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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Oct 07. 2021

적당히 좋은 아빠

 9개월 된 둘째가 새벽에 일어났다. 승하는 보통 밤에 잘 자는 편이지만 갑자기 3시에 깨어나서 방구석구석을 탐색했다. 승하를 다시 재우려고 몇 번 시도하다 실패한 아내가 나를 깨웠다. 나름의 방식으로, 분유도 주고 공갈젖꼭지도 주고 어르고 달래서 한 시간 만에 겨우 다시 재웠다. 새벽에 이런저런 애를 쓰고 나니 잠이 달아나서 다시 잠들기가 어려웠다. 이제 잘 자나 얼굴을 보고 있는데 승하가 갑자기 즐거운 듯 웃었다. 아이고 한 시간 고생했는데 다시 시작인가 마음 졸였는데 다행히 잠꼬대였다. 9개월 아이가 자면서 까르르 웃을 만큼 즐거운 꿈을 꾸는구나. 내 생각에 승하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작은 인간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꿈을 꿀까 궁금하다.


   결혼 전 수련받던 시절에 소아정신과 교수님께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 있다. 아이를 보는 때에 마치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인 듯 대하라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결혼 전이고 아이도 없었는데 그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혼자 속으로 상상했다. 멀리서 온 손님처럼 아이를 대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 하고. 예전에 자취를 하던 때 멀리서 대구에 살던 친구가 놀러 온 적이 있다. 멀리서 오는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서 직접 족발을 만들기로 했다. 친구가 오기 전날 정육점에서 족발을 사서 밤새 핏물을 뺐다. 다음날 필요한 재료들을 넣고 4시간을 삶아 같이 먹었다. 작은 자취방에 족발 냄새가 며칠이나 배었다. 그럼에도 나도 친구도 즐거운 일로 기억하고 있다. 나와 아이의 관계가 정말 멀리서 온 손님과 같은 관계일 수 있는 걸까. 부모 자식 관계는 너무도 가까워서 친밀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너무 가까워서 잘 다투기도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손님처럼 아이를 대할 수가 있을까. 일종의 비유로서 종종 그 이미지를 떠올린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걱정이 드는 때에 멀리서 친구가 놀러 온 장면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의 모습과 비교한다.


 종종 사람들은 우리 아이에게 혹은 내게, 아빠가 정신과 의사라서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걱정이 더 많다. 아이 마음을 더 잘 알아줘야만 할 것 같은데 쉽지 않다. 오히려 원망만 더 들을 것 같다. 너는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아이가, 기대와 현실이 달라서 더 괴롭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오은영 선생님 영상을 보고 배운다.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고 하지만 왜 이리도 육아는 힘들게 느껴지는지. 육아를 하다 보면 내 밑천이 다 드러난 것만 같다. 아이와는 적당히 잘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고 정말 밑바닥까지 모든 일상을 함께 하기 때문일까. 의식적으로라도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전엔 꼭 육아를 겪어봐야 육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책으로 공부하고, 내가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육아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미혼이고 아이가 없던 때의 생각이었고, 모르는 영역에 대해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이를 보고 있는 내가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오늘 출근 전 아이를 보는데, 4살 주호가 앉아있는 나를 뜀틀 넘듯 어깨를 밟고 넘고 싶어 했다. 몇 번 넘어가더니 재미있었는지 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길 바랬다. 십여분을 뜀틀의 자세로 가만히 버텼다. 나는 하찮은 뜀틀이 아니라 아이의 정신신체발달을 위해 노력하는 아빠라고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허드렛일을 하는 것 같다. 머리만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고 싶어서 자꾸만 핸드폰을 봤다. 육아 참여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복무기간 동안의 목표로 삼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 등 하원 때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너무 한가한 사람으로 보면 어떻게 하나 시선을 신경 쓴다.


  아내로부터 맘 카페에서의 이슈를 종종 듣는다. 맘 카페에서는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갈등이 자주 일어난다. 코로나로 긴급 보육을 신청하는 장면에서, 지원금을 나눠주는 장면에서, 어린이집 보육 시간을 정하는 장면에서 비슷한 갈등이 반복된다. 아이를 돌보는 역할이 숭고하고 위대하다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아이만 보는데 뭐가 힘들어서 책임을 다하지 않느냐고 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저평가되어있다. 숭고하다고 하는데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잘 들어주지 않는다. 반대로 요즘 사람들은 어떤 이상적인 육아상을 그리기도 한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완벽한 원의 관념같이 한치의 티끌도 용납되지 않는 완벽한 육아를. 아이를 키운다는 마음이 바닥과 하늘을 오가는 것 같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주변 사람에게 오토바이를 타지 말라고 말린다고 한다. 꼭 나도 직업병처럼 환자를 보면서 내 아이를 생각하게 된다. 혹시 아이들이 어려움을 덜 겪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6개월부터 36개월까지 아이 곁에 부모가 곁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3살 이전의 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때 형성된 안전하다는 개념이 일생을 살아가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인격장애 환자들 중 특히 기본적인 신뢰의 형성에 어려움이 있어서 사람을 믿고 자연스럽게 지내는 것이 어려운 분들을 만난다. 그들의 일상생활에서의 반복되는 어려움과 고통을 듣고 치료를 권유한다. 대부분의 경우 인격 형성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변화하는 데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물을 채워도 물이 담기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듯 어려운 마음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런 마음이 드는 때에 치료를 받는 사람도 치료자도 지치게 된다. 문득 내가 아이들의 어린 시절 동안 안정감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걱정에 휩싸인다. 과도한 걱정 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아이의 어린 시절은 함께 하고 싶다. 


 혹시나 이 기록을 두고 나중에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아빠는 좋은 말만 글로 써두었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너무 많다. 부디 나중에 비교적 관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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