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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 듣는다, 그리고 먹고 싶어진다.

짜파구리 히트로 살펴본 대중문화 속 음식이야기(1)

by 이우석 더 프리맨
본다 듣는다, 그리고 먹고 싶어진다.
히트한 대중문화가 내뿜는 파급력은 엉뚱한데서 표출되기도 한다.
역대 한국영화 사상 가장 해외수상과 역시 가장 많은 해외 관객동원을 기록 중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에는 특이한 음식 하나가 등장한다. 그 별 것 아닌 음식이 세계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로 짜파구리Ramdon다.

짜파구리의 인기가 시들줄 모른다. 사상 최고 수준의 포비아를 동반한 역병이 창궐하고 있는 중에도 극심한 ‘사재기’는 마스크와 너구리, 그리고 짜파게티 정도다.

SNS 상에도 짜파구리가 넘쳐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 채끝(살)짜파구리를 검색하면 수천 건이 도출된다.

외국 SNS에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짜파구리를 번역한 단어 람동(Ramdon 라멘+우동)의 검색어는 수많은 짜파구리 인증샷 포스팅으로 이어진다.

한우 채끝살을 넣었든 아니든 간에 짜파구리에 대한 궁금증은 필름을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얼마 전 미국 서부와 일본 슈퍼마켓에서 짜파게티와 너구리만 동이 난 사진이 SNS 상을 떠돌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 광화문 프리미엄 쇠고기집 한육감과 현대백화점 푸드코트 등에서 채끝 짜파구리를 출시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두 제품의 브랜드는 모두 농심이다. 내용 속 간접광고PPL를 하지 않았던 농심이 표정관리를 해야 할 정도로 매출이 동반 신장했다.

한국영화 사상 가장 많은 해외 수상을, 그것도 오스카를 4개나 거머쥔 영화의 조연급보다 더 큰 관심과 조명을 받은 덕이다.

이처럼 음식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가끔 대중문화를 숙주로 집결, 표출되기도 한다.

2018년 가수 화사(마마무)가 곱창을 즐긴다는 방송이 나간 후 이어진 곱창의 품귀 사태와 몇해 전 ‘무한도전’에서 선보였던 창작곡을 따라 인기가 동반상승한 냉면이 그렇다.


매스미디어와 개인 미디어의 홍수를 타고 생겨난 현상일까, 그렇다면 이전엔 없었을까.

찾아보니 꽤 된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서영춘)’은 둘째치고 라도 영화 방송 가요 등 대중문화나 유행어 속 음식이 인기를 끈 것은 여러 경우가 있다.

1980년대 코미디언 고 김형곤의 캐릭터 ‘공포의 삼겹살’은 원래 세겹살로 불리던 삼겹살의 유행에 기름을 부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년)에서 오대수(최민식 분)가 극중 15년간 먹었던 군만두는 아직 물리지 않은 관객들에게 식욕을 이식했다.

풀려난 오대수는 산낙지를 씹으며 이우진(유지태 분)에게 “내가 잘근잘근 씹어먹을 테니까”라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올드보이가 그해 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며 해외의 호평을 받자, 덩달아 산낙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외국인들은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기겁을 하면서도 ‘저게 맛있을까’하는 궁금증도 커졌다.

2018년 한국관광공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식 중 외국인의 관심이 가장 높은 이색음식 1위에 산낙지가 올라있다. 무려 26.0%가 산낙지를 꼽았는데, 2위를 차지한 간장게장 14.6%보다 2배 가까운 관심을 보였다.

대중문화의 여러 요소가 모인 영화 장르 속에 등장한 음식은 자연스레 캐릭터와 함께 융화되며 많은 관심을 끈다.

의류나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히트 영화 속 나오기만 하면 관련 매출이 상승한다는 얘기다.

오히려 다른 상품과는 달리 먹는 장면은 클로즈업되는 경우가 많아 보는 이로 하여금 욕구를 살리기에 더 좋다. ‘푸드 포르노’란 말도 그렇게 등장했다.


원래는 없던 음식이 생겨나 유행하기도 한다.

2018년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은 개봉 전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수원왕갈비통닭’을 만들어냈고, 그 상품은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찾아보면 뭔가 특별한 음식보다는 일상식이 많다.

짜파구리도 살짝 걸쳐있듯 짜장면은 대중문화 속 단골 소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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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3에서 불사파 조필(송강호 분)과 그의 동생들이 매일 먹던 음식 짜장면, 자막이 오르고 나면 극장 앞 중국집에는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이 몰려가 짜장면을 주문했다.

GOD의 히트곡 어머니. 노래 속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했지만 노래를 들은 이는 왠지 모르게 짜장면이 당겼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우형사(박중훈 분)와 김형사(장동건 분)가 잠복 중 뜨끈한 설렁탕 한 사발을 떠올린다. 함께 잠복근무라도 하는 듯 숨 죽였던 관객들에게도 같은 식욕이 눈을 타고 이입되는 것이다.

영화 변호인(2013년)에선 부산 음식인 돼지국밥이 주연배우만큼 등장한다. 조연 고 김영애가 아예 국밥집 주인으로 출연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2014년)’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치맥(치킨과 맥주)’을 퍼뜨렸, 아니 터트렸다.


이처럼 인간은 문화를 수혈할 때 함께 딸려온 식욕을 잠재의식 속에 간직했다 표출한다.

김훈은 라면을, DJ DOC는 떡볶이, 유재석은 류산슬을 대중의 뇌리에 심었고, 이는 식욕으로 변이돼 급작스런 시장을 창출했다.

식욕을 자극하는데 가장 유명세를 떨친 이는 배우 하정우다.

영화 황해(2010년)에서 도피 중이던 김구남(하정우 분)은 별 것 아닌 음식으로 식욕을 전도하는 ‘식욕 수퍼 전파자’였다. 편의점 컵라면과 핫바를 띄웠고, 우악스럽게 입을 벌려 김을 싸먹던 장면을 추가하며, 스스로 ‘먹방의 아이콘’에 등극했다.


이후 영화 범죄와의 전쟁(2012년)에서 깡패 두목 최형배로 분한 하정우는 부산 중앙로의 작은 중국집 동궁에서 대선소주를 맛있게 먹어 ‘최형배 세트’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영화가 스크린에서 내려온지 10년이 다 되가는 현재까지도 동궁에선 ‘최형배 세트’를 판다.

별 것 아니기론 영화 내부자들 역시 한몫한다. 재벌 오회장(김홍파 분)으로부터 버림받고 손목이 날아간 건달 안상구(이병헌 분)이 건물 옥상에서 의수로 라면을 집어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초라하지만 처절한 와신상담의 연기로 깊은 인상과 진한 식욕을 관객에 전해줬다.


엉뚱한 신이 뇌리에 깊게 남은 상황이다. 관객은 할 것이 별로 없다. 그저 보고 느끼고 먹을 수 밖에.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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