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피어난 기장의 봄
“탕탕” 봄이 펄펄 뛴다. 은빛 살점이, 굵은 땀방울이 튄다.
검푸른 바다로부터 끌어 올려진 그물을 부여잡은 어부들이 구성진 구령 소리에 맞춰 팔을 펼치면, 사방팔방 은빛 생명이 튀어오른다.
"올해는 메루치(멸치)가 밸로(별로) 없네예…" 어구를 챙기던 어부는 빈 그물이 밉고 야속하다.
수온은 제법 따땃해졌다지만 멸치잡이 어부의 만선 꿈은 오늘도 영 신통찮다. 봄꽃 소식과는 달리 봄 바다엔 아직 멸치 꽃이 피어나지 않았다.
해풍에 검게 그을린 어부의 눈에 멸치는 어느 봄꽃보다 곱다.
허나 봄을 향한 미로의 끝은 아직 남쪽으로 향해 있다는 것만큼은 꽤나 분명하다.
흐드러진 이팝 꽃처럼 남쪽바다 푸른 물속엔 멸치떼가 곧 흩날릴게다. 깊게 팬 입가 주름 속으로 파고든 봄 바람처럼 어느새 다가온 줄도 모르게. 분명히.
5월까지 가장 맛이 좋다는 봄 멸치가 기름 방울을 떨구면 치익 흰 연기를 피워올리며 근사한 향기를 사방에 풍긴다. 석쇠에 올리면 지방이 흘러나왔다가 다시 보드란 살 속으로 스며들어 고소한 맛을 낸다. 명품 앤초비처럼 고소하고 보드란 그 식감은 최상급 치즈같다.
밥상 위 국과 찌개 속에서 깊은 바다 맛을 내준 멸치는 멋진 생의 책임을 다하고 사라진다. 우린 무심코 뜬 국 한술을 두고 멸치의 은덕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