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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보하고 입맛 살리는 산자의 음식, 육개장

가는길 죽은 자가 차리는 마지막 국밥 한그릇

by 이우석 더 프리맨
살아선 자신을 보하고 죽어선 남을 대접하는 음식, 육개장


시나브로 날이 더워지고 있다. 맛좋은 봄 나물에 냉이된장도 잠시, 기온이 오르면 킹덤(넷플릭스 드라마) 속 좀비들처럼 입맛도 사라진다. 그것도 ‘갑자기’다.

이럴 땐 칼칼하고 뜨끈한 고깃국물이 딱이다. 바로 육개장이다. 봄볕을 뚫고 튀어나온 고사리를 뜯고 쑥쑥 오른 토란대와 함께 넣어 팔팔 끓여낸 소 양지 국물을 들이켜면 춘곤증도 대번에 사라질 태세다.

고깃국물로 몸을 보하고 얼큰한 맛으로 입맛을 되살리는 대표적 ‘이팝에 괴깃국’이 육개장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맨 청룽(成龍), 박찬호, 오승환 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육개장을 꼽을 정도로 체력 보강에 좋은 이미지다.

실제 청룽은 방송에서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육개장 한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준 바 있다.

특히 이역만리 타국땅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한국 선수들이 경기 전 승리를 다짐하며 먹는 음식을 물어보면 육개장이 빠지지 않는다. 전성기 시절 박찬호는 ‘승리의 비결’을 육개장으로 꼽은 적(그때는 그리 말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있다.

뜨겁고 매운 국물의 육개장이 날이 더울 때도 많이 팔리는 이유는 보양식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몸을 보하는 고깃국물로서 정체성을 과시한다.

부용(bouillons) 등 외국에서도 따뜻한 고깃국은 지친 몸을 보하는 보양식을 의미한다.

어쨌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끔은 육개장을 먹게 된다. 상갓집을 가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지역을 막론하고 장례를 치를 때 문상객에게 으레 육개장을 대접한다. 육개장을 기본으로 지역에 따라 시래기국, 재첩국(경남)이나 해초된장국(제주도) 등을 곁들여 내는 곳도 있다.

아무튼 출산, 생일은 미역국, 결혼식은 갈비탕(잔치국수), 장례식은 육개장이란 공식은 아직 유효한 듯 하다.

잡귀가 붙는 것을 물리치는 빨간 국물 색 때문에 육개장을 끓인다는 설이 있고, 많은 이들이 사나흘 찾아오는 장례식에 한솥 끓여놓았다가 바로 대접하기 좋은 음식이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날밤을 새는 상가에서 소주 한잔의 안줏거리나 해장국으로도 좋아서 육개장을 끓이는 이유라는 술꾼들의 개똥철학도 들린다.

이처럼 산 자에겐 기력을 채워 더욱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지만, 죽고 나면 망자가 영면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지막 손님을 위해 차리는 음식이 바로 육개장이다.

산모에게 대접하는 미역국 만큼 정성이 깃들어야 하는 음식인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육개장은 소고기와 채소, 나물을 넣고 얼큰하게 끓인 장국이다. 다시 말해 육개장은 장국의 한 종류다.

1800년대 작성된 ‘규곤요람 듀식방’에는 “고기를 썰어 장물 풀어 물을 많이 붓고 끓이되 썰었던 고기가 능숙히 익어 고기정이 풀어지도록 끓이고 종지, 파, 잎, 온채 넣고 줄알치고 후추가루 넣느니라”라고 장국밥의 조리법을 기록했다.

이것이 바로 육개장인 것이다.

장국에 밥을 말아먹는 것이 최고의 식사였는데 그 장국 중 으뜸이 육개장이다. 당연하다. 귀하디 귀한 소고기니까.

외식 개념이 생겨나며 육개장은 식당의 주 메뉴로 대번에 퍼졌다. 다만 이름이 틀렸다.

전국적으로 가장 틀리기 쉬운 메뉴 이름이 바로 육개장인데 육개장으로 잘못 쓴 경우가 많다. 삼계탕, 초계탕 등이 닭 계(鷄) 자가 익숙하고, 소고기국이니 막연히 이름에 ‘개’ 자는 안들어 갈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이 낯선 조합의 이름은 사실 개고기를 끓인 ‘개장국’에서 유래했다.

유림이 많던 경북 지방에서 “양반이 어찌 개장국을 즐길까”하며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은 육(肉)개장(醬)으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함경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서 고기(肉)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소고기를 뜻한다. 돼지고기를 고기의 기본으로 삼는 제주에선 돼지고기와 돼지사골을 넣은 육개장이 있는데 따로 돈육이라 부르지 않는다.

또다른 이름은 대구탕이다. 생선 대구탕(大口湯)이 아니라 대구(大邱)에서 유명한 국, 또는 개를 대신해 끓인대서 대구탕(代狗湯)이라 불렀다는 것.

한때 대구탕반(大邱湯飯)이라 불렸을 정도로 대구 지역 향토음식으로 꼽힌다. 1920년대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서울 공평동에도 대구탕반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예로부터 관급행사와 제례를 지낼 일이 많던 경상감영(대구)에선 합법적으로 소를 잡을 수 있어 소고기 수급이 넉넉했다.
덕택에 이 지역엔 지금도 소고기를 사용한 음식이 많은데, 육개장은 적은 양으로도 한솥 끓여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었던 국 요리라 여느 요리보다 쉽사리 대중화되었다.

1946년 조선상식문답(최남선)에선 대구 육개장이라 못박았다. 당시 우리나라 지방 명식(名食)으로 개성 엿과 저육, 해주 승가기(勝佳妓), 평양냉면과 어복장국, 의주 대만두, 전주 콩나물, 진주 비빔밥, 회양 곰기름정과, 강릉 방풍죽 등과 함께 대구 육개장을 소개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1920년대 잡지 ‘별건곤’ 역시 대구 별미로 대구탕반, 즉 육개장을 소개했다.
유난히 덥고 추운 분지 지형 대구에선 얼큰한 고깃국으로 혹서와 한기를 견뎌냈다.

뜨겁고 붉고 매운 맛은 한국인의 공통 입맛이었는지 어느새 육개장은 한식의 대표적 국 요리가 됐다.

일반적으로 육개장은 고사리, 숙주(또는 콩나물), 토란대(계절에 따라 고구마순) 등 나물과 소고기를 넣어 만든다. 당연히 매콤한 고춧가루(또는 고추기름)와 산초가루가 들어간다.

육개장은 대구식과 서울식으로 크게 나뉘는데, 대구식은 편육처럼 소고기를 썰어 넣고 대파를 크게 많이 넣고 매콤하게 끓여낸다. 서울식은 찢은 소고기(양지)와 대파, 고춧가루 등을 넣어 시원하게 끓인다.

또 대구식은 고추기름을 넣어 국물 표면이 온통 빨간데 반해 정통 서울식은 그리 붉지 않다. 요즘은 육개장이든 짬뽕이든 간에 매운 맛을 강조하는 추세라 대부분 고추기름을 많이 쓴다.

육개장하면 떠오르는 나물이 고사리다. 사실 고사리는 씹히는 역할이라 고기를 많이 넣자면 빼도 된다. 넣어도 안넣어도 그만이다. 토란대 역시 마찬가지로 부족한 고기의 대용품 역할을 한다.

둘 다 고기와 맛이 어울리니 육개장 재료로선 딱이다.

고기 대체품으로 고사리를 쓰기 위해선 생 고사리를 먼저 푹 삶은 후 끓는 국물에 넣어주면 마치 찢은 양지와 같은 맛과 저작감을 낸다. 토란대 역시 말린 다음 넣으면 얼추 고기처럼 느껴져 많이들 쓴다.

양치식물(양의 이빨을 닮았다는 뜻이다)의 보고인 제주도에선 아예 고사리를 잔뜩 찢어 넣은 고사리 육개장이 있다.
돼지고기 육수에 고사리와 메밀가루가 들어가니 구수하고 걸죽한 것이 육지의 빨간 육개장과는 큰 차이가 있다.

‘궐채(蕨菜)’라 하여 진상품이었던 고사리는 단백질 뿐 아니라 무기질도 많이 함유해 고깃국물에 색다른 영양성분을 더한다.

4~5월 제주도는 고사리 채취에 바쁘다. 봄볕에 말리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전국의 육개장이 더욱 맛있어지는 시기다.

쑥처럼 고사리 또한 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물이다. 독성이 있다지만 말리고 삶고하니 잘도 다룬다.

중국 산시성 서우양산(首陽山)에는 고사리를 캐먹고 은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는 백이와 숙제의 설화가 전해진다.

행복의 나라로 불리는 부탄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고사리를 더 많이 먹는다. 아예 고사리를 주식으로 상식하는데 주로 볶아서 먹는다.

고추기름을 넣어야 하는지도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원래는 고춧가루만 썼다는데, 육개장이 대중화되면서 보다 얼큰하고 동시에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고추기름을 넣었다고 한다.

고추기름을 만들어 쓰려면 사실 소기름(우지)을 넉넉히 받아놓아야 한다. 보통 중국식 라유(辣油)는 돼지비계나 유채기름에 고춧가루를 넣고 볶지만 육개장에 쓸 때는 소기름을 떼어 따로 볶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구 지역 식당에선 수구레를 넣는 경우도 잦다. 소 가죽과 진피 사이에 붙어있는 스펀지 모양 조직인 수구레는 맛이 진해 국밥에 넣으면 육향과 풍미가 한층 진해지고 구수한 맛을 낸다. 워낙 매운 음식을 좋아해 육개장과 소고기국밥을 구분하기 모호한 대구 경북 지방에선 수구레(현지에선 소구레)를 넣어 끓이는 집도 많다.

육개장의 조연이 하나 더 있다면 계란이다. 예전에는 국밥이나 국수에 계란 하나쯤 넣는 것이 필수요소였지만 지금은 딱히 넣지 않는 추세다.

굳이 육개장에 계란을 넣자면 국물이 탁해지지 않도록 보통 ‘줄알치기’로 넣는다.

계란을 풀어 끓는 국에 둘러 순간적으로 익히는 방식인데 1950년대 당시 대부분 국물요리에 줄알을 넣는 것이 유행했다.
현재도 분식점 라면과 중국집 우동, 계란탕 등에서 줄알을 만날 수 있다.

육개장은 대구 지역 향토요리로 알려졌지만 장국밥은 공주도 유명하다. 소고기에 무, 대파, 콩나물을 많이 넣고 오랫동안 끓여낸다. 나물은 딱히 들어가지 않고 이름도 그냥 ‘국밥’이라고 부른다. 장국밥이란 소리다.

현재는 육개장에 칼국수를 넣은 육칼(국수), 만두를 넣은 만두 육개장 등 다양한 진화(?) 과정을 거치며 세대간 입맛을 계승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육개장과 외양이나 형식이 비슷한 음식을 만날 수 있다.
가장 많이 비교되는 음식은 헝가리의 구야시(Gulyás).

유럽에는 사실 많은 굴라시(Goulash) 이름을 가진 요리들이 있는데, 주로 국물이 짜작한 스튜 스타일이다. 헝가리에는 수프 스타일의 구야시가 있어 한국인 여행객들로부터 육개장과 닮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헝가리안 구야시는 소고기를 토마토, 피망, 양파, 양배추, 감자 등 채소류와 함께 끓인 스프인데 매콤한 파프리카 가루 등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는 까닭에 색이 붉다.

기본적으로 소고기 국물인데다 토마토의 감칠 맛과 파프리카의 매운 맛이 배어있어 얼핏 육개장을 연상시킨다.

동유럽과 러시아 쪽에서도 이와 비슷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터키 남동부 가지안테프(Gaziantep)에는 베이란(Beyran)이라고 부르는 전통 양고기 수프가 유명한데 이것도 육개장과 꼭 닮았다.
특히 빵이나 감자와 곁들이는 굴라시에 비해 베이란은 쌀을 같이 넣어먹기 때문에 더욱 모양새가 유사하다.

양 갈비뼈와 목뼈, 다리뼈, 척추뼈 등을 푹 고은 다음 고춧가루와 후추, 마늘을 넣어 매콤한 맛을 낸다. 더구나 양고기 살을 잘게 찢어 쌀과 같이 끓인다는 점에선 육개장과 조리법이 거의 비슷하다.
나물과 채소만 곁들인다면 거의 ‘양개장(羊개醬)’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레몬즙을 뿌려 시큼한 맛을 내는 탓에 김치찌개와도 비슷하다.

이 낯익듯 낯선 두 음식은 모두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 먹는 보양식 개념이라고 한다. 국적을 떠나 뜨끈하고 얼큰한 고깃국물은 몸을 챙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다.

요즘같은 팬데믹 상황에 육개장 한 그릇이란, 든든함은 물론이고 플라시보(위약) 효과마저 불러올 듯 하다.

<이우석 놀고먹기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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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썰어서 올리는 대구식 육개장.JPG
고기를 한가득 올리는 부민옥 육개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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