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지] 추석 차례상 최고의 존재감, 갈비찜
서울 여의도 ‘사대부집 곳간’의 갈비찜.
과연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수식에 어울리도록 추석 상차림에는 좋은 음식이 많다. 예전부터 그랬다.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이는 것이야 일상이지만 귀한 쌀로 떡을 하고 기름을 두르고 전을 부치는 것은 평소엔 보기 힘든 풍경이다. 그래서 직장에선 그나마 괜찮은 차례상을 차릴 수 있도록 ‘떡값’이라 해서 돈을 줬다.
추석에는 많은 찬들이 상에 오르지만 이 가운데서도 최고로 치는 것은 바로 갈비찜이다. 갈비찜을 올리려면 돈도 품도 많이 든다. 인기도 좋다. 정작 음복을 할 때면 가장 젓가락이 바삐 오가는 음식이 갈비찜이다. 송편과 각종 전, 나물, 조기 등 여러 가지 진미가 있지만 갈비찜의 존재감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비단 추석 상뿐만 아니라 갈비는 한국인이 여러 음식 중 가장 최고로 치는 음식이다. 고기가 귀하던 옛날엔 더 그랬다.
반가 요리는 물론, 궁중 요리에서도 최상급 음식으로 친다. 산해진미 가득한 수라상에 당당히 오르던 것이 갈비다.
서울 무교동 ‘해봉정육’의 매운갈비찜.
갈비는 가축의 늑골에 붙은 고기 부위다. 옛말은 가리, 함경도에선 지금도 그리 부른다고 한다. 갈라진 뼈라 해서 갈비로 불렀다고도 하고, 배골(排骨)이 거꾸로 뒤집혀 갈비가 됐다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중국에선 배골 그대로 파이구(排骨)라 한다.
아무 때나 구하기 쉽지 않은 가축의 특정(늑골) 부위인데 누구나 좋아하기까지 하니 이를 사용한 음식은 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갈비찜은 ‘있는 집’ 차례상에나 올라갔다. 특히 추석이면 가을이니 대추와 밤 등을 쓰고 잣, 은행까지 곁들여 찜을 했다. 고기 핏물을 빼고 밤을 깎고 잣을 까니 손도 많이 간다. 여염집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채소와 설탕의 은근한 단맛에 간장의 짭조름한 맛, 그리고 갈빗대의 두툼한 고기가 내는 지방맛까지 곁들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단백질과 약재를 공급하니 먹는 보약으로 통용됐다. 없는 집에서도 ‘땡빚’을 내서 차린다는 차례상의 주연배우였으니 현대에 들어 한식당의 고급 메뉴로 둔갑하는 것은 별일 아니었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등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영화 ‘기생충(2019년)’에서 부자인 박 사장(고 이선균 분)은 운전기사인 기택(송강호 분)에게 “김 기사님, 그 갈비찜 잘하는 데 혹시 좀 아세요?”라고 묻는다.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의 재산 규모로 미뤄 볼 때 갈비찜은 여전히 고급 음식의 아이콘으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혼사 때 하객에게 대접하는 갈비탕만 해도 탕 중에 제왕이라 할 수 있는데 고기를 더 많이 쓰는 갈비찜은 더 고급이다. 갈비구이 급에 해당한다. 물론 좀 더 저렴한 돼지갈비찜도 있다. 하지만 갈비찜이라 하면 보통 소갈비찜을 의미한다.
인천 ‘송도갈비’의 소갈비구이.
갈비찜의 유래에 대해 기록한 문헌은 없다. 하지만 여러모로 북방 유목민의 음식과 유사하다. 소나 양을 잡아 자작하게 쪄서 먹던 것이 요리문화가 첨예하게 발달한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1766년(영조 27년) 편찬된 생활백서인 증보산림경제에 나오는 우협증방(牛脇蒸方)이 갈비찜과 유사하고 1800년대 말의 요리서인 시의전서에는 아예 갈비의 옛말인 가리찜으로 나온다.
갈비찜. 이름에는 찜이 들어가지만 간장으로 자작하게 조리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갈비를 통째로 쓴 소고기 장조림에다 이것저것 더해 일품요리로 내는 방식이다. 다만 품이 많이 가는 데다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기가 퍽 어려운 음식이다. 질기거나 퍽퍽하지 않고 간이 잘 배어 들도록 조려내는 것이 기술이다. 주로 한정식 상차림의 메인 요리 자리를 차지하거나 한식 코스 요리에 주연급 순서로 등장하지만 따로 단품으로 팔기도 한다. 갈비찜 정식이라 해서 밥과 국을 묶은 세트도 찾아볼 수 있다.
워낙 역사적으로 오래되고 유명한 음식이라 따로 원조를 자처하는 지역은 드물다. 전국적으로 갈비찜을 취급하는 식당은 많다. 굳이 명물을 찾아보자면 경남 함양의 안의면 지역에 안의 갈비찜이 유명하고 마늘과 고춧가루를 잔뜩 넣은 대구광역시의 찜갈비가 지역을 대표하는 별미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에도 갈비찜과 비슷한 요리가 있다. 레드와인으로 송아지 고기를 조려내는 프랑스의 뵈프 부르기뇽(Bœuf Bourguignon)이나 영국의 비프 스튜가 얼핏 갈비찜과 모양새가 닮았다. 100여 년 전에 이미 비프 스튜를 간장으로 흉내 낸 일본의 니쿠자가(肉じゃが)는 더욱 비슷하다. 고깃덩어리를 감자와 함께 조려서 내는 요리다.
우리 갈비찜을 덮밥 형태로 간소하게 만든 가루비동(カルビ)도 있다. 이 역시 갈비가 들어간 덕(?)에 규동(소고기덮밥)집에서 가장 고급 메뉴로 군림하고 있다. 보통 소고기덮밥인 규동보다 100∼200엔 정도 더 비싸다. 인도네시아의 렌당(Rendang)이나 필리핀의 아도봉 바카(Adobong baka)와도 유사점이 많다. 간장을 쓰는 까닭이다. 돼지갈비를 간장에 조려내는 중국 훙샤오파이구(紅燒排骨)는 아예 눈으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다만 한국의 갈비찜은 궁중요리로서의 품격을 두루 갖춘 덕에 모양새에도 월등한 기품이 서려 있다. 흰자와 노른자를 색색 분리해 부쳐낸 지단(鷄蛋)과 가느다란 실고추, 밤과 대추, 잣, 은행, 단호박 등을 얹는 등 꾸밈새가 화려하기 그지없다. 외양도 좋지만 내용은 더 그렇다. 값비싼 한우 갈비를 큼지막하게 뭉텅 썰어 넣는다는 것 자체가 고급스럽다. 심지어 요즘은 송이나 능이버섯에다 낙지, 전복을 넣는 경우도 있다.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무더위에 지친 터라 저만치 오는 가을이 반가운지 추석을 앞둔 마음이 벌써 싱숭생숭하다. 게다가 벌써 갈비찜 한 점 집어 입에 욱여넣을 생각에 어서 달이 영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 진고개
= 내외국인에게 유명한 식당 ‘진고개(珍古介)’는 충무로에 있다. 1963년 문을 열어 60년 이상 영업 중인 노포다. 어복쟁반과 게장 등의 메뉴도 알려졌지만 갈비찜 정식을 파는 보기 드문 집이다. 1인분에 한 냄비씩 제공하는 갈비찜은 푸짐하다. 달큼하면서도 진한 간장 맛에 한약재 향까지 살짝 난다. 오래 조려내 보들보들 결대로 찢어지며 고소한 맛을 남긴다. 얼마나 부드럽게 잘됐는지 갈비뼈에 바로 붙어 있는 콜라겐 성분 막까지 부드럽게 씹힌다. 서울 중구 충무로 19-1.
◇ 벙글벙글 찜갈비(사진)
= 대구에선 ‘갈비찜’이 아니라 ‘찜갈비’라 한다. 대구 찜갈비는 매운맛을 선호하는 지역 특유의 입맛대로 찌고 조려낸 음식이다. 화끈한 고춧가루와 얼얼한 마늘이 잔뜩 들었다. 대구시청 인근 동인동 찜갈비 골목의 벙글벙글 찜갈비는 두툼한 갈비를 부드럽게 조리한 대구식 찜갈비를 파는 집. 골목이 생겨난 초기부터 영업해오고 있다. 뒤집어쓴 양념은 매콤하지만 그 안에 육즙은 살아있다. 양념 국물에 밥을 비비고 갈비뼈 찌개까지 함께 하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대구 중구 동덕로36길 9-12.
◇ 사대부집 곳간
= 서울 여의도 전경련(현 한경협) 회관 50층에 위치한 한식당. 서울 남부권을 파노라마로 바라볼 수 있는 풍경만큼이나 음식 맛도 좋다. 큼지막한 전복을 넣은 갈비찜을 반상 형태로 내온다. 입에 넣으면 결대로 스르르 분해될 만큼 부드러운 고기가 깔끔한 양념국물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칼집을 낸 전복도 마치 한천 젤리처럼 말캉해 고기와 잘 어울린다. 반상에는 국과 반찬이 함께 제공되지만 죽과 샐러드, 여러 요리, 떡, 디저트 등도 뷔페로 실컷 이용할 수 있어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따른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24 FKI타워 50층
◇ 해봉정육
= 고급 정육식당의 콘셉트로 운영 중인 고깃집. 점심에 매운 갈비찜을 판다. 같은 매운 맛의 갈비찜이지만 대구의 찜갈비와는 다르다. 마늘 향이 강하지 않고 매콤하면서도 살짝 달달한 고추장 베이스다. 1인분씩 주문할 수 있는데 국물이 꽤 많이 들어있어 점심 메뉴로 밥을 비벼먹기에 딱이다. 식사메뉴지만 갈비찜 특유의 품위는 잃지 않았다. 갈빗대가 은근히 많이 들고 지단도 떡도 들었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 24 케이스퀘어시티 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