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반원들

by 이공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약은 언제 그만 먹느냐고 지치지도 않고 가족들은 물었고 나는 증세가 조금 호전되었다고 생각할 때쯤에 그만 가기를 선택했다. 가족들은 나와의 기나긴 전투 끝에 애써 내가 약을 먹는 것을 받아들였지만 사실 언제나 그것을 그만 먹기를 바랐다. 그들의 의사 따위야 무시하고 먹으면 상관없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나도 아마 혼자 살았다면 그랬을 테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년도는 바뀌었고, 나는 스스로도 분명하게 병원에 다시 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남기는 모든 기록이 유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고개를 숙여 발을 내려다보면 물에 잠겨서 발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가족과 싸울 기력이 없었다. 그때 낭떠러지 앞에서 벌인 사투를 다시금 할 자신이 없었다. 약에 의존하려는 생각 말라느니, 의지 박약이 아니냐느니, 나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네이버에서 <우울증>을 검색해 프린트한 뒤 원인이나 해결법 중 자신의 구미에 맞는 항목에만 형광펜을 친 뒤 내게 들이미는 그 괴로운 경험을 다시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들을 이어가는 동시에 그러한 자신을 끔찍해하며 생각했었다. 이대로 살다가 악화되어서 끝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하고.


어쨌든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생각이 조금 덜 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아침에는 일찍 잠이 깨고 개운하게 정신이 든다. 원래 약 먹은 병아리처럼 종일 정신을 못 차렸는데 그조차도 어떤 증상의 일부였던 것 같다. 오전이 이렇게 긴 줄 몰랐다는 느낌이다. 별 것 아니지만 미뤄왔던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실은 지금도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저녁약을 먹고 나면 수마가 쏟아지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게 된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오래 뒤척이는 일 없이 금세 잠에 든다. 내 영혼에 주먹을 집어넣거나 뇌의 가장자리부터 하얀 종이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 영구히 구멍 뚫린 영혼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나는 이 모든 불안이 사라지길 바라지만 그것들을 깔끔하게 덜어낸 나를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떼어낼 수 없는 일부였다. 긍정적인 부분만이 <나>라니, 그렇게 간편한 셈이 있을 리가 없다.

나는 불행한 사고방식을 내게서 베어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한다. 제대로 살아간다는 표현을 쓰는 이상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가는 삶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기에 고통스럽다. 그리고 그 제대로의 범주에는 결코 내 삶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틀 전에 저녁약 복용 후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 날 기억이 잘 나지 않았을 때는 덜컥 두려움을 느꼈다. 이야기를 한 것은 기억나는데 세부적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카톡을 해서 다시 물어봤다. 무슨 얘기를 했었느냐고.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정말로 무섭다. 그래도 어젯밤은 대충이나마 기억난다. 그래서 기록용으로 가끔씩이라도 이렇게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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