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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Mar 12. 2023

봄동·춘권·스프링롤… 혀 끝에 다가 온 ‘봄봄’

[푸드로지] 봄이 들어간 음식에 서둘러 꽃피운 밥상

‘도원스타일’에서 내는 봄동새우탕면.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이름에 ‘봄’ 이 들어간 음식

겨울철 노지서 자란 배추 봄동
단맛 좋아 겉절이·쌈채로 즐겨

中춘제때 먹는 튀긴만두 춘쥐안
한국선 춘권, 일본선 하루마키

쌀종이에 고기·채소 싼 월남쌈
해외선 ‘스프링롤’ 이라고 불려

영어권국가 ‘어린 것=봄’ 해석
스프링 램·프링 치킨 표현도



입춘(立春)이 벌써 지났다. 24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은 봄이 들어서는 날, 진정한 한 해의 시작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띠가 시작하는 시기를 입춘으로 본다.
가끔 불어닥치는 찬 바람에 아직 봄은 요원하다 생각했지만 역시나 땅의 기운은 인간의 조바심보다 위대하다.
경칩도 보내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봄이 슬슬 넘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조춘(早春)의 상륙을 소망하며 이름에 봄이 들어간 음식을 한술 먼저 떠본다.

봄은 즐거운 계절이다. 북위 37∼38도 내 위치한 한반도에선 겨울이 가장 긴 까닭이다. 하얀 계절, 은빛 계절이니 했지만 사실 이맘때면 눈도 얼음도 지겨울 만하다. 그래서 봄을 기다리는 소망을 담아 음식 이름에도 갖다 붙인다. 봄조기니 봄도다리, 봄조개처럼 제철을 강조한 이름 이외에도 아예 이름에 봄이 들어간 음식이 꽤 있다.


해남 봄동 겉절이가 올라간 백반.

봄동이 가장 입에 짝 붙는다. 듣기만 해도 귀가 즐거운 봄동은 봄 내음이 가장 물씬 녹아있는 식재료다. 봄동이란 품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울철 노지에서 자라, 결구(結球)하지 못하고 넓게 퍼져 자란 배추를 봄동이라 한다. 역설적이게도 한기 속에서 육질이 억세게 자라지 못해 오히려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강한 데다 아삭한 식감까지 좋다. 진도군이나 해남군, 완도군 등 그나마 덜 춥고 토질이 좋은 남쪽에서 많이 난다. 겉절이나 국거리, 쌈채로 먹는데 봄동 특유의 단맛이 좋아 요즘 계절 별미로 즐길 수 있다. 참기름과 고춧가루 등 한국식 드레싱으로 즉석 샐러드(생채)를 해먹어도 좋다.




베트남의 ‘춘권’ 격인 짜조.

봄 하면 춘쥐안(春卷)도 떠오른다. 일종의 만두로 밀가루 피에 채소와 해산물, 고기소 등을 넣고 둘둘 말아낸 요리인데 튀긴 것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설날 격인 춘제(春節)에 만두를 먹는 풍습이 있는 터라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입춘에 봄 채소를 먹는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 아무튼 분명한 봄날의 음식이다. 춘쥐안이 전해진 한국에선 춘권, 일본에선 ‘하루마키’라 부르는데 모두 같은 의미다. 심지어 영어권에서도 스프링롤(Spring roll)이라고 한다. 사철 맛있지만 역시 봄에 먹어야 제격인 요리인 듯하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메뉴지만 외국의 딤섬 레스토랑이나 미국식 중식당에서 인기가 많다. 특히 미국의 중식 패스트푸드 집에선 꼭 취급한다. 다만 여러 종류의 스프링롤이 있지만 튀긴 것만 판다.



베트남인이 주인인 식당 ‘포옹싸’의 스프링롤.

베트남에도 스프링롤이 있다. 사실 월남쌈이라 불리던 고이꾸온을 외국인에게 번역하는 과정에서 스프링롤(

Vietnamese spring roll)이라 했는데 춘쥐안의 영향을 받은 까닭이다. 튀겨낸 ‘짜조(chagio)’는 춘쥐안과 비슷하며, 쌀종이(rice paper)에 채소와 해산물, 고기 등을 싸서 둘둘 말아낸 것은 넴 꾸온(Nem cuon)이라 부른다. 그래서 편의상 베트남식 고이꾸온을 서머롤(summer roll)이라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하기야 베트남 기후는 늘 여름 같긴 하다.



외국에는 주로 어린 가축을 의미하는 데 ‘봄’을 쓴다. 스프링 램(spring lamb)은 늦겨울이나 이른 봄에 태어나 6월 안에 식용으로 팔리는 어린 양을 의미한다. 스프링 치킨(spring chicken) 역시 부화 이후 10주가 채 안 된 중병아리 크기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한국에선 이를 영계라고 하는데 사실 영은 한자가 아니다.

영(young)이 외국에선 봄으로 해석되고 이는 결국 청춘(靑春)까지 모두 딱 들어맞는다. 이럴 수가.


우리나라 중국음식점의 메뉴 중에는 작춘권(炸春卷)이 있다. 지금은 많이 취급하는 곳이 줄긴 했지만 예전엔 중국집 요리판에 ‘자춘권’ ‘짜춘결’ ‘짜춘걸’ 등의 이름으로 주요 요리 대우를 당당히 받던 메뉴다. 춘쥐안의 형식이지만 조금 다르다. 계란을 넓게 펴 지단(鷄蛋)을 만들고 여기다 돼지고기와 피망, 양파를 굴소스 등과 함께 볶아 올리고 둘둘 말아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시 밀가루 풀을 살짝 입혀 튀겨내고 고명을 올려 내니 어지간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래서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맛이 좋고 먹기 편해 안줏감이나 곁들이는 요리로 좋다.

알고 보면 파전도 봄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파전은 영어로 스프링 어니언 팬케이크(spring onion pancake)다. 양파에 익숙한 영어권에서 파는 그린 어니언 또는 스프링 어니언 등으로 부른다. 우리의 파와 완전 똑같지는 않다. 뿌리 부분이 둥글게 형성되는 구근(球根) 등 여러 형태의 것을 총칭해서 그리 부른다.


파전과 비슷한 중국의 총요우빙(蔥油餠) 역시 스프링 어니언을 쓴 팬케이크다. 주요 길거리 음식으로 파를 잘게 썰어 기름에 부쳐 먹는 떡이다. 기름에 튀기듯 부쳤지만 실파의 향긋한 맛이 가득해 느끼하지 않고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반면 자장면의 주원료인 춘장은 봄이 들어간 이름이 아니다. 면에 비벼 먹는 첨면장(甛麵醬)이 첨장으로, 다시 춘장으로 바뀌어 사용됐다는 설과 과거 중국음식점에서 기본 찬으로 내주는 날파를 찍어 먹는 장, 즉 총장(蔥醬)이 변화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아무튼 국내에선 영화식품의 사자표 춘장이 유명한데 1948년 처음 출시할 당시엔 면장이라 썼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봄을 그리는 곳은 동아시아가 유난하다. ‘춘(春)’은 많은 중국음식점 상호에 사용되기도 한다. 연래춘, 회락춘, 덕화춘, 복무춘, 대성춘, 동생춘, 동화춘, 영춘원 등 주로 화상(華商)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많은 사례가 있다. 1908년 개업해 국내 중국음식점의 초창기 가게로 알려진 공화춘(국가등록문화재 246호) 역시 봄 춘을 쓴다.



‘어떤 의견’에 따르면 춘은 봄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 신선함 등에 쓰이기도 한다. 신선한 재료를 수준 높은 음식으로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상호에 사용한다고 추측된다. 게다가 대대로 전해지다라는 ‘촨(傳)’과 비슷한 발음이라 의미를 강조하는 중국의 문화에 들어맞는다고도 했다. (이 의견은 놀랍게도 요즘 똑똑하다고 소문난 ‘챗GPT’ 가 달랑 5초 만에 제시한 것이다.)


아무튼 노랫말처럼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다. 듣기만 해도 벌써 마음 설레는 봄이 든 음식에 입맛도 피어나고 몸은 한결 푸근해진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봄동새우탕면 = 도원스타일. 더플라자호텔의 그 도원(桃園)이 맞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식음 분야 자회사 더테이스터블이 도원스타일과 티원스타일을 곳곳에서 운영한다. 최근 봄 메뉴로 출시한 봄동새우탕면이 좋다. 커다란 타이거새우와 해삼, 오징어도 가득 들었지만 봄 기운 가득한 봄동과 죽순이 한몫한다. 국물을 뜨자면 봄 바다를 마시는 기분이다. 2만1000원. 서울 양천구 목동동로 257 현대백화점 6층.


◇스프링롤 = 포옹싸. 베트남인이 직접 운영하는 정통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얇은 라이스 페이퍼에 고기와 새우, 채소를 말아낸 스프링롤이 이름처럼 봄의 기운을 품었다. 잘게 채를 썰어 담은 소는 아삭하면서도 부드럽다. 깔끔한 국물의 포와 후띠우를 골라서 맛볼 수 있고 볶음밥과 덮밥, 바인미도 있다. 6000원. 서울 은평구 통일로 1022 신한헤스티아 2차 115호.


◇춘권 = 홍복성. 딤섬집이면서 다양한 요리를 판다. 춘권이 맛있다. 얇은 피로 둘둘 말아 바삭하게 튀겨낸다. 군만두와는 또 다른 식감이다. 한입 베어 물면 껍질이 부서지며 뜨거운 육즙을 품은 고기소가 나온다. 고기와 채소를 잘 다져 넣은 소가 짭조름해 백주와 함께 즐기기 좋다. 5000원.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총요우빙 = 향미. 서울 연남동에서 화교가 운영하는 노포다. 요리와 만두를 잘하는 집인데 다른 곳에선 보기 드문 메뉴인 총요우빙을 판다. 파는 영어로 스프링 어니언이다. 쫄깃한 식감에 고소한 기름맛, 그리고 향긋한 파 내음이 고루 배어 있다. 익숙하지 않지만 대만 타이베이 야시장의 대표적 길거리 메뉴다. 파전처럼 죽죽 찢어 집어먹기 딱이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93. 6000원.


◇자춘권 = 진미. 신라호텔 출신 오너셰프가 중식의 중원 격인 연희동에다 차린 집. 센 불에 단번에 볶아낸 고기와 채소를 얇디얇은 지단에 말아낸 다음, 다시 굽듯 튀겨낸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메뉴다. 바삭한 껍질 속에 촉촉하고 풍미 가득한 고기볶음이 들었다. 메뉴판에도 적혀있지 않고 예약해야만 먹을 수 있지만, 어찌 알고 많은 이가 찾는다. 3만 원.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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