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악역 전문배우. 조선족 사채업자부터 뒷골목 조직폭력배, 악랄한 일본 순사까지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움푹 파인 미간주름과 희번덕거리는 표정을 보고 있자면 간담이 서늘합니다. 이기죽거리는 말투부터 밉살스럽게 지껄이는 행동들이 되바라져 보입니다. 촬영장에서 베베 꼬며 짝다리를 집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네요.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동네 양아치를 데려다 놓았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립니다. 그의 신들린 메서드 연기로 허성태는 범죄도시부터 오징어게임까지 굵직굵직한 작품들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였습니다. 부산대학교를 졸업한 허성태는 LG전자 해외영업부서부터 대우조선해양 기획조정실까지 튼실한 산업 일꾼이었습니다.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과장 진급을 앞두고 그는 돌연 사표를 씁니다. 34살. 사표를 출사표라 읽으며 연기를 시작했죠. 기적의 오디션에서 연기에 문을 두드렸고, 충무로에서 단역을 전전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습니다. 집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으며 경매까지 넘어갔습니다. 피눈물을 쓸어 삼키면서 뚝심으로 밀어붙인 연기가 10년 만에 빛을 봤습니다. KBS 연기대상에서 남자 조연상을 받으며,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 귀 싸대기 맛을 알았던 청춘들
영화 '밀정'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전해집니다. 허성태 배우가 감독님과 송강호 배우를 3박 4일 동안 설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나리오에 없었던 귀싸대기 장면은 그렇게 추가 됐습니다. 한 대 한 대 맞을 때마다 허성태 배우는 대선배 송강호 배우를 독려했습니다. 더 세게, 더 강하게. 그렇게 8대의 불꽃 싸대기를 맞고 얼굴에는 붉은 훈장을 달았습니다. 귀싸대기를 맞으면서 허성태 배우는 이렇게 인생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누가 보면 가학적 성애자인 사디스트로 착각하겠네요. 열정에 감복한 감독님은 드디어 OK 사인을 냈고, 송강호 대배우는 신인 배우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고 합니다.
저 역시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사표를 출사표라 읽던 시절입니다. 친한 형과 KBS 언론사 스터디가 끝나면 낮술을 먹었습니다. 같이 합격하고 귀싸대기를 한 대씩 때리기로 약속했습니다. 평생 친구가 되기로 했지만, 아쉽게도 붉은 훈장을 달지는 못했습니다. 호주머니에 천 원짜리 몇 장에 김밥 한 줄로 배를 졸였던 시절. 때마침 돈이 없어서 라면을 못 먹었습니다. 그 형은 서강대 로스쿨을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자퇴했습니다. MBN 면접장에 같이 들어갔고, 동기가 됐고 친구가 된 형입니다. 먼 길을 돌아 지금은 어느 방송사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3년 동안 연락을 끊었습니다.
■ 인생은 알고 가지 않는다, 믿고 간다
핸드폰을 바꾸고 다시 번호를 입력하던 손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옛날과 달리 변해버린 현실에 명함에 그리고 제 자신에 그랬습니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KBS 합격이 끝이었을까요. 아닐 겁니다. 또 다른 시작이었겠죠. 인생은 여러 문을 거친다는 미생의 이야기처럼요. 한 수가 모자라서 집을 짓지 못하지만, 오히려 한쪽 집을 지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미생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렇더군요. 누가 좀 알려주면 얼마나 편할까요. 먼 길을 돌아보니 그런 듯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믿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집을 지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묘수라 생각했던 경험들이 자충수가 됐고, 실패하고 쓰라린 경험들이 인생의 자양분이 되는 것처럼요. KBS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 형이 그러더군요. 만약에 우리가 둘 다 공영방송에서 떨어지더라도 이런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자고. 저는 그런 경우는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렇게 KBS에서 떨어지고, 세상은 열정과 노력만으로도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미생이겠죠. 하지만 좌절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 더 불꽃 귀싸대기를 장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