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등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대한 이야기

by 이공



내가 아주 슬펐던 날에 그는 대뜸 내게 말을 걸어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중에 같이 살자. 이런 집이 좋겠어. 이층 집에서, 이런 창문이 있는, 햇빛이 드는 실내, 이런 양탄자를 깔고, 좋아하는 컵, 하얀 식탁보, 고양이, 투명한 수정 조명 아래에서 하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자. 정말 즐거울 거야. 그는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 않았으며 울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좋은 것을 잔뜩 가져와 그것을 바라보게끔 했다. 나는 눈물을 그치고 그가 보여주는 좋은 것을 보면서 웃었다. 높은 곳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것 같던 내 마음은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으로 가득 찼다. 그의 혀로써 집이 지어지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건 우리의 저택이 됐다. 위로의 말은 한 마디도 없었지만 그건 분명한 위로의 방식이었고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상상으로 마음이 뚫린 자리를 메꾸는 일. 그는 내 슬픔이 보이지 않는 듯이 좋은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슬퍼하기 때문에 그는 분주하게 바닥에 깔 카펫과, 창문과, 햇빛을 가져왔다. 그리고 슬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집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돌돌 말린 도화지가 펼쳐지며 안쪽의 그림이 드러나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노래를 잘했으므로 집에는 그의 노랫소리도 스며 있었을 것이다. 문턱을 넘으면 나는 그가 부르던 노래의 희미한 울림을 듣는다.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지만 그 저택은 그럼에도 그곳에 있다. 그가 더 이상 내 삶에 없을지라도 존재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그곳에 남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약 그의 기억 속에 내가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나는 끔찍한 무엇일지도 모른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한 문장으로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설령 기억한다 한들 나와 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같은 선상에 있다가 분기점에서 우리가 그저 잠시 겹쳐진 두 개의 점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선을 이루었던 접점들은 함께 경험한 좌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서로의 기억은 두 권의 책처럼 다르리라. 이러한 생각을 하는 일은 집중이 필요한 섬세한 고통을 수반하여 바늘 끝에 손을 부러 찌르는 것처럼 골몰하다가도 어느 순간 <어차피 다시 만날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모든 생각이 이렇게 끝난다. 이미 닫힌 가능성이라는 명확한 사실, 변하지 않을 사실로. 달의 둥근 등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보듯이 차갑고 부드러우며 완전한 느낌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기억은 조금씩 닳았고 질량을 유지하기 위하여 회상을 자꾸만 덧대었다. 회상은 되풀이되며 닳아빠진 자리를 추측이나 상상으로 메꾸어 점점 원형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억은 이제 완전한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게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 대한 기억이 적확한 사실에 가까워야 할 어떠한 이유가 없으므로. 원형에 가깝도록 보존하고 싶은 나의 욕망을 제외하고는. 그가 소설 속 인물과 다를 것이 없다 해도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사람은 설령 현실의 인물이라 해도 본질적으로 가상의 인물과 다를 것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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