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여의도비주류 May 06. 2022

'의원님'을 '부장님'이라 부르게 된 사연

의원님과의 대리운전


마침내 코로나에 걸렸다. 급증하는 주변 사례들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했지만, 의사 선생님 앞에서 양성 판정을 받는데 잠시 불치병을 선고받는 것처럼 몸둘 바를 몰랐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답하기 위해 입을 떼는 것조차 뭔가 폐를 끼치는 마음 같아서 고개만 끄덕이다가 진료실을 나왔다.


코로나19가 시작된지 2년도 넘었고,  누적확진자가 1,000만명을 돌파한 때라 어찌 보면 그전까지는 ‘운 좋게' 무사히 지나간 것이다.


국회 보좌진에게 기억이라는 것은 자주 '선거'를 기준으로 회상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여수밤바다를 처음 갔던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2012년 대선날 밤이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만난 때가 언제였는지도 그렇게 기억한다. 2017년 대선을 치른 그 해였지 하고는.



코로나19가 언제 시작했는지도 그렇게 기억을 연결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시점은 2019년 겨울로 총선을 4개월 여 앞둔 때였다.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다보니 거기도 의원님이 있었다.


코로나는 지독했고 지금도 두렵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름의 추억도 있었다. '추억'이라 하기엔 없어야 할 일이었고, 사치스럽기도 한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추억은 추억이다. 첫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수행비서로서 의원과 함께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하던 무렵이었다.  의원은 새벽 일찍 출근해서 국회 일정을 마치면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아마 자택까지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 지역 의원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퇴근 후에는 지역 일정도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로 일정들이 줄줄이 취소되다보니 갑작스레 퇴근이 빨라졌다. 잠시뿐이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퇴근할 것이라 기대하며 의원과 함께 댁으로 향하고 있는데, 시장을 다녀가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라 무얼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한 결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밖에서 '외식'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하셨단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기도 했고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사람들이 전염 우려 때문에 외출도 자제했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조심스러워 할 때였다.


손님들이 없자 식당 사장님들 상황은 절망적이었고, 수십년 함께 일한 종업원들을 내보내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시장 투어가 시작되었다. 1시간 정도 의원은 혼자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비닐봉다리 너댓개를 들고 돌아왔다.


문제는 매일같이 시장을 가다보니 살 게 없어졌다. 그렇다보니 의원은 내게도 살 것을 꼭 묻고 시장 안으로 사라졌고, 한두시간 뒤 나타나서는 때론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빈대떡'과 '튀김' 같은 것들을 건네주기도 했다.


시장투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차가 멀리 있어 차를 가지러 가는 중이었는데, 의원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을 여기서 좀 먹고 갈까요?"


길가에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뒤편에 있던 횟집 사장님이 의원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코로나로 손님이 없다는 말에 차마 돌아서지 못한 의원이 내게 전화한 것이다.


그런데 마침 그 집은 횟집. 회 한 접시와 소주 한병을 주문했다. 소주 없이 회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소주잔을 냅다 들이밀었다.



"그런데 차는 어떡하죠?"

"대리운전을 불러 가면 어떨까요?"


그렇게 대리운전을 불러 의원을 먼저 내려드리고, 집 근처인 회사로 돌아가기로 의기투합(?)했다.


"대신 차에 타면 '의원'이라고는 하지 말아 주세요"


의원은 정치인 중에서도 꽤 유명한 편이었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누가 알아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보좌진과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른다는 사실이 조심스러웠는지 아무튼 그랬다. 나도 가끔은 아파트 이웃들을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인가 싶기도 했다.


의원과 일정을 다니며 둘이 식사를 한 일은 내가 만나온 몇 안 되는 여자친구들과 밥을 먹은 숫자보다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둘이 술을 마시는 일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인지, 어느 날보다 더 즐겁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대리운전 기사님을 만났고 의원의 당부대로 '의원님'이라는 호칭을 빼고자 마음 먹은 것도 잠시 잊었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의원이 내릴 때야 분명하게 생각났다.


의원이 내려 차 쪽을 바라보자 내가 용기반+장난반으로 인사를 건넸다.      

"부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의원이 내려진 창문 쪽으로 보고 내게 말했다.

"과장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의원이 내리자 기사님이 바로 물었다.

“방금 내리신 분 OOO 의원님 아닌가요?


잠시 당황했지만, 천역덕스레 거짓말이 한 개 더 늘었다.

“아닌데요..” zzzzz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