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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Sep 01. 2021

두려움



 얼마전 핸드폰을 바꾸고 사용하던 핸드폰을 중고장터에 올렸다. 새로운 핸드폰으로 마음을 빨리 옮기고 싶어서 매력적인 가격으로 책정했다. 사진은 자세히 찍고 설명글은 간략히 적었다. 저녁에 아이를 재우는데 바로 구매 가능한지 연락 왔다. 어두운 방에서 아이를 조심히 재우던 터라 상대의 정보를 잘 확인하지 못하고 약속을 잡았다. 아이가 잠들지 않아 8개월인 둘째를 아기띠에 안고 거래 장소로 나섰다. 거래장소로 나서는 길, 상대의 판매 내역을 확인했는데 모두 핸드폰을 판매하는 게시글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검은 승용차에서 큰 두 남자가 내렸다. 모두 손목까지 문신을 했고 덩치가 컸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핸드폰을 살펴봐도 되는지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하자 핸드폰을 가져가서는 15분 넘게 기능을 확인했다.  번인현상을 확인해야 한다고 했고, 카메라를 테스트 한다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새로 붙여놓은 강화유리를 떼도 되는지 내게 물었다. 나를 앞에 두고 형님이라는 사람과 오랫동안 통화하기도 했다. 핸드폰을 구매할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시간을 끄는 행동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자리가 불편해서 거래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그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결함을 주장하며 생때를 썼다. 금액을 깎아서 거래하자고 협박하기도 했고, 내가 동의할 수 없다고 하자 자신의 수고비와 교통비를 돌려받아야겠다고 이야기했다. 나중엔 나를 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동안의 중고거래는 주로 아이의 육아용품을 거래 했던 터라 이런 일이 생길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보통 반갑게 인사하고, 수줍게 물건과 돈을 교환하고 덕담을 나누고 헤어지는 경험이었는데. 거래시 덤으로 핸드폰 케이스를 제공하려고 주머니에 넣어둔 것이 무색했다. 결국 거래를 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헤어졌으나 마음이 불편했다. 헤어지면서도 내게 저주를 퍼부었다. 이것이 모욕감인가, 8개월 아기랑 밤에 나가서 무슨 일을 당한건가 싶기도 하고 속상했다.


  처음 병무청에서 일하던 때에 수검자와 문제가 생겼던 일이 있었다. 병무청에서 시행한 심리검사에서 충동 조절 관련해서 어려움이 발견되어 재검기간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그 수검자는 이미 비슷한 문제로 소년원도 다녀왔던 과거력이 있었고, 중학생 시절 본드를 상습적으로 했던 수검자였다. 필요한 사항을 안내했는데 다짜고짜 내게 화를 냈다. 충동을 조절하기 어려운 환자이니, 그래서 현역 입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병원 치료를 받고오라고 안내한 것이니, 이렇게 화가 내는 것이 이해는 되는데, 앉은 자리에서 속절없이 폭언을 듣자니 한심했다. 그 날 수검이 끝나고 보좌관님께 부탁해 나와 수검자 사이에 아크릴 벽을 세워 물리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기 어렵도록 구조를 변경했다. 


  임세원교수님이 돌아가셨다. 전문의시험을 준비중이던 때에 그 소식을 들었는데 황망해서 한동안 손에 책이 잡하지 않았다. 나는 사회가 어떠해야한다고 주장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 하루가 무사하면 좋겠다고, 그래도 즐거운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출근하는 소시민에 가깝다. 그런 내게도 당시 사건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외래에 방문한 자신의 환자가 흉기를 휘두르는데 다른 직원을 먼저 대피시키다 본인은 피하지 못하셨다는 일, 그럼에도 유족이 편견이나 차별없이 모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일.


  이런 일은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던 기간에도 종종 일어났다.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곳에서 대면한 상대의 위협을 받을때 동물적인 두려움이 느껴진다. 왜 그 사람은 힘을 내세워야 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은 살아왔는지, 알아보고 예측해보려고 하지만 힘들기도 하다.  나는 적합한 사람인지 회의감이 드는 때도 있다.  여러모로 정신과는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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