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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바다의 모히토, 도다리쑥국

육지에 도달한 봄바다 한그릇

by 이우석 더 프리맨
꽤 호화로운 봄이군


바다가 담긴 밥상을 받았다.

역시 봄은 먹어야 한다.

눈과 코, 귀로 즐기는 봄이야 슬쩍 묻었다 사라지지만 입으로 삼킨 봄은 몸에 남아 썩 오래간다.

누가 뭐래도 봄을 가장 닮은 음식은 도다리쑥국.

미항(美港)이자 미항(味港) 통영의 가정식 메뉴다.

도다리가 이름 앞에 붙었지만 사실 주인공은 쑥이다. 참치김치찌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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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국에 도다리를 넣은 것이다.

사실 쑥만 있으면 도다리 대신 가자미를 써도 상관없다는 얘기다.(실제 이렇게 끓이기도 한다)

좌광우도(머리 쪽에서 볼 때 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은 도다리)란 말이 있다. 원래 옛날에는 값비싼 고급 횟감인 넙치(광어)를 싼 도다리와 구분하기 위해 나온 말이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다.

대대적으로 양식하는 광어 값이 떨어진 탓이다. 아직 도다리는 자연산이 많다.

잘 손질한 도다리를 뭉텅뭉텅 잘라 육수에 넣고 된장을 풀어 쑥을 듬뿍 얹으면 되니 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통영이 품은 수많은 섬에서 자란 해쑥을 쓴다. 차가운 갯바람 속 몇 가닥 안되는 훈풍을 가려맞고 돋아난 놈이다.


정월대보름 전에 캔 쑥으로 끓여야 무병장수한다지만 그땐 쑥이 정말 귀하다. 일반적으로 4월까지는 쑥국을 해먹기 좋다.

생선살과 된장이 우러난 구수한 국물에 싱그러운 쑥을 한가득 올려 다시 한번 팔팔 끓여낸다. 특별히 더 들어갈 것도 없다.

한소끔 끓여내고 1인당 한 그릇씩 퍼주면(그래서 ‘쑥국’이다) 끝이다. 매운탕처럼 거창하지 않아 좋다.


밥을 말기 전에 꾸물 한 숟가락으로 향과 온도를 음미한다.

그 다음 보드라운 도다리 살을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낸 다음 숨죽은 쑥을 함께 떠 입안에 밀어넣으면 그만이다.

상큼한 봄 향기가 폐부까지 밀려든다. 찬물을 마셔도 새콤한 볼락김치를 먹어도 가시지 않을만큼 진한 향의 여운이 남는다.

그 봄날의 향을 입으로 코로 맛보는 음식이다. 아직 갯바람이 추우니 뜨끈한 국물이라 더 좋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비타민과 단백질까지 모두 맛볼 수 있다. 밥상 위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는 봄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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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온대지방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우리의 쑥은 봄을 알리는 향기로운 전령사로서 오랜 세월 대대로 사랑받고 있다.

부드럽고 유들한 봄 도다리는 따사로운 봄볕처럼 우리 몸을 보듬어준다. 나른한 춘곤증을 이겨낼 에너지를 주고 굳었던 미각의 소생을 돕는다.

청정 들판과 바다에서 나온 이 둘이 꽃잎과 여린 이파리처럼 밥상 위에서 활짝 피어났다. 숟가락이 저절로 춤을 추는 화창한 봄소풍이다.

만인이 근심에 젖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올봄이라지만 이대로 허송하며 보낼 수 없다. 향기로운 추억으로 포만하면서 새로 온 소생의 계절을 맞는 것도 좋을 듯하다.


봄날의 쑥은 단호한 해독성도 품고 있다니 말이다.

봄바다의 모히토 한 사발에 나는 다시 소생하고 있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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