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토라. 이 책에서는 2차 대전 패망국이자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일본이 미국의 패션문화를 어떻게 수입하고 현재에 이르러 어떻게 패션 강국이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점령군 미군을 통해 미국의 문화적 풍요로움을 체험하고 이것을 복제하려는 연구가 지식이 되어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이런 밑바탕 위에 '일본성'을 추가하여 원본보다 원본 같은 또 다른 진본을 만들어 미국에 역수출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아메토라アメトラ로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의 일본식 명칭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60-70년대 일본 패션시장을 주름잡은 의류업체 'VAN재킷' 이야기입니다. 창업자 이시즈 겐스케石津謙介는 1950년대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입던 옷차림을 동경하여 이것을 '아이비'로 명명하고 스타일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단추 하나까지 뜯어보며 연구합니다. 이렇게 이시즈 겐스케는 아이비스타일을 하나의 형식으로 정리하여 옷을 만들어 판매합니다. 이와 동시에 군복과 몸빼가 전부였던 당시 일본인들에게 서구의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가르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시 그가 추구했던 것이 '의복'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시즈 겐스케의 VAN재킷은 1978년 도산하지만 이곳 출신이 새로운 의류회사를 창업, 지금의 '유니클로'로 성장시켜 표준화된 '아이비' 스타일의 옷을 미국에 역수출합니다. 유니클로는 옷을 포함한 토털 아이템을 취급함으로써 이시즈 겐스케의 소망을 이룹니다.
일본은 이렇게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의 새로운 공급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원류로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2000년대 후반, 옷을 못 입기로 유명한 미국인들에게 남성 패션에 대한 열풍이 부는데, 이때 이들이 자신들의 스타일을 원류를 찾아 헤맨 끝에 발견한 참조자료는 미국패션을 분석한 60-70년대 일본 잡지와 서적뿐이었습니다. 하여, 일본은 아메리칸 스타일의 구원자가 됩니다.
일본이 수입한 서구문화에 동양적인 모티프를 넣어 더 진짜처럼 보이게 한 것은 패션뿐만이 아닙니다. 저자인 데이비드 막스는 패션에서 이것을 찾을 수 있었지만 같은 모습이 일본의 건축에서도 발견됩니다. 일본인들의 패션 스타일에 대한 집착과 연구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건축에서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좋든 싫든 한국은 일본이 걸었던 길을 따라갑니다. 아시아에 있어서의 근대화, 현대화의 과정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을 바라보면 우리가 앞으로 당면할 과제가 예상 가능합니다. 지난달 25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장기 저성장 구조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확하게 30년 전 일본도 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당시 사회상도 비슷합니다. 저는 그들이 행했던 시행착오를 우리가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