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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Sep 21. 2022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편의성을 중시한다. 어릴 때부터 약골로 자라서 생존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건널목 신호등이 바뀌었을 때 내가 어디에 도달해 있으면 뛰어서 건널 수 있는 정확히 안다. 문방구 앞 두 번째 화분에 못 미칠 경우 난 뛰지 않는다. 헛 힘 들인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절망감도 못 지 않게 크다.  


환경이 혹독하고 열악할 때 생존욕구는 강해지고 편의성 추구도 왕성해진다. 군대에서 야외기동훈련 중 텐트 줄에 하얀색 경시테이프를 붙여 두었다. 저녁에 어두운 데 왕래가 잦다보니 텐트 줄에 걸려 넘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식별이 되니 위험도 줄고. 나름 자부심을 느낄 때 장교 한 분이 나섰다. “ 이 경시테이프 누가 붙이셨나? 위장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적들한테 우리 주둔지를 통째로 알려주신 분이 누구신가? 이 정도면 영창감인데.”


나의 편의성은 타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회사 야유회로 등산갈 때 난 후발대로 천천히 올라가다 초입에서 다시 내려온다. 뒤풀이 장소에 먼저 가 있거나 찻집이나 근처 개울가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 험한 산을 올라가다 내가 퍼져서 남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무리하게 올라가다 업혀서 내려온 분들이 꽤 있다. 업고 내려온 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최근엔 편한 몸 뿐 아니라 마음의 평화도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서 마음수양 중이다. 편한 몸은 나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마음의 평화는 상대가 있다 보니 이루기가 쉽지 않다. 가벼운 차량접촉으로도 삿대질이 난무한 데 나의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스포츠센터에 갈 때 핸드폰을 깜빡 잊은 적이 있다. 직원 분이 접종완료 증명이 없으면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며 야박하게 대했다. “제가 이곳을 매일 오는 데. 그래서 매일 접종완료를 확인하는데. 한두 번 저를 본 것도 아니고. 제가 오늘 딱 하루 휴대폰 없다고 이러시면 되겠냐” 며 항의했다. 운동을 하면서도 내내 분했다. ‘이럴 수가. 이런 예의 없는 것들.’ ‘운동을 마치고 나갈 때 한 판 해야지. 센터장 나오라고 해야겠어. 직원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운동을 마치고 나올 때 난 직원한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담부턴 꼭 휴대폰을 갖고 오겠습니다.” 저임금서비스업에 복무하면서 받았을 정신적 스트레스나 저열한 노동환경, 임금 등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족, 성차별적인 조직문화, 전문성을 키우기 힘든 구조 등 그 직원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자각이나 배려 등은 아니었다. 싸운 후 내가 가지게 될 마음의 불편함만을 생각했다.


마음 수양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난 글 쓰고 나면 꼭 아내에게 평을 부탁한다. 처음은 나의 자존심을 세워 주며 사회성 있는 평을 해준다. 그런데 뒤끝이 있다. “멋을 부리다 보니 글에 너무 힘이 들어갔어.” 이 정도만 해도 박한 평인데 뒤끝이 더 이어진다. “이 교재에도 쓰여 있네. 장식이나 기교를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고 하네. 솔직한 글, 내적인 발견을 쓰라잖아.” 이쯤 되면 마음의 평화가 완전히 깨진다. 그때 난 이렇게 말했다. “오케이 너무 좋아. 요즘 글감이 없었는데 이 장면을 글로 써야겠어. 좀 더 자세히 얘기해봐. 이야기 구성을 어떻게 가져갈까? 첫 문장 시작이 굉장히 중요한데 뭐라고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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