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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갱시기를 아십니까?

애환음식에 대한 보고서-(2)

by 이우석 더 프리맨
애환음식은 아무래도 국탕류가 많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이들이 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대찌개 등과 가장 비슷한 원리의 음식을 국내에서 찾는다면 갱시기(국시기)다.


궁핍하던 시절, 추억과 애환을 담은 위안의 음식이라면 ‘갱식이(갱시기)’가 있다. 대구를 포함한 경상북도와 경남 내륙에서 갱국, 밥국, 국식이(경남) 등으로 부르는 음식이다.
말은 다르지만 뜻은 똑같다. 갱(羹)은 국을 뜻한다. 식(食)은 밥, 즉 밥으로 끓인 국이다. 국을 끓일 때 밥을 넣어 죽처럼 만든다.

늘 아침이면 진한 김치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들그락 들그락 국자 젓는 소리, 뽀얀 김과 함께 갱시기가 우리집 아침을 시작했다.


그리 어렵지 않으나 맛있게 하기도 어렵다. 일단 김치가 맛있으면 8할은 성공이다.

멸치 몇 개 던져넣은 국물에 김치국물을 붓고 콩나물 등 푸성귀와 식은 밥을 넣어 팔팔 끓이면 된다.

라면이나 가래떡, 국수를 넣어 양을 늘리기도 했다. 이 탓에 ‘개밥’이란 오명을 쓰기도 하지만, 냉장고 청소엔 퍽 도움이 된다.

이 지역 출신 30대 이상이라면 갱식이에 저마다 사연이 묻어있다. 아버지가 술마신 다음 날, 감기에 걸려 골골 대던 때, 아니 겨울 내내 이것만 먹고 버텼단 이도 있다.

깊은 애환이 담긴 음식이다. 대구 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청와대 조리장을 불러다 갱식이 끓이는 법부터 가르쳤다는 말도 내려온다.

의외로 맛도 좋다. 뜨끈한 국물이 술술 넘어가니 씹을 것도 없다. 해장에도 단연 으뜸이다. 해장국의 조건에는 수분과 단백질 공급, 그리고 소화시키기에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게란을 풀어넣은 갱시기에 멸치볶음과 찢은 장조림을 곁들여 먹으면 해장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추운 겨울 으슬으슬할 때, 혀가 깔깔해 입맛을 상실했을 때 최고다. 푸짐하고 든든하기까지 하다.


맛으로 찾기에도 딱이지만 파는 곳은 별로 없다. 가정식의 이미지가 강해서다.


경남 합천에는 국시기(경남 방언)를 파는 곳이 한곳 있어, 합천에 갈 때면 꼭 들른다. 술마시지 않았어도 아프지 않대도 추억에 끌리는 맛이 그 낡은 양푼 그릇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찾는다면 러시아의 솔랸카солянка와 포르투갈의 페이조아다Feijoada다.


솔랸카는 토마토 페이스트와 오레가노 등 향신료로 간을 한 고기육수에 소시지, 햄, 고기다짐, 양배추, 피클 등을 넣고 끓은 스프 요리다.

페이조아다는 포르투갈과 그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즐겨먹는 스튜지만 사실 브라질 식 페이조아다가 부대찌개가 생겨난 스토리와 더욱 비슷하다.


브라질식 페이조아다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 노예들의 음식이다. 주인이 먹고 남긴 돼지 족발이나 꼬리, 혀, 코, 귀, 내장 등을 재료로 한 요리다. 요리라기 보다는 검은 콩을 넣고 한솥 푹 끓여낸 죽이라 딱 부대찌개와 원리가 같다.

지금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대중요리가 됐다. 부대찌개처럼.


음식에는 저마다 추억이 있고, 반대로 추억 속에서 생각나는 음식도 있다. 그 것을 솔 푸드라 부르든 힐링푸드라 부르든 사실은 상관없다.


단지 우린 가끔 추억을 먹고싶을 뿐이다. 강력히.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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