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은 내가 바라보는 대상의 일부

'멈춰라 생각하라' 읽기 4

by demji

우리는 사물을 볼 때 그것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긋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말이지요. 나와 대상, 주체와 객체, subject와 object - 그 사이의 경계. 나와 대상은 명확히 분리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객관적'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주관적'이라는 것은 그것과 나 사이에 성립된 어떠한 관계를 토대로 대상을 본다는 것이고, 이와는 반대로 '객관적'이라는 것은 대상과 나 사이의 개별적 관계를 떠나 지극히 보편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개인의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하지 않고 대상을 관찰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진정한 '객관적'인 시각은 가능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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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가능한 모든 분류의 구조는 객관적이기를 바라지만 결코 이데올로기(외부로부터 주입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사고방식)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예를 들면 건축에 있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건물들과, 우리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새롭게 고안된 다양한 체계로부터 유래된 현대 건축물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지난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는 틀린 부분이 있다. 우리가 실제로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끝없는 의심은, 우리의 눈이 우리가 보는 대상, 그 존재를 구성하는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되새김으로써 어느 정도 누그러질 수 있다.*

*번역서의 문장에 뜻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새롭게 우리글로 옮겼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젝은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son의 말을 빌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심지어는 내 눈은 내가 바라보는 대상을 구성하는 체계의 일부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우리는 생각으로 사물을 만듭니다. 사물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인간이 창조하지 않는 존재 - 동물과 식물은 인간의 생각과 손으로 길들여져 가축, 채소 그리고 과일로 재창조됩니다. 이것들은 물건과 같이 인류 발전의 역사가 배어있는 객체입니다. 우리는 그 사물들로 환경을 꾸미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는 그 객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체계입니다.


사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사과 - 학명으로는 장미목 Rosales, 장미과 Rosaceae (오, 이미 인간의 가치관이 스며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에 속하는 사과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입니다. 달고 새콤한 맛의 대명사, 이것으로 파이, 주스를 만들 수도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대상 apple of my eyes 비유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사과는 지난해 가을에 방문했던 사과농장의 추억을 떠오르게 함으로써 도매와 소매의 상거래 개념을 연상시키도 하며, 마트의 진열장에 가격표와 함께 진열됨으로써 내 지갑 속 사정을 유추하게 하기도 합니다. 또는 독자 여러분의 휴대폰과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과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합니다. 사과를 바라보면 의식의 표면은 아닐지라도 이런 생각이 그 저면에서 자연스럽게 작동되도록 되어있습니다. 사과는 인간에게 길들여져 있으며 직접적인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사과를 바라볼 때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길들여져 있지 않다면, 사과를 바라보는 순간 식욕을 느끼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생각의 흐름, 무의식적인 반응을 끊어낼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의식에서 통제하려 할 지라도 생각의 저면에서 회로가 작동되고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사과'는 실제로 존재하는, 붉은색의 반질반질한 표면을 가진 무게 300g의 과실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사과나무를 인공적으로 재배하게 된 인류의 역사로부터 해서 사과를 깨문 개인적인 경험 모두의 총체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내 눈은 내가 바라보는 사과라는 대상의 체계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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