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 노비가 되버린 어느 봄날의 체크인
3시!
그녀는 단호했다.
예약사이트의 약관마다 동의를 하느라 체크인 시간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것은 물론 내 잘못이었다. 으레 2시겠거니 하고 찾아간 호텔은 무척 차갑고 매정했다.
청소가 되어있지 않아도 되니 무거운 가방 만 두고 오겠노라 사정했지만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불분명한 턱을 두번 쯤 들어 탁자 쪽을 가리킬 뿐이었다.
마음은 급하고 바빴지만 로비에 그대로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친절하게도 뉴욕과 런던, 두바이 그리고 서울의 시간을 알려주는 4개의 시계 중 하나는 이제 겨우 2시를 표시하고 있을 때였다.
제크를 나르는 개미처럼 외국인 서넛이 커다란 캐리어백을 끌고 줄지어 나타났다.
"쓰리"
그는 여전히 단호하고 깐깐했다. 내국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한결같았다. 도널드 트럼프나 반기문처럼 자국민에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부터 셋까지만 셀 수 있는 프로레슬링 심판처럼 그녀는 언제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3(영어나 숫자나)을 말할 뿐이다.
별 수 없다. 로비를 장식한 어설픈 그림을 감상하다 겨우 한 자리 남은 소파자리를 찾아 앉았다. 허리받침은 직각이고 독일 빵처럼 딱딱했지만 3시 전에 앉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저어, 3시 전에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을까요?"
그녀는 무심하게 패스워드가 적힌 큰 종이를 내밀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 프론트 바 위에 놓고 다시 턱으로 가르켰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본 다음 불안했다.
패스워드가 적힌 종이가 왜 A4 반만한 지를 눈치챘어야 한다.
NASA나 펜타곤의 위성 공대지 공격 장치 암호처럼 복잡한 패스워드를 넣고(몇번 틀렸다), 무료 와이파이를 켜자 2에서 3으로 가는 길이 더욱 험난해졌다.
갑자기 내 낡은 LG V10의 안드로이드 OS가 동의도 없이(그런걸 스스로 체크했겠지만) 업그레이드를 시작한 까닭이다.
동의를 물었어야지. 내가 주인인데. (하긴 내가 LG V10을 구입해서 폐기한 3년 여의 시간 동안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요금제가 유일했다.)
이 바람에 로비에 있는 동안 굉장히 심심해졌다.
인테리어와 그림의 배치를 지금도 외워 그릴 수 있을 정도다.
2에서 3으로 가는 길은 꽤 긴 항해였다.
앱최적화가 32 / 288 정도 되었지만 그 무거운 시침은 고작 1.5도 정도 내려왔을 뿐이다.
이따금씩 그가 외치는 단지 3이라는 숫자(쓰리 포함)를 수도 없이 들었을 뿐이다.
3시까지 그녀가 말한 3을 모두 더하자면 아무래도 100은 훨씬 넘었을게 틀림없다.
정작 3시가 되자 수많은 3의 노예들이 프론트로 몰려들었다. 3에서 3과 1/2로 가는 순간이었다.
OS업그레이드가 끝난 3시30분에야 겨우 들어간 호텔은 예상대로 작고 불편했다. 수도꼭지도 냉장고도 프론트의 그녀처럼 차갑고 단호했다.
문득 입구에 "트립어드바이저에 후기를 남기면 혜택을 준다"는 문귀가 떠올랐다. 아마도 2시30분 쯤에 입실하게 해준다는 굉장한 혜택일테지. 하지만 난 이미 들어왔다고. 하하하.
몇번이고 방문을 확인한 후 프론트를 나서는 순간, 그가 나를 불러세워 말했다.
10시!
내일 체크아웃 시간을 상기 시켜주는 그녀의 최초이자 마지막 친절어린 말투였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