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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Jan 04. 2022

"범 내려온다" 호랑이해 12간지 음식

[푸드로지] 임인년 신년에 재미로 즐기는 12간지 음식 기행

中 전설의 팔진미 ‘虎膝’… 화끈하게 매운 ‘호랑이고추’


서울 연남동의 상해소흘에서 내는 후피칭지아오(虎皮靑椒). 매운 고추와 다진 고기를 고추기름으로 볶아내는 메뉴다. 한자에 ‘범 호(虎)’ 자가 들어가는 건 완성된 음식의 색이 호피 무늬처럼 보인다고 해서다. 우리말 메뉴로는 ‘호랑이고추’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다가온 임인년… ‘호랑이’ 이름 붙은 요리
대한민국 ‘國獸’로 축구국가대표 상징
예부터 산군·산중왕이라 부르며 경외
도요토미, 한반도 호랑이 가져다 먹어
호랑이 없는 일본선 일부러 먹은 기록
현재 멸종위기로 식용으로 쓰진 않아

이제 드디어 신축(辛丑)년이 끝난다. 올해는 1월 1일부터 1년 내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지속된 지긋지긋한 한 해다. 지난해는 1월19일에 국내 발병이 처음 보고됐고 이렇게 상황이 심각할지 모른 덕(?)에 그나마 3월까지는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세상이 온통 꽉 막힌 것도 벌써 2년이 다 돼 간다. 감염병 팬데믹 3년째가 되는 2022년 임인(壬寅)년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뭇짐승이 모두 벌벌 떤다는 검은 호랑이해가 아닌가.


호랑이는 현재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고양잇과 동물 중 가장 큰 맹수다. 호랑이는 뜻밖에도 한자어다. 원래는 범을 뜻하는 호(虎)에 이리 랑(狼)을 붙여 산에 사는 맹수를 이르는 말이었다. 기세 높은 산악에 숲이 우거진 한반도에도 많은 개체가 존재했다. 범, 산군, 산중왕이라 부르며 경외했다. 단군신화에도 등장하고 수많은 설화나 전설에 나타난다.

현대에도 호랑이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징으로 쓰는 등 국가를 대표하는 짐승, 즉 대한민국 국수(國獸)로 대접받고 있다. 덕분에 호랑이 캐릭터는 뭔가 특별한 의미를 덧씌울 때 자주 인용된다. 지금이야 멸종위기종인 호랑이를 식재료로 쓰는 경우는 없지만, 과거 중국과 일본에선 일부러 이를 챙겨 먹었다고 한다.

특히 호랑이가 없는 일본 땅에선 이를 동경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한반도의 호랑이 고기를 가져다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일제강점기 1917년 일본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山本唯三郞)는 조선의 호랑이를 사냥하는 사병 ‘정호군(征虎軍)’이 잡은 호랑이를 먹었다. 그는 경성 조선호텔과 도쿄(東京) 제국호텔 등에서 2차례 호랑이 시식회를 가지기도 했다.


중국의 경우는 팔진미(八珍味)에 호랑이 무릎(虎膝)이 있긴 하지만 용의 간(龍肝)이나 오랑우탄 입술(猩脣)과 함께 있는 것을 보니 그리 상식하는 음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신 요즘 식탁에서 호랑이란 이름은 뭔가 강하고 특색 있는 요리에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 붙이는 경우가 많다. 중국 음식 중 ‘호랑이고추’란 음식이 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유명 중식 술집에서 파는 음식으로 아주 맵고 강렬한 맛을 내 이를 찾는 마니아가 많다. 가히 맹수 호랑이의 이름을 붙일 만큼 짜릿하고 화끈하다. 국내 프랜차이즈 ‘60계 치킨’에선 지난여름, 호랑이 치킨 메뉴를 내놓았다. 딱히 맵거나 자극적이진 않다. 노랗고 검은 얼룩무늬도 아니다. 단지 ‘호랑이 기운’이 난다는 켈로그 사의 플레이크를 얹은 양념치킨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 ‘복싱타이거’에도 호랑이 이름이 들어간다. 느닷없이? 다 이유가 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의 원조(?) 격인 미국 금주법(prohibition) 시대에 일반 식당이나 이발소 등을 가장한 불법 주류판매점이나 그런 곳에서 취급하던 밀주(密酒)를 의미하는 블라인드 타이거(blind tiger)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호랑이로 불리는 바텐더들이 만들어주는 다양한 칵테일을 마실 수 있다.

이외에도 다른 12간지에 드는 음식도 있다. 십이지신이라 불리는 12지는 불교와 함께 인도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열두 가지 동물의 띠에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있다. 그 개념은 이집트, 그리스, 중앙아시아까지 널리 퍼져 있지만 한·중·일 등 동아시아가 가장 관심 깊다.


흔히 띠로 알려진 12지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간지로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를 각각 뜻하는데 일반적인 한자 이름으로 서(鼠), 우(牛), 호(虎), 토(兎), 용(龍), 사(蛇), 마(馬), 양(羊), 원(猿), 계(鷄), 견(犬), 돈(豚) 자를 쓰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다.


12간지 중 호랑이띠 새해를 맞는 지금, 신년의 주인공 호랑이와 나머지 11간지에 관련한 음식을 소개한다. 물론 이 중 식재료로 쓸 수 없는 것이 많다. 뱀은 뱀장어로, 개는 핫도그로 대체했다.

용은 어떡하나. 중식이나 한식 이름에 환상의 동물 용(龍)이 붙는 것은 수도 없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다행히 동물원(에버랜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심심풀이 삼아 호랑이나 자신의 띠와 딱 맞는 음식을 즐기며 초장부터 재미난 새해를 시작할 수 있다.


■ ‘12간지(干支)의 맛’ 여기서


◇호랑이 = 상해소흘. 연남동의 핫플로 뜨고 있는 곳, 중국식 실내 포장마차 분위기의 요릿집이다. 중국 쓰촨(四川)에서 즐겨 먹는 후피칭지아오(虎皮靑椒)를 판다. 우리말 메뉴는 ‘호랑이고추’. 매운 고추와 다진 고기를 역시 매콤한 고추기름으로 볶아내는 메뉴다. 화끈하고 얼얼한 매운맛이 난다. 멘바오샤 등 기름진 안주와도 어울리고 볶음밥에 곁들여도 좋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272. 1만5000원.


◇토끼 = 농촌 문화를 벗어던진 이래 우리에겐 낯선 육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즐기는 4대 고기에 들어간다. 연분홍 정육은 닭고기와 비슷하면서도 지방이 거의 없어 단단한 식감을 낸다. 사냥감 산토끼가 아닌 가축화된 집토끼를 도축해 요리한다. 프렌치요리에 즐겨 쓰고 미국에서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많이 내는 메뉴다. 국내에선 주로 토끼탕에 쓰는데 전남 지역에서 많이 먹는다.

◇용 = 커다란 새우튀김 모양이 승천하는 용을 닮았대서 ‘용튀김’이라고 한다. ‘고씨네 고추장찌개’에서 판다. 상호처럼 매콤하고 달달한 고추장찌개를 취급하는 집인데 바삭하게 튀겨낸 새우튀김을 곁들이면 궁합이 딱 맞는다. 반죽과 기름 온도를 잘 맞춰낸 덕에 튀김옷은 바삭한데 새우살은 촉촉하면서도 탱글탱글하게 살아 있다. 타이거 새우니 ‘호랑이띠 요리’라 여겨도 무방하다. 서울 중구 수표로26 1층. 2만2000원.

◇뱀(장어) = 뱀과 닮아 이름조차 뱀장어다. 전국에 유명한 장어집이 많은데 전남 강진 목리 장어도 은근히 명성이 높다. 뭍에서 흘러드는 탐진강과 남해의 경계에 있는 목리는 예전부터 장어집이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목리에 장어를 가공하는 통조림 공장이 있었을 정도. 강진 탐진강 장어나라는 투실한 장어를 소금과 양념구이로 즐길 수 있다. 갖은 반찬을 내는 셀프 코너도 있어 많은 이가 찾는다. 강진군 강진읍 목리길83-13. 1㎏ 6만

5000원.

◇말 = 제주에서 즐겨 먹는 고기다. 대부분 기름기가 거의 없는 근육 덩어리 부위지만 부드러워 살짝 익히거나 육회로 많이들 즐긴다. 소고기보다 육향이 진하며 고소하다. 제주 성읍 쪽에 말고기 집이 몰려 있다. 인터넷으로 고기만 주문할 수도 있다. 흑돼지와 말고기 등 제주 고기 전문 판매점 청정해에서 횟감, 구이용, 장조림용 등을 구분해서 판다. 구이용 500g 3만7000원.

◇양 = 삿포로(札幌)식 ‘칭기즈칸’ 방식으로 양을 굽는 이치류. 마치 투구처럼 생긴 두꺼운 전용 무쇠 불판에 채소와 양고기를 올려 익혀 먹는다. 호주산 1년 미만의 램을 사용하고 생갈비, 살치, 생등심 등 부위별로 판다. 양 특유의 달큼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부드러운 고기를 일일이 구워준다. 채소를 고기 기름에 구워 특제 양념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4. 2만9000원.

◇원숭이 = 문명 세계(?)에는 원숭이를 식재료로 한 메뉴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친숙한 동물이라 이름에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오직 에버랜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빈의 메뉴 팝핑몽키 바나나 아이스 블렌디드가 있다. 이름처럼 입에 넣으면 톡톡 튀는 초콜릿 탄산캔디로 토핑했다. 바나나의 달콤한 향이 그윽한 크림이 놀이공원에 온 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7300원.

◇닭 = 노포가 밀집한 다동 무교삼계탕에서 닭죽과 삼계탕을 판다. 연중 먹어도 좋지만 요즘처럼 쌀쌀해질 때가 딱 좋다. 찹쌀을 많이 넣고 걸쭉한 국물이 과연 진국이다. 진한 삼향(蔘香)을 풍기며 용암처럼 팔팔 끓어오르는 그 빡빡한 국물을 떠넘기자면 목을 타고 넘어가는 향과 느낌이 보약 한 첩 지어 먹은 기분이다. 깍두기며 김치며 뭐하나 빠지지 않는다. 문경 가정식 찜닭과 바삭한 인삼튀김도 별미다. 서울 중구 다동길 16 2층. 1만

5000원.

◇개(핫도그) = 핫도그는 허리가 긴 강아지(닥스훈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길쭉한 핫도그 번에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와 채소를 끼워 먹는 음식이다. 소스로는 케첩과 머스터드를 함께 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시지만 두고는 위너(wiener)라고 부른다. 사실 막대기에 끼운 것은 콘도그(corn dog)지만 어쨌든 개(dog)니까 상관없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35. 관정빌딩 앞 포장마차. 2000원.

◇돼지 = 이른바 ‘이영자 맛집’으로 소개되며 더 유명해진 합정동 맛집이다. 냉삼과 오겹살이 유명한 천이오겹살은 1등급 이상의 국내산 생고기를 최소 7일간 숙성, 급랭한 뒤 손님상에 내놓는다. 쌈장, 기름장, 어리굴젓을 곁들여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다. 고기를 구워 초밥 위에 올려 먹는 ‘냉삼초밥’까지 곁들이면 회식이나 모임 메뉴로 제격이다. 비빔국수 등 곁들임 메뉴 역시 빠지지 않는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7길 12. 1만 원.

◇쥐(쥐치) = 영화를 제외하고 쥐를 먹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설치류처럼 이빨이 툭 튀어나온 쥐치는 별미로 소문났다. 양은 적지만 비린내가 적고 살이 단단해 횟감으로 딱이다. 제주도에선 모든 쥐치류를 객주리라 통칭해 부르는데 회로도 먹고 조림으로도 즐긴다. 특히 쥐치 간은 부드럽고 녹진한 맛이 일품이다. 용산 스시장에서 오마카세(맡김 메뉴)로 맛볼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258. 점심 5만 원. 저녁 9만 원.

◇소 = 소고기야 파는 곳이 많지만 청춘구락부의 우설(소 혀밑살) 구이는 흔하지 않다. 우설(牛舌)과 혀밑살은 연하고 구수한 데다 부드러운 식감까지 있어 마니아층을 사로잡고 있다. ‘혀’ 부위라 하면 미간부터 찡그리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 외국에서도 고급 식재료로 즐기는 부위다. 특히 선도 좋은 우설은 구이용으로 맛이 좋다고 입소문이 나 저변이 넓어지는 추세다. 서울 마포구 토정로 308. 2만50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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