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호가 스파게티를 먹고 싶어한다고 했다. 라구 소스는 집에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들기도 어렵고 조리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서 이틀 전부터 요리할 결심을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 과정이 필요했다. 아이가 등원하고, 하원 시간을 고려해서 장을 봤다. 간고기 두 팩, 당근, 파스타면을 사 왔다. 고기랑 양파를 볶고, 당근과 새송이버섯을 믹서기로 갈아 넣었다. 필요한 다른 재료를 넣고 기름에 볶았다. 세 시간까지 조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압력솥을 이용해서 끓였다. 다행히 맛있었다. 최근에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서 한동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아이들과 장모님도, 퇴근한 아내도 맛있게 먹었다. 큰 압력솥 가득 요리해서 어느 정도 양이 남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주호는 당근과 버섯을 무척 싫어한다. 다행히 맛있게 먹었길래, 네가 먹은 파스타에 실은 당근과 버섯이 엄청 많았다고 알려줬다. 말하지 않고 몰래 넣었다고 화를 내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자기는 맛있게 먹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화를 내고 나를 원망해도 웃으면서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어떻게든 야채를 먹이려는 부모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은 입장 차이가 있어서 이런저런 수를 부리게 된다. 아이가 싫어한대도 방법이 없다. 미안하지만 나는 부모고, 아이가 좋아하는 계란밥과 짜장면만 먹일 수는 없다. 다행히 주호가 눈에 보이지 않고 맛있었기에 괜찮다고 해서, 그 가이드라인에 따라 앞으로는 믹서기를 자주 이용할 계획이다. 물론 주호는 앞으로 입자가 작은 음식을 경계하게 되겠지.
라구 소스는 어려서 먹은 미트소스 스파게티의 맛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인지, 내가 주호보다 좀 더 컸던 때에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멀리 온천에 갔다가 그 주변 양식당에서 미트소스 스파게티를 먹은 것이 기억이 있다. 그 식당에선 미트소스가 마치 알라딘의 램프를 닮은, 인도 카레 그릇 같은 곳에 담겨 나왔다. 한참 전의 일인데 기억이 비교적 선명하다. 왜 그럴까 고민해 보니 그게 특별한 기억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아버지의 입맛은 지금의 주호보다도 까다로운 편이라 본인이 싫어하는 음식은 절대 입에 대질 않고, 심지어 까다로운 주호의 입맛이 본인을 닮았다며 좋아하시는 분인데. 아버지가 미트소스 스파게티를 먹자고 해서, 당연히 양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시에 꽤 놀랐던 것 같다.
어쩐지 그날 기억에 어머니는 안 계셨던 것으로 보아 아버지랑 둘이 목욕탕에 갔던 것 같은데. 어머니를 쉬게 하려고 아버지가 날 데리고 나오셨던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가 온천을 좋아하셔서 나도 따라갔던 것 같기도 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뜨거운 온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옷을 벗고 탕에 들어가는 것도 괜히 싫고, 특히 사우나에서 뜨거움을 견뎌야 하는 것도 힘들었던 것 같다. 왠지 사우나에서 버티지 못하고 힘들다고 말하면 아버지를 실망시킬 것 같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꾹 참았던 것 같다. 보상처럼 주어진 스파게티여서 더 기억에 남는지.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해 서운한 점이 많았다. 주로 양육을 어머니가 담당해서 그랬는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느끼기엔 그 정도가 심한 것도 같았다. 이 기억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아버지는 내 학년을 모르는 때도 있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시는 날이 잦고, 주말에는 골프를 치러 나가시곤 했는데, 당시에 꽤 골프에 매료되셨는지 자주 다니셨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가 나보다 취미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골프가 괜히 밉다. 전문의 취득하고 골프 시작하란 이야기를 100번도 넘게 들었는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골프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를 미워할 수는 없지만 골프는 미워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정신 치료를 지속해서 받고 있는데 인상적인 연상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는지 아버지에 대한 연상을 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경, 마침 수시로 지금의 모교에 합격을 했는데 당시 자신 있던 과목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 최저등급을 통과하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불합격했다. 결국 재수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의대 합격 이후 신나하다가 탈락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 재수 학원에 들어가기까지의 2달 남짓 한 시간이 있었다. 당시엔 집 분위기도 좋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아마 부모님도 부모님 대로 실망하시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때 아버지가 수능도 끝나고 했으니 친구들과 술을 사 먹으라며 20만 원을 주셨다. 2달 동안 놀기엔 적은 돈이지만 또 그렇다고 너무 놀지는 말라고 하셨던 것 같다. 당시엔 별생각 없이 받아서 친구들과 잘 놀다가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별일 아닌듯한 이 이야기를 하다 정신 치료 세션 중 눈물이 왈칵 나서, 흐느끼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중에야 아버지의 마음이었구나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가 바라던 것과는 달라서 어긋나고 나는 서운하다 느꼈지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를 신경 써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이제야 알고 지금까지 서운해했다는 것에 대한 죄송함.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안도감 등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어려서 방문했던 그 온천을 얼마 전 어쩌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다. 벌써 시간이 30년 가까이 지난 뒤라 구조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또 탕이 있던 돌로 된 구조는 비슷했다. 탕에서 몸을 지지다 나와서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주었다. 바나나 우유를 사주었던가. 뽀로로 음료수였던 것 같기도 하다. 괜히 이런저런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는 좋아하지도 않는 미트소스 스파게티는 왜 드셨을까. 싫어하는 걸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나름의 즐거움인 분이신데. 그날의 변덕 같은 마음이었다면, 입에는 맞으셨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