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푸드가 거기서 왜 나와?
한국에서 자란 당신이 어째서 ‘소울푸드’ 타령을 하는가?.
솔 푸드(Soul Food). 만약 누군가 자신의 ‘소울푸드’가 뭐니 어쩌고 역설한다면 그 이의 조상은 서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틀림없다.
이른바 소울푸드(표기법 상으론 솔 푸드가 맞다)는 보편적으로 ‘추억의 음식’ 쯤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다. 솔 뮤직(Soul music)와 마찬가지로 ‘흑인 음식’이란 뜻이다.
정확하게는 미국 남부 흑인 노예의 음식문화가 솔 푸드다. 옥스포드 상급생 사전(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미국 남부 흑인들이 먹어온 음식 종류’(The type of food that was traditionally eaten by African Americans in the southern U.S.)라 정의한다.
알렉스 헤일리 원작 소설 뿌리(Roots: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의 쿤타킨테처럼 북미에 노예로 팔려온 서아프리카 출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농장에서 일하며 현지 식재료 등을 이용해 만들어 먹던 독특한 식문화를 ‘솔 푸드’로 분류한다.
당연히 어렸을 때 먹던 우리 음식은 솔 푸드라 부르면 틀린 일이다.
무엇이 솔 푸드인가. 대표적 솔 푸드로는 오크라를 넣고 걸죽하게 끓인 검보(Gumbo), 포크 피트(돼지족발), 메기 튀김, 허시파피(튀긴 옥수수 반죽 도넛) 등이다. 신기한 것은 지금 세계적으로 즐겨먹는 바비큐과 윙이 이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애환음식 페이조아다와 추하스코(사진)
바비큐가 솔푸드에 포함되는 것은 순전히 당시 흑인 노예들이 살던 환경 탓이다.
주방이 아예 없는 숙소에 살다보니 백인 농장주들이 먹고 남긴 허드레 고기(하지만 갈비나 족발 등 꽤 맛있는 부위였다)를 가져다 땅을 파고 불을 피워, 꼬치나 장대에 올려 구워 먹었던 것에서 바비큐가 탄생했다.
여기다 서아프리카 식이나 카리브 식 향신료를 고기에 뿌린 것이 지금의 다양한 바비큐 소스로 발전했다.
원래 이름은 중남미 캐리비안 음식인 ‘바르바쿠아(Barbacua)’였지만, 이후 미국 흑인노예들은 ‘바비큐’로 불렀다.
현재도 미국 내 바비큐로 유명한 지역은 텍사스, 켄터키,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등 흑인들이 많이 살았던 남부 지방이다.
바비큐 이외에도 다양한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우선 지금 한국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프라이드 치킨, 특히 윙(날개튀김)이 그렇다. 지금이 저마다 치킨 브랜드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지만, 예전엔 주인이 먹고 남은 다리와 날개 등 허드레 부위를 기름솥에 몽땅 털어넣고 튀겨먹었던 것에서 시작했다.
진정한 솔푸드(Soul food) 프라이드 치킨
행크 윌리엄스와 카펜터스가 노래했던 ‘잠발라야(jambalaya)’나 노래 속 가사에 등장하는 검보 스프, 민물가재 등은 루이지애나 아카디안의 추억음식이다.
이처럼 허드레 식재료를 사용하다보니 솔 푸드는 아무래도 ‘가난했던 옛 시절 먹던 음식’ 정도로 사용됐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에서 그렇다. 일본 저널리스트 우에하라 요시히로는 ‘차별받은 식탁’을 쓰며 그런 의미로 ‘솔 푸드’란 단어를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에선 김치나 부대찌개를 솔 푸드로 소개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사실 한국에서 솔(松) 푸드란 송편(松葉餠) 정도 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동질감을 가진 집단이 함께 만들어 먹던 음식이란 공통점은 있다.
‘애환이 담긴 음식 또는 위안을 주는 음식’(comfort food)이라 한다면 더욱 의미가 맞을 법하다.
한국에선 그런 의미에 부대찌개가 가장 어울린다. 아니 가장 대표적인 ‘위안의 음식’이다.
지금 중년 세대까지는 부대찌개에 애환이 담겼다고 보긴 어렵다. 바비큐나 치킨처럼 그저 맛있는 별미로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그 역사를 거스르자면 매우 아프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기 전, 모두가 궁핍하던 시절에 시작됐다. 처음엔 쓰레기를 음식화한 ‘꿀꿀이죽’이 있었다. 주 재료는 군납 식품의 잔반. 내용물은 주로 햄, 소시지, 미트볼, 베이크드 빈스에 남긴 빵과 우유까지 부어 바깥에 내놓으면, 이걸 가져다 김치를 넣고 죽처럼 끓여 먹은데서 유래했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해 이제 겨우 음식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것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부대찌개다.
미군들이 남긴 음식물 중 골라낸, 또는 밀반출한 깡통인 이른바 ‘부대고기’로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 메뉴의 반열에 올랐다.
꿀꿀이죽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음식이다. 그야말로 꿀꿀이죽은 음식쓰레기를 끓여 겨우 허기만 채울 수 있는 용도였지만, 부대찌개는 다르다.
나름 진귀하고 어엿한 음식이었던 게다.
어렵던 시절 군납 통조림과 다진 고기 등을 빼내 와 그나마 ‘고기’를 볶아서 먹었다. ‘부대고기’가 먼저였다는 사실.
지금도 부대고기는 부대볶음, 모둠스테이크 등의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많이들 팔고 있다.
그러다 더 많은 이들이 먹기 위해 물을 붓고 찌개를 끓인 것이 부대찌개의 시원이다. 이후 밥과 함께 먹는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들이 부대 근처에서 성업했던 것.
의정부, 송탄(평택), 동두천, 이태원 등 미군부대가 주둔한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부대찌개가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바로 1960년대 후반이다. 각 지역 별로 태동에서 발전까지 독자적으로 이룬 터라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다. 의정부식은 비교적 국물이 흥건하게, 송탄식은 뻑뻑하고 짜작하게 끓인다.
이 초라한 족보의 음식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치즈, 두부, 떡, 라면 등 다양한 재료가 첨가돼 새로운 별미로 자릴 잡았다.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릴 정도.
2010년 발간한 론리플래닛 한국 편은 부대찌개를 최고의 한식으로 꼽은 바 있다.
외국인들은 가끔 이 음식에 스팸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먹어본 후엔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결국 스팸을 생산하는 호멜사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부대찌개를 스팸을 응용한 주요 요리로 소개했다. 그런데 부대찌개를 직역(Army base stew)한 것이 흥미롭다.
참고로 국립국어원은 2014년 부대찌개를 소시지 스튜(sausage stew)로 표기하자고 한식명 로마자 표기 및 번역 표준안에서 결정했다. 아무래도 부대찌개의 주인공은 ‘소시지’인게 틀림없다.
대한민국 퓨전요리의 1세대 격으로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그 붉은 색 다국적 찌개 국물 안에 녹아있다.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