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과 그 유산
"어떻게 하면 눈에 멍이 들어보일 수 있나요?"
합정동 그랑프리 안경점에 들어서며 나는 물었다.
척 봐도 이태리제 림롹rimrock 고급테 안경을 쓴 점원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 선수를 얼핏 닮은 그는 안경 하나로 적어도 학위 한 단계는 업그레이드되어 보였다.
"행운아시군요, 제대로 찾아 오셨습니다. 와우, 무척 행운아시군요"
노련한 그는 여유있게 헝겊으로 진열장을 슬슬 닦으며 그는 다만 2가지 선택이 있노라 했다.
“금방 든 멍이 있구요, 멍이 빠져나갈 때의 상태가 있습니다”
“두...두번째 걸루요”
“역시...”
말을 잠시 멈췄던 그는 “센스가 있으시군요. 다들 좋은 선택을 하지요”라고 칭찬으로 이어나갔다.
“렌즈를 멍 색깔로 교환을 해야하니, 우선 82달러35센트를 내시고 테를 맡기십시오”
“얼, 얼마나 걸릴까요? 급한데…”
‘석사 학위의 류현진’은 벌써 말을 가로 막았다.
“우선 돗수에 맞춰 렌즈를 잘라야하구요. 이걸 또 스페인에 보내야 합니다. 걔들은 얼마나 일처리가 느린지 쯧. 낮잠도 자야하니까.”
“항공편도 화물선도 없어서 요샌 참치 어선을 섭외해야 합니다. 아시죠? 레이먼김이 좋아하는 가다랑이도 잡고하는.”
쏜살같이 말을 이어나가던 그는 잠시 소퍼를 가리키며 “저기 앉아서 SNS에 악플이라도 달면서 기다리시면 검안사가 올겁니다. 돌싱인데 일은 잘해요”라고 했다.
그 말 이후에도 중얼거렸지만 알아들을 순 없었다.
죽은 비둘기처럼 흑백과 보라색 얼룩이 가득한 소퍼에 앉아 시키는대로 악플을 달려고 했지만, 18글자의 비밀번호가 당최 생각나지않아 로그인할 수 없었다.
땅딸한 레프카(미래소년 코난의 악당)처럼 생긴 검안사가 왔다.
내가 좁쌀만한 8과 6이 헷갈리는 것이 그에게 어떤 호기심을 줬을 지는 잘 몰라도, 난 그가 왜 이혼을 했을까가 몹시도 궁금했다.
마침 큼지막한 반지도 끼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단호한 입매무새를 가진 터라 물어볼 순 없었다.
'언덕 위의 나무'는 계속 흐릿했지만 레프카는 렌즈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며 ‘이거 큰일인데’라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를 자꾸만 되뇌였다.
아무튼 검안은 끝나고, 난 일생동안 받아본 최소의 숫자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 류현진이 다시 왔다.
불펜에서 바로 올라온 듯 씩씩거리며 돌아온 그는 체온과 비슷한 구론산D를 한병 서 들고있었다.
“손님 아까 잘못 말씀드렸습니다. 유럽에 전화해보니 102달러 88센트가 들더군요. 제 잘못이니 100달러만 받겠습니다.
물론 현찰입니다. 제로페이나 재래시장상품권은 120달러를 주셔야 합니다”
“네…. 한일은행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수 일이 지난 후 난 정말 ‘지난주에 맞아서 멍이 들었다 조금씩 낫고 있는’ 안경을 받아들 수 있었다.
사실 이건 순전히 뻥이다. 상암동에서 7011A 번 버스를 타고 공덕까지 가면서 마침 심심하던 차에 쓴 거짓말이다. 마침 오늘은 만우절이니까.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www.playea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