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원 Jul 11. 2023

의무기록을 보다가

병원에 처음 방문한 환자를 신환이라고 한다. 근무하는 곳은 매일 신환이 꽤나 있는데, 매일 환자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환자분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병원 방문을 하지 않는다. 보통은 치료 종결을 함께 상의해서 결정하자고 설명한다. 그런 경우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상의하고,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결정을 한다. 다만 그렇게 치료 종결을 단계적으로  하는 경우가 비율 상 많지는 않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는 갑작스럽게 치료 중단을 하시곤 한다. 


다시 병원을 찾아오시는 분들께 여쭤보면  그 이유는 다양하다. 주로   괜찮아서, 증상이 사라지고, 약을 먹을 필요성이 적게 느껴져서 치료를 중단하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아니면 지역을 옮겨서, 또 한편으로는 약물이나 치료자에게 의지하는 것에 반감이 생겨 스스로 이겨내보고자 하는 마음에 병원 오기를 중단하기도 하시는 것 같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도 여전히 상당히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처음에는 증상이 너무 심해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원에 다니시지만,  증상이 어느 정도 나아지고 이제 스스로 조절해 보자고 권유하는 가족의 권유에 병원 방문을 중단하시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정신과 약을 오래 먹으면 몸에 장기적인 부작용이 생긴다거나, 멍해지고 바보가 된다고 믿고 계시는 분들도 꽤 많다. 


'우울증 그게 다 마음의 문제지,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냐, 나 때는 먹고살기 바빠서 우울할 틈도 없었는데 요즘 애들은 배가 불러서 우울증에 걸린다. 나처럼 운동하고 산책하고 친구들 만나고 하면 다 건강하다'라는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심리적인 불편감이나 우울감이 있을 테지만, 그분들은 아마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또 받아들여지는 것이 힘든 환경이셨을까. 그런 경우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괜찮다', '나는 문제가 없다,며 자신의 심리적 불편감을 부정(denial) 하며 지내오셨고,  우울증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우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병원을 찾는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임에도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감정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의지로 이겨내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그것이 대단하고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냥 응원하기만은 어렵다.

 

 예약일에 방문을 하지 않으시면, 바쁜 일이 있으신가,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다 문득 어느 날 생각난다. 요즘 잘 지내고 계시나, 그 뒤로 방문을 안 하고 계시는구나.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정신과는 일반적인 진료 장면보다 좀 더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 보니 나도 이런저런 마음이 들고,  그러다 보면 괜히 나 혼자 미련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하긴 나도 늘 다니던 미용실에서 다른 미용실로 옮겼을 때, 괜히 마음에 걸려 그쪽 상가 앞을 피하면서 다니기도 했다. 그것이 정당한 소비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환자분들도 비슷한 마음이시려나. 진료도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스타일이 맞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곳을 찾아가셨나. 그런 경우라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최근엔 어쩌다  6개월치 진료기록을 훑어볼 일이 있었다. 그러다 이런저런 걱정이 커졌다. 모든 치료의 마무리는 완치라고 생각이 되고, 그래서 어느 정도 증상이 사라져서 병원에 방문하지 않고 혼자서 독립적으로 지내시는 것이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신과 질환은 대부분 만성질환에 속하기도 하고, 또 성격적인 부분은 흔히 바뀌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자살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혼자만의 평안을 위해 다 잘 지내실 것이라고 편안하게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자살 사고나 계획에 대해 보고하시는 분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경우가 꽤 자주 있다. 


지금 병원에서 근무 중의 기억. 오랜만에 병원에 방문하셨고,  나는 처음 뵙는 분이었다.  최근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아주 구체적인 자살사고를 가지고 있는 데다, 최근에 심각한 자살시도 경험도 있어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다. 환자분이 문득 말씀하시길, '정신과 선생님들은 환자가 한 명씩 자살할 때마다 별을 단다고 하죠?'라고 물어봤다. 별을 단다는 표현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무슨 말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환자분은 지금은 괜찮다며 뭔가 해방된 듯 보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더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분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신다고 하셔서 그 뒤로 뵙지 못했는데, 여전히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보호자의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