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공적' 사용과 '사적' 사용

멈춰라 생각하라' 읽기 7

by demji

개인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사회가 유지되거나 발전하려면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을 잘 조화되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이 사적이고 어디서부터가 공적인 것일까요. 그리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어떤 관계를 가질까요? 슬라보예 지젝은 이것의 준거를 칸트로부터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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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성좌 constellation에 대한 '인식적 지도 cognitive mapping'를 제공하고자 하는 데 있다. - 중략 - 그 분석의 도구는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가 말했던 "이성의 공적 사용'이다. - 중략 - 칸트에게 '세계시민사회'의 공적 공간이란 보편적 단독성 universal singularity의 역설, 즉 일종의 단락 short-circuit으로 특수성의 매개 없이 곧바로 보편성에 참여하는 단독적 주체의 역설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 What is Enlightenment?'의 유명한 구절에서 '사적'에 대립되는 '공적'이라는 표현으로 의미했던 바다. 여기서 '사적'이란 공동적 연대에 반대되는 개인적 유대가 아니라, 한 사람이 특별히 동일시하는 공동적, 제도적 질서를 말한다. 이에 반해 '공적'이란 이성의 행사의 초국가적인 보편성을 지칭한다.


어떻게 보편적이면서 단독적일 수 있을까요? 보편적이라 함은 법, 도덕, 관습의 상위 개념으로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절대적 '참'을 말합니다. 그리고 단독적이라는 것은, 상기한 법, 도덕 등, 인위적으로 수립된 사회 질서체계를 벗어나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즉, 한 개인이 보편적이며 단독적이라면 그를 제한하는 시공간적 특수성을 파기하고 '참'을 향하여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 특수성의 절연체를 제거하고 보편적 진실을 마주하는 것, 이것이 '단락'입니다. 세계시민사회는 이러한 주체들로 구성됩니다.


p24

그러나 이성의 공적 사용과 사적 사용이라는 이분법은 좀 더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성의 공적 사용이 지닌 상징적 효능(또는 수행능력)을 유보하는 데 의존한 것이 아닐까? - 중략 - 그의 공식은 차라리 '생각하고 복종하라'였다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공적으로 생각하고 (권력의 위계 조직의 일부로서) 사적으로 복종하라는 말이다. - 중략 - 하지만 행위에서 생각을 빼는 subtract 것, 그 효능을 유보하는 일이 정말 그렇게 간단하고 명료할까? - 중략 - 이처럼 이성의 공적 사용에서 효능을 철회하는 것 역시 새로운 사회적 실천을 위한 공간을 열어젖히는 일종의 빼기 subtraction가 아닐까?"



칸트의 '이성의 공적/사적 사용'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이 글에서도 재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 글에서 지젝의 해석은 남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성의 공적/사적 사용에 대한 칸트의 이분법이 실제로는 이성의 공적 사용이 지닌 수행능력(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유보하는 것(복종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수립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는 점입니다. 수행능력의 유보, 이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되 실제 행동에서는 실천보다 복종을 택하는 것, 즉 행위에서 생각을 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젝은 이러한 복종, 다시 말하면, 옳은 것이 인지되는 상황에서 여기에 반하는 명령에 대한 복종이 과연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지 묻습니다.


결국, '생각하고 복종하라'는 글에서 칸트가 노리는 은밀한 전략은 생각과 복종 간의 모순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긴장이자, 여기서 비롯되는 '빼기'subtraction라는 것입니다. '빼기'란 주체적 사고를 통해 사회화된, 그리고 고착된 사고방식으로부터 빠져나옴으로써 그 상황의 문제점과 역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상황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빼기'의 사례는 민간인에 대한 발포를 거부한 군인, 또는 거짓 증언을 거부함으로써 진실을 지킨 의사 소피아 카르파이 Sophia karpai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생각하고 복종하라는 글귀에서 칸트가 의도하는 것은, 공적 이성의 보편성에 머물면서 사회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주체적인 입장을 견지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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