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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Sep 28. 2023

망원동 사람들

[수필로그] 망원동 사람들 1

망원동 사람들


나는 죽 망원동에 살았다. 태어난 건 아니다. 대구직할시에서 부산직할시로, 거기서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더랬다. 세상 어지럽던 1981년의 어느 봄이었다.


와, 니는 좋겠다. 서울에는 고가도로도 있고 전철도 있고   


부산직할시 한복판 서면 전포동에 살며 전포국민학교를 다니다가, 4학년 학기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서울특별시로 전학을 간다니까 ‘짝지’가 엄청 부러워했다.     

사회 교과서에 수록된 흑백 사진(아마 삼일빌딩과 청계 고가도로였을 것이다) 한 장, 그 사진이 상징하는 수도 서울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내게도 있었다.

 

바로 이 사진에 희망을 품고 상경했더랬다.



이삿짐 트럭을 타고 늦은 밤 대망의 서울에 발을 디뎠다.

서울의 첫인상은 퍽 어두웠다.

새벽 짐을 쌌지만 새집에 도착하기까진 꼬박 한나절이 넘게 걸린 탓이다. 그리고 성냥갑을 쌓은 듯한 연립주택에서의 깊은 밤, 더 깊은 잠을 잤다.

    

드디어 서울의 아침이 밝았다.     


서울이라더니...   


난닝구 차림으로 집 앞에 텃밭을 가꾸는 이웃 아저씨, 사루비아 꽃잎을 뽑아 꿀을 빨아먹는 아이들, 시커먼 물이 고여 멈춰선 개천, 한강으로 향하는 뒤편으론 무성한 갈대숲과 늪지. 오후마다 난지도에서 불어드는 쓰레기 바람.

주변을 나가보니 정말 커다란 밭도 곳곳에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네에 백화점도 있어서 에스컬레이터도 타고 놀았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었다. 시골과 다름없었다. 다들 유수지 아니면 용머리라 불렀다. 용머리 슈퍼도 있었다. 서울 용머리로 이사온 줄 알았는데 생활기록부에 주소를 적자니 망원1동이었다. 

  

내가 입성한 서울, 그곳은 망원동이었다.     


망원동.     


42년이 흐른 지금, 망원동은 밀리니엄 시대 ‘힙’한 곳의 대명사 격인 <망리단길>이라 불리고 많은 ‘서울관광객’들이 망원역에 내려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겐.     



▲최대의 ‘수해자’, 망워니언     


여기서 ‘우리’란 1984년 최악의 수해를 겪었던 망원동 사람들, 그중에서도 1971년도에 태어난 돼지띠 들을 의미한다.     

난 운이 좋게도 1984년 수해만큼은 피해갔다. 1982년에 반지하 집에 살다 수해를 겪고나서 넌덜머리가 났던 아버지가 성산동 꼭대기 연립주택으로 집을 옮겨버린 덕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처럼 뭔가 계시를 받은 듯 했다. 어쨌든 혜안이었다.     


어쨌든 내겐 귀하디귀한 <동교초등학교 제7회 졸업앨범>이 남아있다. 노아의 방주처럼 성산동 성미산 꼭대기에 걸려 남은 한 권이다. 앨범이래봤자 표지까지 열 여덟 장 짜리 흐릿한 16절지 사진첩에 불과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갖고 있지 않다. 대부분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한강 구정물에 모두 흘려버린 탓이다.     


잠깐, 망원동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간략한 설명.     


수해를 겪은 후 망원동 사람들은 ‘망해서 원망하는 동네’라고 자조적으로 불렀지만 사실 거창한 역사가 있다. 


망원(望遠)이란 이름은 망원정(서울특별시 기념물 제9호)에서 유래했다. 옛날에 무슨 왕자(효령대군)가 양화나루 쪽에 정자를 하나 지었는데 처음 이름은 희우정(喜雨亭)이라 했다. 

    

무슨 우동집 체인 이름같은 ‘희우동’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보단 망원동이 차라리 낫다.     


200여년 후 성종의 형(월산대군)이 ‘먼 곳까지 잘 보인다’해서 망원정(望遠亭)으로 개칭했다 한다. 왕족이지만 생각이 단순했다.     


원래 있던 망원정은 1925년 홍수(옛날에도 역시 ㅠㅠ)로 유실됐고 1991년에야 합정동에 복원됐다. 이름만 망원동에 넘겨주고 유적은 합정동에 있는 셈이다. 복원된줄도 몰랐다.     


지금은 복개가 된 개천(한강까지 흘러감)을 사이에 두고 망원1,2동이 있으며, 홍제천 건너엔 과거 ‘난지도’라 불리던 상암동이 있다. 성미산 쪽으로 길(월드컵로)을 건너면 성산동, 서교동이 나오고 마포쪽으로 가면 합정동이다.     


나름 한강 변인 리버사이드 타운인데 다들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망원역과 마포구청역, 합정역이 있는 더블 역세권 동네지만 예전엔 목동과 함께 택시가 기피하는 택시의 블랙홀이었다.     


연립주택이 많은 탓에 인구는 바글바글한데 동네엔 뭐가 없으니 들어가면 무조건 빈차로 나온다 해서 망원동하면 택시 기사들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

대신 싼 땅값 덕(?)에 곳곳에 차고지가 있어 버스 노선은 많았다. 88번, 331번이 유수지 쪽을 가고, 요즘으로 따지면 월드컵로에는 면목동까지 가는 경성여객 131번, 132번이 다녔다. 그 중간에는 361, 7-1번 버스가 있었고 도원교통 2번 버스도 마포구청으로 회차해서 정릉을 갔다.

어쩌다 한번 오지만 135-1번도 다녔다.


<2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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