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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환 Aug 22. 2023

이 우유 드실래요?

중학교 앞 떡볶이집은 언제나 부산했다. 방과 후 허기를 채울 요량으로 붐비는 곳 중 으뜸이었다. 학교 정문 왼편 좁은 골목에 위치했지만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지름길이어서 항상 북적거렸다. 골목에 들어서면 누구나 떡볶이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전자오락실, 빵집 등이 있었지만 차순위였고 떡볶이집에 많이 못 미쳤다.


 떡볶이집 아주머니의 음식솜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음식 만들기는 대충이었는데 맛은 기막혔다. 떡볶이가 매울까 봐 덤으로 내주는 양배추무침이 특히 그랬다. 양배추를 썰어 양푼에 담아 소금에 절인 후 기름과 설탕과 약간의 조미료를 뿌리면 그만이다. 맛있을까? 의심이 가지만 먹어보면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맛이었다. 게다가 뭘 주문하든 오뎅 국물을 덤으로 주어서 인기가 많았다.


 웃고 있지만 우는 마음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덕주는 억울하고 속상했다. 학교에 지각한 것은 덕주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허리가 많이 굽은 할머니가 길을 물었다. 설명을 못 알아들으니 목적지까지 바래다주었다. 착한 일하고 벌을 받으니 짜증이 났다. 지각한 벌로 방과 후 청소를 마친 덕주는 한숨을 내쉬며 떡볶이집에 들어섰다. 떡볶이 냄새는 달콤하고 강렬했다. 냄새는 덕주의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 묻지 않았다. 고려하지도 따지지도 않고 끌어당길 뿐이다. 원심력은 없고 구심력만 작동하는, 균형보다는 쏠림의 냄새였다.


“떡볶이 국물 좀 더 주세요.”

떡볶이를 급하게 먹어 치운 덕주는 아쉬운 마음에 빈 그릇을 내밀었다. 점포 안 깊숙이 혼자 앉아 있는 여학생이 이제야 보였다. 덤으로 얻은 국물을 연거푸 마시며 힐끔 쳐다보았다. 자꾸 눈길이 갔다. 오똑 선 콧날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검고 둥근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윤기 없이 부스스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움추린 두 어깨가 파르르 떠는 것을 보며 덕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기. 누나. 이 우유 드실래요?”

아무 대답 없이 무심히 쳐다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워 얼른 말을 이었다.

”우유를 먹으면 배가 아프거든요. 급식으로 받은 건데...“

”배가 아픈데 떡볶이는 먹을 수 있어?”

“우유만 못 먹어요.

”먹지도 못하는 우유를 급식으로 신청한 거야?“

”신청한 건 아니고.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서 무상으로 준 거예요.“

그녀는 경계를 풀고 우유를 받아 든다. 고맙다는 인사는 없다. 우유를 건네주고서야 덕주는 자신의 묘한 감정에 놀랐다. 그녀의 움추린 몸이나 피곤한 기색을 보면 마음이 아렸고 몽롱한 슬픔이 밀려왔다. 수줍음 많은 자신이 왈칵 말을 건넨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집안의 가난에 대해 남의 일인 듯 아무렇지 않게 말한 것도 의아했다. 그녀가 경계심을 가지고 꼬치꼬치 따져 묻는 것도 싫지 않았다.


이후 덕주는 그녀가 떡볶이집에 오는 늦은 시각을 기다렸다. 수업이 짧은 날이나 청소 당번이 아닌 날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녀 역시 정해진 시간에 점포에 왔고 덕주는 우유를 건냈으며 그녀는 활짝 웃었다. 덕주는 그녀의 목련꽃 같은 웃음이 좋았다. 그녀는 덕주의 맥락 없이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는 것이 즐거웠다.


                                     *          *


”야 이리 잠깐 와볼래?“

떡볶이집을 향해 바삐 걷던 덕주를 불러 세운 아이는 불량기가 다분했다. ’삥뜯기‘임이 분명했다. 발걸음을 돌리는데 반대쪽에 있던 다른 패거리가 덕주를 낚아챘다. 근처 공사장에서 돈을 요구했다. 아까웠지만 가진 푼 돈을 내주었다. 이것밖에 없냐며 대신 몸으로 때우라 했다. 주먹과 발길이 날아들었다. 애벌레처럼 잔뜩 움츠렸다.


“이 양아치 새끼들.”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한 놈만 물고 늘어졌다. 할퀴고, 물고, 잡아 뜯고. 찰거머리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한 놈이 공사장 각목으로 그녀를 내리쳤다. 동시에 덕주는 벽돌을 들어 그놈을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황급히 덕주의 손을 잡고 뛰었다. 덕주는 들고 있던 벽돌을 근처 다가구주택 유리창으로 던졌다.


한적한 골목 어귀에 이르러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내일부터 학교 정문으로 다니지 마. 후문으로만 다녀. 그 양아치들은 이 동네 애들 아냐. 일부러 널 찾으러 오지는 않을 거야.”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중에 말해 줄게. 이 길 따라 쭉 내려가. 나는 반대 방향으로 갈게.”

덕주가 돌아서 걸음을 떼자 그녀가 물었다.

“왜 다가구주택 쪽으로 벽돌을 던진 거야? .”

“그 난리가 났는데 아무도 안 나와서 화가 났고. 벽돌 맞고 쓰러진 그 양아치가 걱정돼서 경찰에 신고하라고 던졌어.”

“네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어서 가.”

덕주가 돌아서 걸음을 뗄 때 그녀가 말했다.

“잠깐만. 옷 털어줄게. 많이 맞았는데도 얼굴은 멀쩡하네.”

옷을 꼼꼼히 털어준 그녀는 덕주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덕주의 등을 떠밀어 걸음을 재촉했다. 덕주는 그녀의 각목 맞은 자리가 걱정되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걱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이 못마땅했지만 대신 해일 같은 감정이 몰려왔다. 그 감정은 낯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         *


“’란희정밀‘? 장례화환인데 오기(誤記)를 했네. ’난희정밀‘이 맞겠지.”

서른 살의 덕주는 문상객의 말에 흠칫 놀라며 화환을 살펴보았다. 분명 ’란희정밀‘이었다.

“내 이름은 이란희야. 이난희가 아니고 이란희.”

떡볶이집에서 우유를 처음으로 건네던 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덕주는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넋이 나간 친구에게 ’란희정밀‘을 아냐고 물었다. 이 상중에 다짜고짜 다그치는 덕주에게 친구는 ’미친놈‘이라며 돌아섰다. 덕주는 친구를 돌려세웠다. 덕주의 눈빛은 탐조등처럼 빛났다. 깊은 간절함으로 눈빛이 떨렸다. 친구는 덕주가 란희정밀을 궁금해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내뱉듯이 말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거래하던 부품회사라고 알고 있어.”


덕주는 친구가 적어준 메모지를 챙겨 장례식장을 급하게 빠져나왔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바람은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지만 포구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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