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석 더 프리맨 Apr 10. 2022

바다의 꽃, 멍게 미더덕 피었네

[푸드로지] 바다의 꽃도 요즘에 제철, 입맛의 꽃놀이 가세


‘바다의 더덕’이라고 불리는 미더덕 회와 멍게 회. 미더덕 회는 생소한데 껍데기를 벗겨 내고 노랗고 부드러운 속살을 먹는다. 요즘 딴 것이 가장 맛이 좋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4월 해산물 멍게·미더덕

유생땐 움직이다 고착 생활
점차 식물화하는 ‘척삭동물’


한국외 먹는 나라 거의 없어
통영·거제 등 남해가 주산지

멍게, 주로 초장에 찍어 먹어
비빔밥·젓갈 등으로도 ‘일품’

미더덕 찜·해물탕 곁들이
철분·DHA 등 영양도 만점



앞쪽 면(컬처&라이프 여행면)에 봄꽃을 소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푸드로지도 봄꽃을 소개할 작정이다. 봄 바다에도 꽃이 핀다. 게다가 먹을 수 있는 꽃이며 맛도 좋다. 요즘 제철을 맞아 물밑에서 꽃봉오리를 틔운 멍게와 미더덕이다. 이 두 척삭동물(그게 뭐야?)은 남해 맑은 물속의 향을 그대로 식탁 위까지 전하는 봄 바다의 전령이기도 하다.


싱그러운 바다를 맛보기 전에 우선 척삭동물(脊索動物)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Chordata. 학명은 대충 이렇지만, 생물학자가 아니라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척삭동물은 척추동물보다는 진화가 덜 됐지만 그 비슷한 작대기 모양으로 몸을 지지하는 척삭을 가지고 있다. 척삭동물로 대표적인 게 멍게와 미더덕이다.


지금까지 특징은 다 잊어도 좋지만 재미난 사실이 하나 있다.


천성이 게으른 탓인지 일찌감치 동물에서 은퇴하고 식물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멍게와 미더덕, 이 두 가지 맛있는 척삭동물은 유생(幼生) 시절 올챙이나 애벌레처럼 물속을 유영하는데 성체가 되면 스스로 바위에 붙어 식물화한다. 그러니 바다의 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유생(선비가 아니다)일 때는 여러 감각기관과 근육, 뇌 등을 갖추고 있다가 바닥에 안착하면 모든 기관을 스스로 소화해 버리고 그냥 해조류처럼 플랑크톤만 걸러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실제로도 식물처럼 셀룰로오스(다당류 세포벽)를 체내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러한 습성을 빗대 “종신직(tenure)을 보장받은 교수처럼 산다”는 말도 나왔다. 미국의 인지과학자 대니얼 데닛의 비유다. 물론 덕분에 쉽게 채취하고 양식할 수 있어 우리가 잘 먹고 있기는 하다. 정말 희한한 특성을 지닌 생물이다.


척삭동물은 한국인과 불가사리 이외엔 천적이 거의 없다. 중국에서는 ‘바다의 칼집’이라는 뜻의 하이차오(海초), 일본어로 호야(ホヤ)라고 따로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즐겨 먹지는 않는다. “멍게(미더덕)는 주지 마세요”라 말할 때 쓰려고 일부러 지은 이름 같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칠레 정도에서 먹기는 하지만 그리 보편적이지는 않다. 다양한 식재료를 상식하는 중국인들도 거의 먹지 않으니 말 다했다. 일본에서도 도호쿠(東北)나 규슈(九州) 등 바닷가 일부에서만 식용으로 취급한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횟집이나 포장마차에는 대개 멍게가 있다. 원래는 우렁쉥이가 표준말이었는데 이젠 방언이던 ‘멍게’도 인정했다. 멍게의 경우 많은 양을 수하식으로 양식한다. 통영과 거제가 주산지다. 돌멍게와 꽃멍게, 비단멍게를 식용하는데 돌멍게는 껍데기가 단단하고 속살의 색이 옅다. 멍게는 주로 해삼과 함께 안줏거리로 식탁에 오른다.

"바보멍충이 해삼멍게말미잘"

생긴 것 때문인지 멍게와 해삼은 말미잘과 묶어 남을 힐난하는 말로도 쓰인다.

멍게젓 비빔밥

멍게는 식용할 때 도깨비방망이 같은 주머니를 잘라 내고 오렌지 색 속살만 먹는데 주로 회로 초장에 찍어 먹는다. 뿔 부분은 먹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짭짤하고 쌉쌀한 맛이 감돌며 끝에는 살짝 단맛도 난다. 향기로 먹는다는 사람이 많은데 내륙 도시에서도 멍게 한 점이면 대번에 바다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제나 통영에서는 멍게로 젓갈을 만들거나 생으로 밥에 올려 비벼 먹기도 하는데, 회보다 멍게비빔밥이 더 대중적이다.


미더덕은 멍게보다 낯설다. 생물 상태의 미더덕은 본 적이 없다는 이도 제법 된다. 미더덕 역시 척삭동물로 남해안 지역에 주로 서식하며 진동(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앞바다에서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이 난다. 멍게와 습성이 비슷하지만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고 맛 또한 확연히 구분된다. 미더덕은 순우리말인데 ‘미’는 물(水)을 뜻하는 가락국의 고어. ‘물에서 나는 더덕’이라는 의미다. 물에서 나는 나물, 미나리와 같은 식이다. 공교롭게 미나리는 미더덕찜을 먹을 때 잘 어울린다. 마침 제철도 같아 함께 곁들이면 봄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별칭은 아주 심각하다. 한자로 음충(淫蟲), 음란한 벌레라 지었다. 미더덕의 생긴 모습을 이상하게 받아들였을까. 정약전도 ‘거시기(음경)’비슷하다고 자산어보에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자산어보에는 ‘미더덕 모양이 양경(陽莖)을 닮아 입이 없고 구멍이 없다. 물에서 나와도 죽지 않는다. 볕에 말리면 위축돼 빈 주머니같이 된다. 손으로 때리면 팽창한다. 즙을 낼 때는 털구멍에서 땀을 흘리듯 하며, 가늘기가 실이나 머리칼 같고 좌우로 분사한다. 색은 회색이다’며 사진이라도 찍은 듯 서술했다.

꽃이나 거시기나 어쨌든 맛있는 미더덕


뭐.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테니 여기서는 ‘꽃’을 닮은 걸로 하겠다.


미더덕 역시 멍게와 마찬가지로 유생 시절 돌아다니다 바닥에 정착한다. 15도 이상 수온이 올라가면 성장을 멈추고 맛 또한 떨어지므로 4월 수확기에 딴 것이 가장 좋다. 껍데기를 벗겨 내고 샛노랗고 부드러운 속살을 회로 먹는 시기도 이때다. 5월이 넘어가면 횟감으로 파는 곳이 드물어 먹을 수 없다. 이후에는 사철 찜으로 먹어도 좋고 아귀찜, 해물탕 등 해물요리나 된장찌개에 넣기도 한다.


미더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오만둥이(주름미더덕)는 외래종으로 보통 찌개류에 많이 넣는데 생긴 것은 미더덕과 비슷하나 맛과 향은 떨어진다. 익힌 것은 통째로 씹어 먹어도 된다. 다만 끓는 해물탕에서 갓 건져 낸 미더덕이나 오만둥이를 씹으면 입천장을 데기 십상이다. ‘냄비 속 수류탄’이라 불러도 될 만큼 위험하니 충분히 식혀 먹어야 한다.


회로 먹거나 찜으로 먹을 때는 신선한 생물 상태의 것이 좋다. 제철 미더덕은 고소한 맛이 진하게 난다. 멍게에서 아린 맛을 제거하고 참기름이나 다시마 액을 한 방울 떨어뜨린 정도의 풍미가 들었다. 끝 맛은 달고 비린내가 거의 없다.


미더덕은 영양가도 많다. 각종 비타민과 임산부에게 좋은 엽산, 철분 등의 무기질이 가득하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불포화지방산 DHA도 다량 들었다. 고등어나 정어리 같은 등 푸른 생선보다 많다. 타우린도 풍부해 피로 해소나 간 기능 개선에도 좋다고 한다.


봄이 완연한 남녘의 오팔색 청정 바다에 피어난 꽃, 멍게와 미더덕이 계절의 맛과 향을 만방에 전하며 유혹한다. 고혹적인 색깔과 그 강렬한 향기는 같은 봄날이라도 다른 식품군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매력이다. 이제 고작 한 달여, 꽃놀이 다니듯 부지런히 찾아 챙겨 먹어야 한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봄날은 간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이층횟집 = 국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창원 마산합포구 진동면에는 미더덕 전문 식당이 많다. 이 중 ‘이층횟집’은 요즘 미더덕 회를 팔고 연중 미더덕 덮밥을 차려 내는 집이다. 생미더덕 양념 젓갈을 밥 위에 얹고 김가루, 참기름과 함께 쓱쓱 비벼 먹는다. 강력한 미더덕의 풍미가 밥에 스며들어 좀 더 잔잔히 향을 느낄 수 있다. 배추 된장국도 시원하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미더덕로 345-1. 미더덕 덮밥 1만2000원.



◇인해 = 부산 서면에서 제철 식재료를 차려 내는 곳이다. 겨울에는 호래기 회를 팔고 봄에는 미더덕 회를 차린다. 서울까지 거의 올라오지 않을 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보기 드문 메뉴다. 제철 미더덕을 먹기 좋게 반쯤 벗겨 내 차리는 회에는 손톱만 한 바다가 들었다. 개나리처럼 봄에 샛노란 망울을 틔운 미더덕이 앞니와 만나면 툭 터지며 싱그러운 바다 향을 퍼뜨린다. 부산 부산진구 부전로 35. 3만 원.



◇충무집 = 통영향토음식점이라 멍게 비빔밥이 늘 있다. 직접 담근 멍게젓으로 사철 비빔밥을 차려 낸다. 향긋한 멍게비빔밥은 짭조름하면서도 쌉쌀한 그 특유의 풍미 때문에 찾아 먹게 된다. 꼬시래기, 톳, 미역 등 바다 내음 가득한 해조류 반찬도 일품이다. 요즘은 현지 정통 가정식 도다리쑥국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상차림만 봐도 봄 바다가 한가득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30-14. 2만7000원(도다리쑥국 포함).



◇쿠마 = 제철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로 맡김(오마카세) 메뉴를 내는 일식집이다. 참치회나 방어, 민어, 황복 등을 때맞춰 차린다. 생선회와 해산물을 ‘배가 터지도록’ 차려 내 ‘용왕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오너셰프가 새벽마다 노량진에서 제철 해산물을 가져온다. 미더덕이나 멍게도 그중 하나. 셰프의 식견이 높아 맛이 좋고 회전이 좋아 재료가 싱싱하다. 늘 만석이라 예약해야 입장이 가능하고, 그날 무엇이 준비돼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9길 7 충무빌딩 2층.


매거진의 이전글 밥상 위의 스타(★), 파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