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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mji Jun 26. 2023

애스터로이드 시티 Asteroid City

daily effect /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순위로 따지면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감독이 첫 번째이고 웨스 앤더슨은 그다음 정도 됩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두 감독의 성향은 서로 대척점에 있습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삶의 숨겨진 측면, 고상하게 말하면 삶의 '본질'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면서 '사는 게 뭐야, 진짜 말이야, 진짜로 사는 게 뭐야?'라고 심각하게 질문하는 반면 웨스 앤더슨은 '난 파스텔 톤 삶의 조각들을 모아 오토매틱 시계를 조립했는데, 그게 어떻게 작동되는지 한번 같이 볼래?'라고 장난치듯 유혹합니다.


그런데 어제 관람한 애스터로이드 시티Asteroid City는 그의 예전 영화와 많이 달랐습니다. 파스텔톤의 정교한 기계 같은 모습은 여전했지만 용도미상의 부품이 여기저기 끼워져 있고 전체의 구동 원리도 알쏭달쏭 읽기 힘들었습니다. 불 켜진 객석을 나서면서 들었던 다른 관객들의 푸념 속에서 본작이 전작만큼 재미있지 않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웨스 앤더슨, 찾아보니 1969년생입니다. 이제는 장난을 치기에는 나이를 너무 먹었나, 아니면 이제 그도 뭔가를 더 알게 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전작과 같은 기상외한 스토리전개 대신 삶의 씁쓸함, 오묘함을 보여주는 암시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실제를 은유하는 연극 무대, 그리고 등장인물의 본심을 상징하는 무대 뒤 장면을 교차해서 비춰주는데, 주인공은 극 중 말미에 무대를 뛰쳐나가 "스토리가 이해가 안 돼,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거야?"라고 절규하고, 무대 뒤의 연극 감독은 "잘하고 있어, 그냥 그렇게 하면 돼"라고 위로하며 주인공을 무대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삶은 영화와 같이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일이 일어나기 일쑤이고,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으며, 예상에서 한참 벗어나는 불행이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커다란 행운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삶은 나뭇가지처럼 모든 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꼴라쥬처럼 서로의 관계가 모호한 것들이 이곳저곳에 박혀 있는 모습입니다. 즉, 삶은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의 혼합물니다.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도 그것이 오류나 버그가 아니라 그것이 삶 자체라는 사실, 웨스 엔더슨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그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그 끝에서 영화의 시작점으로, 시작점이지만 조금 다른 시작점으로 돌아갑니다.

영원회귀의 삶과 같은 그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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