에서 갈기갈기 찢긴 조직을 지켜보면서, 사람에 환멸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묵묵하게 버텼기에 이달의 기자상, 방송 기자상을 휩쓸며 지금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너도 뚝심 있게 밀어붙이라고 응원했습니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고.



내가 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분명 기회는 온다.

- 다나카 김경욱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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