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게임, 고급시계를 아시나요
오버워치는 6명이 팀을 구성해 6:6으로 맞붙는 FPS게임(First Person Shooter, 1인칭 슈팅 게임)이다. 요즘에야 그 기세가 예전만 못하지만 누구나 오버워치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으리라. 오버워치를 잘 모르던 시절에도 "영웅은 죽지 않아요"(지원가 영웅 <메르시> 궁극기 대사), "이것도 너프해 보시지"(돌격 영웅 <D.Va> 궁극기 대사), “용이 내가 된다”(전투 영웅 <겐지> 궁극기 대사) 등을 패러디한 농담은 자주 들렸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별도의 설명 없이도 이해한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사람과 겨뤄본 일이 없었다. 나는 원래 몬스터들과 싸우고 사람과는 협동하는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를 주로 했기 때문이다. 출시 직후 오버워치를 하려고 연차를 냈다느니 자체휴강을 했다느니 떠들썩할 때도 평소 하던 장르가 아니기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몬스터와 달리 사람은 생각을 하는데 사람이랑 어떻게 싸우는지가 신기할 뿐이었다. 오버워치를 시작하고 나서 사람이 반드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기존에 하던 게임이 운영 문제로 시들해졌을 즈음 갑자기 계시라도 받은 양 오버워치가 해보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피씨방을 찾아갔다.
그때는 이미 오버워치의 전성기는 커녕 황혼기조차도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오버워치 요즘 누가 하냐?'라는 말을 하거나 말거나 뒤늦게 시작해서는 자나깨나 오버워치만 생각했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때라 과도한 스트레스가 사람을 바꾼 나머지 원래라면 부담스러워 꺼렸을 게임인데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사람과 싸우는 건 피곤하게 느껴졌고 순화되지 않은 언어는 바닥에 늘어붙은 시커먼 껌자국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가끔씩 내가 들여다보지 않아도 코앞까지 다가오는 인간의 심연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 한 판씩 끊어할 수 있는 게임이란 건 장점이었다. 또한 장기적인 교류를 유도하는 MMORPG와 달리 한 번 만난 사람은 다시 볼 일이 없는 점도 그 당시에는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상대방을 계속 볼 것인지, 그러지 않더라도 언젠가 다시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지는 사람의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MMORPG 게임 출신인 나는 사람이 끊임없이 물갈이되는 오버워치를 플레이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인생을 바꾼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오버워치를 하면서 깨달은 점에 적어보려 한다.
탑 쌓기 게임의 모순
말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목적의 발화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악의도 있다
인성을 보려면 자기 티어에서 어떤지 봐야 한다
게임은 상대방 빡치라고 하는 것이다
탑 쌓기 게임의 모순
친구들은 다들 왜 이런 걸 하는지 모르겠다며 떠나갔지만 나 혼자 나름대로 재밌게 했던 미니게임이 있는데 바로 <탑 쌓기 게임>이다.
룰은 간단하다. 위와 같이 캐릭터를 쌓아서 목표한 층수를 달성하고 5초 동안 무너뜨리지 않은 채 버티면 된다. 한국인은 절대 성공하지 못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데 과연 그랬다. 탑 쌓기 게임에 빠져 살던 며칠 내내 엔딩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스무 명이 힘을 합쳐서 머리 위로 올라가는 일은 지체 없이 진행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한 번의 붕괴도 없이 꼭대기까지 쌓을 리는 없기 때문에 더욱 시간이 소모된다. 다 쌓고 나서는 모두 닥치고(사실 닥칠 필요는 없다) 가만히 있으라며 서로를 향해 일갈하지만 끝내 그 5초를 버티지 못하고 탑은 무너진다. 어떤 놈이 움직였냐며 욕을 하면서 누군가는 나가버리고 누군가는 다시 처음부터 탑을 쌓는다. 탑의 완성이 목표인데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애초에 아무도 탑이 완성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을 하러 들어오는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착착 쌓아서 엔딩을 보고 또다시 탑이 완성되는 일의 반복이 아니다. 정말 그뿐이었다면 사람들은 이 게임을 ‘재미없다’라고 생각했을 테고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탑의 완성은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동시에 목적에서 어긋난다. 탑이 무너지면 다들 화를 내지만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탑을 다 쌓으면 꼭 마지막 5초 동안 움직여서 망치는 사람이 있는데 언제부터 품은 각오일지는 몰라도 오로지 완성된 탑을 망치기 위해 제 시간을 투자하고 타인과 협업하여 그 탑을 쌓아줬다는 점마저도 모순적이다. 탑 쌓기 게임에서 재밌었던 것은 이 모순이었다.
말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평소 늘 가지고 있던 생각 중의 하나는 <말하지 않는다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였다.
말하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있으며 진실이란 가려지더라도 결국에는 드러나게 된다고 믿었다. 강바닥에 쌓인 금속처럼 한 알 한 알이 천근처럼 무거워서 결코 물에 쓸려내려가지 않으니 하늘을 둥글게 도는 햇살이 강바닥을 비출 때까지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오버워치를 하기 전까지는. 아군과 적군이 분명한 게임이지만 사실 새빨간 적팀 캐릭터들만이 적이 아니다. 적은 내부에도 있다.
오버워치는 전투 게임인 한편 팀 내부적으로는 정치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정치는 전투만큼이나 중요하다. 때로는 그 이상이다. 각자의 팀이 이겨야 한다는 목표부터 대립하는 적군과 달리 아군은 우리 팀이 이겨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서로가 완전히 무관할 수 없다. 공동의 목표를 두고 저 사람이 잘했다면 내가 못한 것이므로 사실이 어떻든 반드시 저놈이 못한 것이여야만 한다. 극소수의 판에서만 발견되는 "우리 다 잘했어"의 훈훈한 분위기는 보기를 원한다 해서 만들어낼 수 없는 희귀한 자연현상과 같다.
이 정치에서는 섬멸해야 할 적군도 끌어올 수 있는 전략적인 장치 중 하나일 뿐이다.("적팀아, 쟤랑 나 중에 누가 더 잘했음? 니네가 말해봐") 누가 잘했고 못했고는 현실에서도 그렇듯 명확히 가려지는 것이 아니기에 대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 당연하다, 누가 숨은 승리의 공로자 또는 발목을 붙잡아 팀을 패배로 이끈 모래주머니를 가려내려고 시간을 쓸까? 그럴 시간에 한 판 더 돌리는 것이 이득이다.
따라서 할 말이 있으면 그때그때 해야 한다. 딜량이나 힐량이 제일 많아도 네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오버워치가 구하려는 세상이며 여기서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입다물고 모든 것을 감내해도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판이 끝나고 사람들은 당신이 못해서 졌다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면. 진실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상태가 아니며 존재하도록 하기 위해 말해야 한다. 내가 한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다. 말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금메달이 몇 개건 간에.
세상에는 다양한 목적의 발화 그리고
사람들은 화가 나면 욕을 하고 싶어한다. 피격당한 사람은 불쾌해하고 가격한 사람은 시원함을 느낀다. 공격자의 의도는 감정의 배설, 그리고 상대방의 기분을 망치는 것이다. 이상이 내가 알던 사실이었다. 오버워치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러나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는 것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이다. 분노란 사실 그 대상이 아닌 분노를 가진 사람의 손해다. 그리고 오버워치를 하면서 배운 중요한 법칙 중 하나는 나의 손해(-)가 곧 상대방의 이익(+)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화가 난다고 욕을 하는 행위는 나의 손해본 심리상태를 드러냄으로써 상대방에게 기쁨을 선물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표면적으로야 욕설은 공격이고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수단이지만 실상은 비아냥거려봐야 욕을 듣는 상대방은 불쾌해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선물이라도 받은 양 좋아할 뿐이다. 따라서 설령 화가 치밀어오른다고 한들 굳이 표내지 않는 편이 낫다. 상대로 인해 내 기분이 이미 손해를 보았다면 더더욱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조롱은 상대방이 불쾌했으면 하는 뜻과는 달리 자신의 심리 상태를 투명하게 드러낼 뿐이므로 그야말로 상대의 의도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이야말로 쉬이 얻을 수 없는 순도 높은 기쁨 중 하나이며, 상대의 도발에 응하지 않는 것이 외려 승리가 되곤 하는 이유는 그 의도에 부합해주지 않음으로써이다.
말에는 표면 아래에 깔린 의도가 있다. 그것이 창이든 화살이든 어떤 형태를 하고 있더라도 분명히 그것을 던진 사람이 존재한다. 그 사람은 왜 그것을 그 방향으로 던졌는가. 상대를 상처입히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것을 피해야 한다. 더 커다란 공격성을 보여주며 석궁을 쏘아 봤자 자신의 한 발이 적중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설령 맞아서 기분이 나빠졌다고 한들 상대방을 만족시켜줄 필요는 없다. 욕을 하는 것은 승리가 아니고 더 강한 욕을 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기분이 좋은 사람이 이긴다. 내 기분을 망치려 안달난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 줄 필요는 없다.
욕을 먹었다면 그 의도에 대해 생각하자. 상대방은 먼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내 기분을 망치려고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을 때 그 사실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이미 이긴 상태임을 실감하면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도 있다
세 명이서 그룹을 맺고 게임을 하다가 같은 팀 루시우가 갑자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팀] 루시우: 거기 3인큐 개 못하네
이 대사로 뜬금없이 정치의 서막을 열었다. 좀 어리둥절했지만 이런 난데없는 당선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놀라지도 없을 만큼 이 게임에 적응한 상태였다. 그 판을 이기고 그 다음 판에 다시 만나게 되어 또 이겼더니, 세 번째 만났을 때는 게임 시작 전에 “아까 욕해서 미안하다, 너네 잘한다” 사과를 해서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런데 그 판이 또 잘 풀리지 않는다 싶자 루시우가 다시 똑같은 행동을 했다. 우리를 처음 만났던 그 판과 동일한 방식에 동일한 말투로 다만 대상만을 바꾸어 우리를 제외한 팀원 중 한 명을 탓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타인의 언행이나 비난에 하나하나 의미를 두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느꼈다. 이해하기 어려워도 세상엔 그런 사람이 있다. 누구 하나 골라서 탓을 하지 않으면 배기지 못하는 유형. 그런 사람을 진지하게 이해하려 하거나 그들의 말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그냥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그런 말을 들은 사람이 정말로 패배의 원인이겠는가. 타인이 나만큼이나 발언 전에 숙고하고 말을 내뱉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성을 보려면 자기 티어에서 어떤지 봐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다. 자기가 유리하고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부계정으로 자기보다 낮은 실력의 사람들 틈에 섞여 활약하는 사람은 일견 과묵하고 성격이 좋아 보이지만 정말로 알고 싶다면 본인과 같은 실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봐야 한다. 전에 누군가 멋진 활약을 하고 "캐리", "EZ"(Easy의 줄임말로 게임이 쉬웠다며 상대방을 조롱하는 말), "못하네" 등의 쓸데없는 말은 일절 없이 방송 홍보만 하길래 궁금해서 들어가 본 일이 있었다. 시청자가 세 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 방송이었다. 한 며칠을 지켜봤는데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다가 매칭이 반복되며 티어대가 높아지자 점차 성격이 바뀌었다. 자신의 업적을 유치하게 자랑하지 않았던 모습들은 어디 갔냐는 듯 팀탓하기 바빴고 첫 싸움에서 밀린다 싶으면 곧바로 이런 팀을 만난 자기 팔자를 한탄하느라 게임을 던졌다. 그러면서 자신이 못해서가 아니라 정말 오로지 팀을 잘못 만났기 때문에 계속해서 패배한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과묵했으나 나중에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징징거리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좋지 않은 모습을 굳이 들춰낼 필요는 없고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 편이 서로에게 좋지만 상대를 안다고 생각하기 전에 낮은 티어에서의 모습이 과연 전부일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기가 여유로운 상황에서 남에게 너그러워지는 건 쉽다. 그러나 그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언제나 그런 사람이리라고 믿는 것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게임은 상대방 빡치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진은 그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포인트는 <상대방>이 <적군>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방이란 내가 아닌 모든 존재들이다.
팀 내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사이가 틀어진다. 한 쪽은 이기고 싶다는 의사를 드러내며 네가 문제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지적받은 쪽은 심사가 뒤틀린다. 그리곤 곧장 게임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기려 애쓰기는 커녕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 싫다는 이유로 결코 이기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방해한다.
힘을 합쳐도 이길까 말까 한 판국에 내부분열이 일어나면 결국 보게 되는 것은 패배라는 빨간 두 글자다. 기분이 그렇게 나쁘면 곧장 퇴장하여 시간절약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러지도 않는다. 설령 이기고 싶을지라도 같은 팀인 저 놈이 이 판을 이기고 싶어하니 그걸 망쳐주겠다는 이유로 시간적 손해와 자신의 패배를 기꺼이 감수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복수심으로 많은 일을 한다.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익을 얻는 것보다 아군에게 해를 끼치는 데서 더 큰 기쁨을 얻는 생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악의는 강력한 동기다.
이상이 내가 오버워치를 하며 깨달은 점이다. 나는 오버워치를 하면서 공격성이 늘었고 삶의 태도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인생에 큰 교훈을 준 게임인 오버워치에게 감사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추억을 되살려 오버워치를 한 두 판 플레이함으로써 게임의 부흥에 기여해주길 작게 바란다.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