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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와인바 사장 Jul 24. 2019

와인잔, 역시 비싼게 좋은건가요?

"와인잔 가격이 천차만별이던데, 역시 비싼게 좋은건가요?"


네. 그럼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비싼 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니지만, 좋은 건 언제나 비쌉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와인잔이 좋은 와인잔일까요?

일단 가벼울수록 좋습니다. 잔이 가벼우면 당연히 손에 힘이 덜 들고, 손목이 편하겠죠.

그리고, 두께가 얇아야 합니다. 입술에 닿는 잔의 촉감이 적을수록 액체(와인)가 입안으로 부드럽게 들어오거든요. 극단적인 반대의 상황을 생각해보자면, 뚝배기에 담긴 국물을 입으로 그대로 마실 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국물을 턱으로 흘리기도 하고, 입도 긴장되고. 그리 편하다는 느낌은 아닐거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와인잔이라는건, 예쁜 와인잔을 말합니다. 예쁜게 최고입니다! 잔의 라인이며, 광택이며, 그 고급진 느낌이라니! 잔이 예쁘면 술을 따르기 시작할 때부터 기분이 좋고, 예쁜 잔에 마시면 똑같은 와인도 열 배 쯤 맛있는 것같은 착각을 느낍니다. ‘잘생겼으면 오빠고, 예쁘면 누나.’라는 명언이 생각날 정도입니다.(이걸 명언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따지지 맙시다.) 어떤 와인 수입사 직원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는 신규 와인 시음을 할 때, 싸구려 유리 와인잔에 시음을 합니다. 와인을 최악의 컨디션에 두고 시음을 하는거죠. 저희 회사에서 수입하는 정말 좋은 와인잔이 있는데,(이 회사는 Zalto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 잔에 마시면 어지간한 와인도 다 맛있어져서 냉정한 평가를 할 수가 없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가볍고, 얇고, 예쁜 와인잔은, 예외없이 다들 비쌉니다.


하지만, 비싼 와인잔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정말 잘 깨진 다는 것이죠. 비쌀수록 잘 깨집니다. 가볍고 얇으니 당연히 잘 깨질 수 밖에요. 손님들과 와인잔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마지막엔 이렇게 끝납니다. 

“그런데 설거지하다 깨먹었어요. 엉엉. 큰 맘 먹고 산 와인잔인데...”

그리고 시내의 유명한 와인바에서 겪은 일인데, 다른 테이블의 손님이 엄청 크고 멋있는 잔에 와인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약 15만원 정도하는 와인잔이라고 하시면서, 저 와인잔은 요청하시는 분께만 드리고 있고, 깨질 경우 파손비를 받고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전 그 상황에서 먼저 든 생각이 ‘직원들 살 떨리겠구나’ 였습니다. 15만원짜리 와인잔을 설거지하면 당연히 긴장되지 않겠어요? 설거지하다가 깨먹으면 직원은 직원대로 좌절하고, 사장은 사장대로 속쓰리고. 그런데, 역시나. 그 손님이 가고 난 후 그 큰 와인잔을 어떻게 하나 유심히 지켜봤는데, 결국 사장님이 직접 설거지 하시더라구요. 네. 저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게 서로 속 편하죠.


그러니까 전, 비싼 잔이 좋다는 건 알지만, 너무 비싼 잔을 사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가게 운영하면서 얻게된 깨달음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깨질 것은 언젠가 깨진다. 그것이 물건이든, 관계이든, 믿음이든.”

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지중지해봐야, 깨질 것은 언젠가는 깨집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와인잔이 깨질거라고 가정을 하고, 깨지면 좀 속은 쓰리겠지만, 

“아악! 망할! 결국 깨졌네. 할 수 없지. 다시 사지 뭐… 짜증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가격대의 와인잔을 사시는 걸 추천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경제력도 다르고, 와인에 대한 애정도 다르니,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와인잔의 가격대도 사람마다 달라지겠죠.


그리고 ‘와인잔은 잘 깨진다’라는 이야기가 나온김에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절대로, 술 마시고, 설거지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너무너무 위험합니다. 가게에 새로운 직원이 첫출근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일이 와인잔 설거지인데, 설거지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제가 꼭 덧붙이는 말이 있어요.

“자 봐요, 이렇게 설거지하면 되는데, 정말 중요한게 뭐냐면, 급하게 하지 마요. 급하게 하다 깨지면 큰일나니까. 가게에서 일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속도는 자연스럽게 빨라질거에요. 익숙해 질때까지는 천천히 하면 돼요. 괜히 빨리하려다가 잔 깨지말아요. 잔 깨지는건 뭐 별일아닌데, 진짜 문제는 다칠 수도 있다는 점이에요. 잔 깨지는거로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다치면 화낼 수도 있어요. 와인잔은 깨지면 엄청 날카롭게 깨져서, 크게 다칠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고무장갑 없이 맨손으로 와인잔 설거지 하는 것을 지켜보던 간호사 손님은 이런 말도 했었습니다.

“사장님. 고무장갑끼고 설거지하면 안돼요? 보고있자니 너무 불안해요. 저희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싫어하는 환자 중에 하나가, 와인잔 깨져서 와인잔 파편이 손에 박혀서 온 환자라구요. 저희들끼리 서로 네가 가라고 미룬다니까요? 와인잔 파편은 작고 예리해서, 핀셋으로 하나하나 보면서 뽑아야 되는데, 진짜 못할 짓이라구요. 너무 싫어요! 제발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 해주세요.”

아시겠죠? 술 마시고 와인잔을 설거지하는 분은 없길 바랍니다. 술 마시고 설거지해도 되는건, 저처럼 직업이 설거지인 사람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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