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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Jan 29. 2023

동토를 뚫고 영근 겨울땅의 맛

[푸드로지] 달고 부드러운 겨울 채소의 매력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면역력 높이는 제철 채소

해풍맞은 시금치, 향긋·달달
커리·파스타 요리 등에 활용

양배추, 일본 통해 전래됐지만
대만에선 ‘고려채’ 라고 불러
순대볶음·야키소바에 ‘필수’

시원한 동치미, 유럽서 인기
일본선 오뎅 요리에 무 넣기도



방어, 삼치, 꼼치, 복어, 굴, 꼬막, 과메기, 대게…. 겨울에 맛이 단단히 드는 제철 어패류가 폭발적 인기를 넘어 아주 난리다. 곳곳 가게마다 입점을 알리는 표찰을 붙였지만 그보다 손님들로 길게 드리운 줄만 봐도 먼저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뿐일까. 겨울이 단단히 깊었는데 어찌 물에만 제철이 있으랴. 땅에 올라온 계절 식의 유혹도 만만찮다. 눈 덮인 동토. 그 굳은 땅을 뚫고 제대로 맛이 영근 겨울 채소 덕에 우리의 식탁에는 훈훈함이 감돌고 있다.


예전에는 날이 추우면 푸성귀를 재배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겨우내 먹을 채소를 가을걷이 때 준비해야 했다. 대표적으로 김장이 그것이다. 아니면 무 구덩이를 파묻어 두거나 시래기며 우거지 등을 말려뒀다가 그때그때 썼다. 하지만 요즘은 하우스 재배를 통해 맛난 겨울 채소가 싱싱한 상태로 출시되니 면역과 함께 건강한 계절 나기에 퍽 도움이 되고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겨울 채소는 시금치다. 추운 날씨에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당분을 듬뿍 함유한 시금치가 가장 맛있을 때가 요즘이다.



특히 남부 해양성 기후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시금치의 맛이 좋기로 소문났다. 남해군 보물초와 포항시의 포항초가 브랜드처럼 유통되고 있다. 남해안 다도해 섬 일대에서 노지 재배한 섬초도 있다.



시금치는 세계적으로도 즐겨 먹는 채소 중 하나다. 만화영화 ‘파파이(Popeye)’에서 위기에 몰린 뽀빠이가 힘을 내기 위해 먹는 통조림도 시금치(Spinach) 조림이다. 극 중에선 초인적 힘을 내는 음식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철분 미네랄과 비타민A, 엽록소 등의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채소보다 월등히 높은 건 아니다. 오히려 요로결석을 유발하는 옥살산이 많아 생엽으로 섭취하면 좋지 않다고 한다.



시금치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채소도 드물다. 어딜 가나 시금치 커리(팔락파니르 커리)나 크림 스피니치 파스타, 괴즐레메(튀르키예식 크레페) 등 시금치를 활용한 각국의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참고로 시금치는 우리말 같지만 사실은 지단(鷄蛋)처럼 토착화된 중국어 단어다. 처음에 들여올 때 붉은 뿌리채소란 뜻의 ‘치근차이(赤根菜)’였는데 시금치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는 것. 얼마 전 설날 밥상에 오른 나물이나 잡채에서 봤듯 시금치는 향긋하고 달달한 맛을 선사하고 있는 겨울의 선물이 분명하다.




 야래향 ‘부추잡채’



호부추 역시 대표적 겨울 제철 채소다. 호(胡)는 중국을 뜻하니 결국 중국 부추란 뜻이지만, 따로 이런 품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재배할 때 흰색 줄기가 길고 두툼하게 자라도록 해서 이 부분까지 채취해 수확하면 호부추가 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녹색 부추 이파리가 아니라 쪽파처럼 하얀 대로부터 길쭉하게 뻗었다. 이 역시 포항산이 유명하며 겨울에 수확해야 부드럽고 향이 진해 제대로 값을 받는다. 그 때문에 중국음식점에서 지우차이로우쓰(부추잡채) 메뉴에는 어김없이 ‘겨울 한정’이라 붙어있다.



조리할 때 채 썬 고기(肉絲)를 많이 넣지만 사실 요리의 주인공은 바로 호부추다. 돼지 뒷다리 살보다 값도 더 나간다. 호부추는 일반 부추보다 서너 배 이상 비싸다. 채소볶음은 싸야 한다는 소비자 선입견으로 요즘은 메뉴를 취급하는 집이 드물지만, 가끔 화상(華商)이 옛날부터 운영해온 요릿집에서는 이 반가운 요리를 찾아볼 수 있다.



배추도 겨울 배추가 맛이 좋다. 봄동도 그렇지만, 늘상 보던 결구배추도 겨울에 시원하고 달달한 맛을 낸다. 배춧국을 끓이거나 배추전을 지지면 확연히 맛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슴슴한 맛의 배추전은 배춧잎을 뜯어다 번철에 겨우 숨만 죽여 맛보는 음식이다. 주로 경상도나 강원도 지방에서 해먹는 음식인데, 특유의 달고 시원한 맛으로 이곳 출신인 이들에겐 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메뉴다.




포스터 ‘야키소바’


양배추도 겨울을 탄다. 지중해 원산인 양배추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경작해온 작물이다. 기타 잎채소보다 단맛을 내는 데다 특유의 하얀색 즙이 몸에 좋다는 인식이 있어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식탁을 점령했다. 약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생으로 샐러드를 하거나 삶아서 쌈채로 쓴다.



양배추를 특히나 즐기는 일본에선 오코노미야키나 야키소바에 어김없이 넣는다. 구시카츠(꼬치튀김) 집에선 기본 안주로 생양배추를 썰어 낸다. 한국에서도 순대(곱창)볶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양배추다. 독일과 네덜란드, 폴란드 등에서도 양배추를 절여 발효시켜 겨우내 먹으며 채소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데 독일 자우어크라우트와 네덜란드 쥐르콜, 폴란드 카푸스타 키쇼나 등이 유명하다.



양배추는 19세기 일본을 통해 전래됐지만 신기하게도 대만에선 양배추를 ‘가울리차이(高麗菜)’라고 부른다. 고려에서 온 것은 아니나 양배추를 뜻하는 라틴어가 콜리스(caulis)라서 이를 ‘가울리(高麗)’로 음차한 것이다. 맞다. 라틴어 콜리스는 콜리플라워의 그 콜리이며 브로콜리의 어원이 되기도 하다. 모두 다 겨울이 제철이다.



월동 무가 가장 맛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당연히 동치미가 기본이다. 뜻 자체가 겨울(冬) 김치(沈菜)란 뜻이다. 무를 쓰고 희멀거니 한 것이 김치 변종 같지만 사실은 김치의 조상이자 원조다. 배추김치보다 최소 1000년 가까이 이른 역사가 있다.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기 전에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 한술 떠먹으며 식욕을 살리는 전채 구실을 한다.



동치미는 매운맛에 약한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좋아 요즘 한식 세계화에서 빠지지 않는 찬으로 맹활약 중이다. 특히 유럽계 서양인과 일본인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생채로도 먹고 국에도 넣고, 조림 등에 빠지지 않는 등 무의 활약도 대단하다. 일본에선 겨울에 많이 만들어 먹는 오뎅(おでん) 요리에 가마보코(흰살생선묵), 규스지(소힘줄), 곤약 등과 함께 다이콘(大根·무)을 푹 익힌다.



무와 비슷한 종류인 비트(beet)도 가을에 파종해 겨울 한복판에 수확한 것을 최상으로 친다. 단맛이 좋은 까닭이다.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레드비트는 즙을 내거나 샐러드에 주로 쓰는데 요즘은 다양한 요리에 활용된다. 심지어 깍두기를 담그는 창의력(?)을 보이기도 한다. 제주산이 유명하다.



우엉과 피망도 겨울 것이 맛있다. 요즘 굵은 회초리처럼 생긴 우엉이 시장 좌판에 쏟아진다. 이뇨작용의 이눌린과 장 청소에 좋은 식이섬유가 풍부한 우엉은 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구수한 맛과 효능 덕에 차로 즐기는 이도 많다. 주로 채를 썰어 볶아 먹는 반찬이 연상되지만, 송송 썰어 찜요리나 불고기, 영양밥 등에 넣기도 한다. 특히 설탕 간장에 조려 말아낸 우엉 김밥은 향과 맛이 좋다.



더덕 역시 겨울에 빛을 내는 뿌리채소다. 더덕을 두들겨 양념을 발라 직화로 구워내면 향긋한 채식 불고기가 된다. 눈 내리는 날 청량한 바람이 드나들 적에 한점 집어 들면 그대로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모진 한파 속에도 땅의 기운은 얼어붙지 않았다. 그 땅에서 자란 겨울 채소 맛을 헤아려보자니 흐뭇하고 든든하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호부추 = 야래향


화상이 운영하는 노포 중국음식점이다. 튼실한 호부추를 채 썬 돼지고기와 함께 재빠르게 볶아 향긋하고 아삭한 상태로 차려낸다. 계절의 별미라 놓치면 아쉽다. 4만5000원. 서울 용산구 이촌로75길 22-5 2층.



◇우엉 = 보배김밥


우엉김밥으로 전국구 명성을 얻은 집. 달콤 짭조름하게 조려낸 우엉을 김밥에 넣고 말아주는 것도 모자라 위에 듬뿍 얹어주기까지 한다. 우엉이 김밥 안에서 특유의 향기를 더하고 아삭하면서도 쫄깃한 식감까지 책임진다. 5000원. 우엉조림도 따로 판다. 3만 원. 경북 경주시 원화로281번길 11 성동시장 내.



◇무 = 희로


어묵, 소힘줄, 곤약, 무 등을 따로 파는 진정한 정통 오뎅바로 소문났다. 자작한 국물에 하나씩 단품으로 주문해 맛볼 수 있다. 오뎅이나 다른 메뉴 모두 값도 저렴하고 맛이 좋지만, 그중에서도 푸딩처럼 부드럽고 단맛은 절정에 이른 무(다이콘)는 무조건 맛봐야 한다. 3000원.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 325.



◇시금치 = 더 히말라얀


현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 시금치와 코티지 치즈를 넣어 만든 팔락 파니르 커리는 시금치 특유의 달달하고 풋풋한 향기와 감칠맛이 좋다. 당당히 추천 메뉴로 꼽힌다. 밥이든 난이든 듬뿍 얹어 입안에 넣으면 그윽한 풍미가 가득 찬다. 9000원. 난 2000원. 경기 파주시 새꽃로 196 2층.



◇양배추 = 포스터


오붓한 가게지만 꽤 다양한 메뉴와 함께 와인,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다채로운 국적의 식사 및 안주 메뉴가 있다. 새우 크림커리부터 명란 비빔밥, 골뱅이 우동 샐러드 등 한식 메뉴. 심지어 샥슈카도 있다. 양배추를 듬뿍 볶아서 낸 차돌박이 야키소바도 있다. 1만2000원. 경기 고양시 덕양구 동송로 33 1층.



◇배추 = 방천찌짐


명색은 배추전이지만 재료라고 달랑 배추 잎사귀 한 잎에 멀건 밀가루 반죽뿐. 특별한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겨울 배추 특유의 달달하고 시원한 맛을 느끼는 메뉴다. 주문 즉시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뜨겁게 부쳐낸다. 방천시장 안에 있다. 배추전. 5000원.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446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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