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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Sep 28. 2022

제사음식 다 준비하시든가

세상에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거저먹는, 불공평한 이익이 있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훤칠한 키를 지닌 아이가 있다. 웃음기 하나로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얼굴이 있다. 돈 모을 요량으로 금융상품 하나 가입했을 뿐인데 당첨되었다며 게임기를 받은 사람이 있다. 나는 살면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지난 해 가을까지는.


형은 가부장적인 질서를 존중하고 중시했다. 추석 일주일 전 토요일엔 조부모, 증조부모 산소가 있는 그 먼 전라남도까지 벌초하러 갔다. 열 살도 안된 어린 나이에 떠나온 땅. 고향이지만 기억조차 흐릿한 곳이었다. 어릴 적 친구 하나 없는 그곳으로 엄청난 교통 정체를 무릅쓰고 갔다. 조상님 무덤이 그곳에 있고 벌초를 해야 하므로 형은 갔다.  


 부친제사도 엄격하기 그지 없다. 육각형이 나올 때까지 밤을 쳐야 했다. 전을 부치고 탕국을 끓이고 먹지도 않을 닭을 통째로 삶아야 했다.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이란 '홍동백서'와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감 순서로 올리는 '조율이시' 같은 상차림은 기본이다. 강신 초헌 아헌 종헌으로 이어지는 제사 순서도 엄격하게 지켰다. 기독교인인 누나 세 분 모두 손사레쳤지만 형은 엄격한 제사관습을 고집했고 또 지켜냈다.   


 부친묘소를 이장할 때도 형은 반대했다. 고향 땅을 떠나 서울근교로 이장을 하면  뿌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까지 세상을 뜨면 누가 이 먼 전라도 땅까지 찾아오겠냐. 무덤이라도 있어야 후손들이 찾아오지 않않냐?" 형의 반대는 거셌다.


 "일년에 한두 번 찾아뵙는 불효가 어디 있나. 이장할 곳이 집에서 가까우니 자주 찾아뵙고 얼마나 좋으냐. 이게 효도다."라며 나는 형의 뿌리론을 공략했다. ‘돌아가시고 수 년이 지나 육탈이 되면 햇빛을 쐬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의 풍속이다. 이장하셔야 한다’며 이장의 당위성을 내세운 뒤에야 형의 고집을 꺾을 수 있었다.  


 “내년부터는 간단하게 제사 지내자”

지난해 부친제사가 끝나고 귀가를 서두르는데 뜸금없이 모친께서 말문을 열었다. 모두가 의아해하며 눈치를 살필 때 형수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맞아요. 요즘은 제사를 간단하게 지내는 추세예요. 우리같이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집도 없어요. 아버님 돌아가신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데... 산소에서 간단히 제사지내는 집도 많대요.”


 형수는 시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뵈었다. 부친은 형이 결혼하기 3년 전에 심지어 형수와 사귀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형수는 얼굴 한번 뵌 적 없는 시아버지 제사를 38년째 준비하고 있었다.  


 “세상이 변해도 사람 맘까지 변해서 쓰겠는가. 부친제사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지.” 형은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친 역시 형의 성격을 아는 탓에 당신의 결심을 거둬드리려 할 때 형형수가다시 나섰다.


 “그럼 당신이 내년부터 제사음식 다 준비하시든가”


 부친제사는 산소에서 간단히 지내게 되었다. ‘유세차’로 시작해 ‘상향’으로 끝나는 제문과 함께 ‘은혜로우신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기도문도 읽게 되었다. 형의 허허로운 웃음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대신 형수의 깊은 한숨은 사라졌다. 나의 노고는 가벼워졌다. 세상에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거저먹는, 불공평한 이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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