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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토종 귀신들은 어딜 갔을까

좀비 인기에 밀려난 여러 귀신들

by 이우석 더 프리맨

세계인이 엄청나게 빠르고 무서운 한국의 좀비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리즈의 효과다. 시즌을 거듭하며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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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에서도 “킹덤 시즌2는 ‘워킹데드’를 능가한다”면서 “킹덤은 최고의 각본과 연기, 연출, 그리고 영상화된 것 중 가장 무서운 좀비들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킹덤 시리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190여 개국에 동시 오픈한 드라마 시리즈며 ‘왕좌의 게임과 워킹 데드를 섞어 놓은 듯한 재미’를 준다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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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개봉했던 영화 부산행도 좀비물이었다.

한국의 영화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좀비를 생산하고 있다.


스크린 바깥에도 죄다 좀비(Zombi) 일색이다. 핼러윈 때는 에버랜드도 롯데월드도 모두 좀비로 득시글하다. 부산영화박물관에도 VR영화에 좀비가 등장한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많다. 그 많던 토종 귀신들은 대체 어디갔을까. 원래 좀비는 외래종이 아니었던가?

잊혀질까 서러운 대한민국 토종 귀신들을 다시금 꼽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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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한민국 대표 귀신으로 꽤 오래 장수했던 구미호(九尾狐)가 있다.

꼬리가 아홉개 달린 여우가 진짜 사람(여인)으로 환생하기 위해, 사람을 해쳐 간(肝)을 내어먹는다는 아주 무서운 캐릭터다.


간 100개를 먹어야 인간이 된다는 산신령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행인을 꾀어내 손톱과 이빨로 죽인 후 피범벅이 된 입으로 간을 먹는다.(시력은 좋을 듯 하다)


주로 야근만 하며 낮엔 숨어지내거나 사람으로 변신해 있다. 수도 없이 뒤로 넘는 덤블링을 보면 대한민국 리듬체조의 시원(始元)임에 분명하다.


지금도 드문드문 구미호가 존재감을 과시하고는 있지만 사실 좀비에 의해 크게 밀려간 상실감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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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1세대는 배우 한혜숙이 1970년대 '전설의 고향'에서 초대 구미호를 맡았다. 장미희 김미숙 선우은숙 등 당대 쟁쟁한 구미호 배우가 활동했다.


지금은 장동건의 부인이 된 고소영이 영화 비트 이후 정우성과 만나 구미호에서 다시 호흡을 맞췄다.

한국 최초의 몰핑(형상변화 특수효과) '구미호(1994년 작)'는 스타 배역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고소영은 여우 '하라'로 열연했지만 안타깝게도 그해 대부분의 영화제 여우주연상은 모두 다른 이들에게 내주었다. 최고의 여우 역할을 했는데 여우주연상을 줘야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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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리 내놔’ 귀신도 있다. 이름이 아니라 대사로 유명해진 캐릭터다.

사체가 살아 움직인다는 설정에선 좀비와 비슷하지만 말을 할 줄 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과거 TV공포물 '전설의 고향'에서 잃어버린 다리를 찾아 강한 집착을 보이는 시체(이광기 분)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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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대골에 남은 설화 속 남성 귀신 캐릭터다. 스토리는 대강 그렇다. 죽은 지 얼마 안돼 묘 안에 얌전히 누워있는데 누군가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 쓰려고 자신의 다리를 잘라갔다.


너무도 억울한 나머지 자신의 다리를 잘라간 여인을 찾아 '깨금발'로 뛰어다니며 끊임없이 구천을 헤메인다. 알고보니 귀신의 정체는 산삼이었다는 것.

항산화제가 가득한 몸에 좋은 귀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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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라기 보다는 괴물 캐릭터인 도깨비.

몇 년 전 드라마의 인기로 이젠 친근하게 다가와 그리 무섭지 않게 느껴지지만, 삼국유사부터 오랜 설화 속 기나긴 역사를 지닌 토종 귀신 계의 시조새다.

여러 종류의 도깨비가 있어 인상착의는 각각 다양하다. 일단 덩치가 크고 얼굴이 붉은데다 뿔이 나서(외뿔이 난 도깨비는 일본판 도깨비 오니라고 한다), 인상 만으로도 50점 이상 먹고 들어간다.


손톱이나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는 귀신이 아니라 도구(방망이)를 쓰고 마술을 부릴 줄 안다.

못쓰는 몽당 빗자루에 사람의 피가 떨어지면 그것이 변해 도깨비가 된다고 한다. 다리가 하나란 말이 있는데 아마 빗자루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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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신도시 개발 이후 등장한 ‘X세대 귀신’인 자유로 귀신이 있다.

2004~2006년 쯤 야간에 고속으로 달리는 '한국의 아우토반' 자유로에서 목격자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그 위험한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등 무모하고 트렌치코트를 즐겨입는 등 패션에 민감한 20대 여성 귀신이다.

갸날픈 몸매지만 정작 얼굴에 눈이 없고 뻥 뚫려있어 마스카라나 아이라인을 그릴 수 없는 가엾은 캐릭터다.

최근에는 목격사례가 크게 줄어드는 등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상습적으로 자동차 전용도로 노변에 서있다 단속되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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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할매귀신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름은 ‘홍콩 할매귀신’이지만 정작 활동은 주로 한국에서 했다.(옷도 한복을 입고 다녔다). 1980년대 귀화한 다문화 귀신이다.

당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싸늘한 공포를 안겨주었다. 얼마나 기세가 좋았던지 MBC 뉴스데스크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스토리는 아래와 같다.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던 할머니가 홍콩으로 여행을 갔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추락하게 되고(한국발 홍콩행 항공기의 추락 사실이 없다. 이 정도 팩트체크만 해도 뻥인게 드러난다.) 몰래 수하물 속에 넣어뒀던 고양이와 할머니의 혼이 합쳐지며 홍콩할매귀신이 된다.

아이들을 공격하며 손톱과 발톱에 집착하는 '네일 패티시' 성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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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인접국 귀신도 좀비 덕에 요즘 한가하다.

긴 생머리와 흰 원피스 등 사실 알고보면 청순 캐릭터에 가까운 사다코. 일본 영화 '링'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꺼진 TV 수상기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와 사람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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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부분 벽면 부착식 TV의 유행으로 활동기회가 많이 제한되는 바람에 좀비에 극강의 공포 캐릭터 자리를 내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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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의 원조 격인 중국 전설 속 강시(人변에 畺 尸). 한이 맺힌 사체가 썩지 않고 대지의 기운을 받아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게 된 것을 강시라고 한다.

힘이 굉장히 세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사람을 공격하지만, 뻣뻣해서 걷지 못하고 두 팔을 뻗은 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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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와 마찬가지로 주술적으로 일부러 죽인 시체를 깨어나게 해 강시로 불러낸다. 반대로 부적을 붙여 강시를 멈춰 세울 수도 있다.

홍금보 감독의 영화 ‘귀타귀’(1980년 작)에 처음 등장, 당시 구미호 밖에 모르던 한국인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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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좀비는 무엇일까?
일단 좀비는 무국적이다. 원래 좀비(Zombie)는 아프리카 토속 신앙인 부두교(Voodoo Cult)에서 등장하는 신 중 하나였지만, 흑마술로 되살려낸 시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후 드라큐라 등 뱀파이어의 전설이 혼합돼 좀비가 사람을 물면,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된다는 설정은 1968년 미국 조지 로메로 감독이 연출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Day of The Dead)'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다양한 좀비 영화가 제작되며 현재와 같은 캐릭터로 굳었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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