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다의 모히토, 도다리쑥국
육지에 도달한 봄바다 한그릇
by 이우석 더 프리맨 Mar 26. 2020
꽤 호화로운 봄이군
바다가 담긴 밥상을 받았다.
역시 봄은 먹어야 한다.
눈과 코, 귀로 즐기는 봄이야 슬쩍 묻었다 사라지지만 입으로 삼킨 봄은 몸에 남아 썩 오래간다.
누가 뭐래도 봄을 가장 닮은 음식은 도다리쑥국.
미항(美港)이자 미항(味港) 통영의 가정식 메뉴다.
도다리가 이름 앞에 붙었지만 사실 주인공은 쑥이다. 참치김치찌개처럼.
쑥국에 도다리를 넣은 것이다.
사실 쑥만 있으면 도다리 대신 가자미를 써도 상관없다는 얘기다.(실제 이렇게 끓이기도 한다)
좌광우도(머리 쪽에서 볼 때 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은 도다리)란 말이 있다. 원래 옛날에는 값비싼 고급 횟감인 넙치(광어)를 싼 도다리와 구분하기 위해 나온 말이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다.
대대적으로 양식하는 광어 값이 떨어진 탓이다. 아직 도다리는 자연산이 많다.
잘 손질한 도다리를 뭉텅뭉텅 잘라 육수에 넣고 된장을 풀어 쑥을 듬뿍 얹으면 되니 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통영이 품은 수많은 섬에서 자란 해쑥을 쓴다. 차가운 갯바람 속 몇 가닥 안되는 훈풍을 가려맞고 돋아난 놈이다.
정월대보름 전에 캔 쑥으로 끓여야 무병장수한다지만 그땐 쑥이 정말 귀하다. 일반적으로 4월까지는 쑥국을 해먹기 좋다.
생선살과 된장이 우러난 구수한 국물에 싱그러운 쑥을 한가득 올려 다시 한번 팔팔 끓여낸다. 특별히 더 들어갈 것도 없다.
한소끔 끓여내고 1인당 한 그릇씩 퍼주면(그래서 ‘쑥국’이다) 끝이다. 매운탕처럼 거창하지 않아 좋다.
밥을 말기 전에 꾸물 한 숟가락으로 향과 온도를 음미한다.
그 다음 보드라운 도다리 살을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낸 다음 숨죽은 쑥을 함께 떠 입안에 밀어넣으면 그만이다.
상큼한 봄 향기가 폐부까지 밀려든다. 찬물을 마셔도 새콤한 볼락김치를 먹어도 가시지 않을만큼 진한 향의 여운이 남는다.
그 봄날의 향을 입으로 코로 맛보는 음식이다. 아직 갯바람이 추우니 뜨끈한 국물이라 더 좋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비타민과 단백질까지 모두 맛볼 수 있다. 밥상 위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는 봄날이 들었다.
아시아 온대지방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우리의 쑥은 봄을 알리는 향기로운 전령사로서 오랜 세월 대대로 사랑받고 있다.
부드럽고 유들한 봄 도다리는 따사로운 봄볕처럼 우리 몸을 보듬어준다. 나른한 춘곤증을 이겨낼 에너지를 주고 굳었던 미각의 소생을 돕는다.
청정 들판과 바다에서 나온 이 둘이 꽃잎과 여린 이파리처럼 밥상 위에서 활짝 피어났다. 숟가락이 저절로 춤을 추는 화창한 봄소풍이다.
만인이 근심에 젖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올봄이라지만 이대로 허송하며 보낼 수 없다. 향기로운 추억으로 포만하면서 새로 온 소생의 계절을 맞는 것도 좋을 듯하다.
봄날의 쑥은 단호한 해독성도 품고 있다니 말이다.
봄바다의 모히토 한 사발에 나는 다시 소생하고 있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