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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이미지가 되고 싶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영원히 행복할 것 같은 이미지. 벽에 걸린 바다 그림처럼. 십 년보다 더 전부터 지금까지 거실에 걸린 그림에서는 파도에 발목을 적시며 흰 옷을 입은 소녀들이 웃고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옥빛 바닷가를 거닐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는 그저 그림이 되고 싶었다. 종이 한 장 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히 멈추어 어떤 슬픔이나 비참도 끼어들 계제를 얻지 못하고 그곳에서 완결된다. 그려진 모든 것들;푸른 하늘, 발을 적시는 파도, 흰 옷을 입은 사람들, 웃음, 즐거움. 그것 외에 어떠한 불길한 상상도 끼어들 여지가 그곳에는 없다.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딘가의 비극을 묘사한 그림에서는 고통은 영원하고 행복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변화무쌍한 가능성과 입체성을 포기하고 그것을 가졌었다는 것도 모른 채 고정되어 있고 싶었다. 약간은 차갑게 느껴지지만 따뜻한 물결이 이는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계속 살거나 멈추어 있고 싶었다. 혹은 흰 포말이거나 소금 냄새가 섞인 미풍이어도 좋았다. 다만 한 장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면.
그림 속의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다. 그렇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려지지 않았다.
<행복하다>는 단어에는 행복 이외의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을 말하는 것은 <불행하다>는 단어일 뿐 행복하다는 단어에는 행복 이외의 것이 없다. 내게는 그림이 그랬다. 그림과 문장에는 비슷한 것이 있다. 그래서 그림은 문장 같고, 문장은 그림 같다. 때로 그것은 놀랍도록 입체적인 상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평면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낮의 들판처럼 기뻐하면서도 땅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동시에 괴로워하지만 그림만큼은 그 두려운 입체성으로 불안을 드리우지 않는다. 그것은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가. 그림자 없는 기쁨이 늘 그곳에 걸려 있다는 것.
스노우글로브Snowglobe를 한 번쯤 뒤집어본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리라. 구 형태의 유리 안에 작은 모형과 눈가루를 넣고 액체를 채운 이 장식품은 한국에서는 스노우볼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뒤집으면 반짝이가 꼭대기에 고이고 원위치로 돌리면 눈처럼 아래로 천천히 쏟아진다. 눈은 고작 몇 분도 되지 않아 바닥으로 가라앉지만 다시 뒤집으면 그만이다. 이건 둥그니까.
둥글다는 건 무한히 반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에는 방향이 없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똑같을 뿐더러 그 시작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끝도 찾을 수 없다. 중심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점들의 집합이기에 중력으로 만들어진 구조물들은 3차원의 원인 구형이 된다. 우주를 계속해서 도는 행성과 그 거대한 궤적도 원을 그린다. 표면이랄 것이 없는 원자의 모양까지도 구에 근접한다. (이처럼 우주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도형인 구를 이용하여 자신을 표현한다. 《뉴턴의 아틀리에》, 유지원·김상욱, 민음사) 신에 대한 스물네 개의 정의를 써내려간 중세의 책 《Liber XXIV philosophorum》에서는 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An infinite sphere, whose centre is everywhere and whose circumference is nowhere. 신은 무한한 구이다. 그 중심은 어디에나 있고 둘레는 어디에도 없다.> 중심이 어디에나 있으며 둘레는 어디에도 없는 구에 대해 상상하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벽한지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완벽한 것은 둥글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영혼도 둥글게 생겼으리라고 믿는다. 구슬처럼.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맞닿으면 유리끼리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나리라고.
스노우글로브 안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다. 둥글고 영원한 세계. 구체는 작든 크든 그 자체로 끝이 없는 원형의, 그림이나 문장 같은 세계를 내재하고 있다. 포근하고 어두운 겨울이 계속된다. 해가 가장 빨리 지는 시기에는 모든 것이 이른 고요 속으로 들어가고 모든 것이 깨끗해진다. 눈은 그치지 않고 설령 내리지 않는다 한들 잠시 멈추어 있을 뿐, 나는 간단히 스노우글로브를 뒤집는 것만으로 세상을 언제든지 눈보라 속으로 인도할 수 있다. 입김이 번지는 밤하늘 위를 가로지르는 종소리처럼 맑은 한겨울 속으로.
언젠가는 스노우글로브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다. 우리는 종종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름다운 것을 만드느라 시간을 쏟곤 하니까 이 작고 완전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것도 그렇게 그릇된 욕망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