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원 Feb 27. 2022

복무를 마무리하면서

 복무의 마지막, 제주도에 집을 구해 한 달 동안 지내고 있다. 아이들은 마치 잠을 자는 것이 아까운 것처럼 새벽에 아내와 나를 깨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는 생각에 피곤하지만 마냥 싫지만은 않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어먹고, 고양이 밥을 준다. 한 달은 여행이라 생각하기에는 길었고 생활이라고 생각하기엔 짧았다. 처음엔 집 안에서 일을 크게 벌리지 않겠다고 식사도 밖에서 해보려고 했었는데 금방 사 먹는 음식에 물리게 되어 집에서 주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근처의 수협 위판장에서 회나 한치 같은 해산물을 자주 사다 먹었다. 집에 가면 어려울 거란 생각에 더 의식적으로 자주 방문했는데, 한동안은 해산물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오전엔 근처 오름이나 관광지를 둘러보고 오후엔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주변의 테마파크를 열심히 다녔는데 요즘은 조금 시들해져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처음에 배를 타고 도착해서는 막연히 한 달이 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며칠 남지 않았다. 뭘 해야 할지 남은 날을 적어두고 이제 꼭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한다. 냉장고 안의 음식이나 물도 떠날 날을 맞춰 계산했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정말 제주에 정착해보면 어떨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한 달 생활과 거주는 또 다를 것 같다. 아쉬울 때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혼자 비행기를 타고 다녀왔다. 오랜만에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 오랜만에 글도 써보려는 마음도 생겼다. 


 수련 받던 때에 교수님이 나중에 복무기간 동안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때엔 별생각 없었다. 그때 취미로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있던 때라 막연히 3년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다음 레벨로 올라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가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 시간을 내가 충실히 보내고 있는지, 나중에 내가 3년 동안 뭘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복무기간 중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이전의 생활에 비하며 비교적 한가한 시간이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주호 100일 잔치가 끝나고 훈련소에 가게 되었는데, 2년 차 말에 태어난 승하가 벌써 돌이 지났다.


  결혼 전에는 알지 못했다. 오랜 시간 병원에 근무하고 몰두하는 것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에는 나 자신의 일만 생각하면 됐을 때라 마음이 가벼웠던 것 같다. 요즘은 그때와 같이 일에 매진하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다. 한때는 삶의 질에 인생의 비중을 두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오히려 요즘은 마음껏 일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이 부럽게 생각된다. 시간이 채 몇 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예전부터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좋아했다. 누군가 좋아하는 영화를 누군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실제로도 몇 번 반복해서 보곤 했다. 마음의 어떤 부분은 꼭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진 것처럼 아무리 생각해보려 해도 생각나지 않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눈에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맹점이 있는데 마음에도 맹점이 있는지. 이상하게도 내가 그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얼마 전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해주는 영상을 들으면서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마음이 절절해지더니 눈물이 나서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영화인데 영화 본지도 오래되었으니 영화 줄거리나 들으면서 운전할까 하는 안일한 마음이었는데 어떤 부분이 내 눈물샘을 자극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잘 때가 가장 예쁘다는 말이 있던데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이 깨어있는 동안엔 이런저런 요구를 들어주느라 여유가 없어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어려운데, 아이가 자는 때가 되어야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한다. 언제 이렇게 컸나, 낮에는 많이 징징댔지만 열심히 성장하려고 애쓰고 있구나, 혹은 원래 속눈썹이 이리도 길었나 하는 생각들. 


꿈같은 병무청 생활이 끝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두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