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맛 경험' 파인다이닝에 대한 보고서
우린 한 끼에 과연 얼마까지 쓸 수 있을까?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닌데, 단지 먹고 싶은 것에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 있나.
배가 꺼지더라도 지속적 행복을 누릴 수 있겠냐는 원초적 질문이다.
최근 몇 년 전 ‘미식 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파인다이닝fine dining’이 화두다.
가장 비싸고 좋은 음식을 팔았던 특급호텔에서 뛰쳐나와 골목의 작은 레스토랑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물론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할 마음을 이미 먹은 후다.
왜 특급호텔 레스토랑보다 더 비쌀까. 원래 파인다이닝란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걸까.\
왜 비싸지요?
단도직입,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오너 셰프에게 물었다.
그야 대중식사가 아니니까요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류태환(40)이다. 그리고 그의 레스토랑은 지난 연말,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세계 레스토랑 순위 라리스트La liste에서 좋은 평점과 함께 자연(Natural) 특별상까지 거머쥔 류니끄(Ryunique)다.
그렇다. 그의 설명처럼 파인다이닝은 다수를 대상으로 차리는 요리rustic food가 아니다. 극히 소수 만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다.
프린트나 금형으로 대량생산하는 ‘양산품’이 아니라 작가 직접 한 ‘순수예술’, 파인아트Fine art에서 나온 말이었다.
지극히 소수를 위해 공급하는 탓이 비싸 보이지만 그리 남는 것도 없다는 얘기다.
파인다이닝 셰프들은 자신의 자존감과 정체성 유지를 위해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것이지, 실제 돈은 강연, 쿠킹클래스, 협업 등을 통해 번다고 입을 모은다.
류니끄의 예를 들어봤다.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위치한 류니끄는 저녁 기준 1인당 23만원(점심 17만원)을 받는다.식사 중 6가지 와인을 제공하는 와인페어링(15만원)까지 더하면 최대 38만원이다.
매출이 꽤 많아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류니끄는 테이블이 6개에 불과하다. 최대 26명까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4인 테이블에 2명 씩 앉으면 식사 인원은 더 줄어든다. 꽉 찼지만 14명까지 받은 적도 있단다. 회전도 없다. 파인다이닝 식사시간은 보통 2시간이 넘어간다.
반면 주방 인원은 9명이다. 숙련 셰프 9명이 최대 26명의 식사를 위해 일사분란 요리를 준비한다. 참고로 류니끄 저녁식사의 경우, 어뮤즈Amuse부터 디저트까지 14~16코스를 제공한다.
이를 서비스를 하는 홀 스태프는 4명이다. 이중 경력이 7년 이상된 소믈리에가 2명. 1명이 테이블 2개 미만의 음료와 식사를 책임진다는 얘기다.
“원래 제대로 하려면 테이블 당 1명이 붙어야 한다”
고 류태환 셰프는 덧붙였다.
많을 때는 홀 스태프 6명이었고, 소믈리에가 4명이었던 적도 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재료다.
파인다이닝 셰프는 자신이 추구하는 요리를 차리기 위해 식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식재료 구입 비중이 음식값의 25~30%에 이른다.
귀한 식재료가 시장에 나오면 경쟁적으로 달려가 구입하고 테스트한다.
류태환 셰프는 계절별 메뉴를 차리기 위해 경북 봉화 울진 의성, 경남 의령 창원, 전남 장흥 강진 충남 서천 등 최고의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누비는 것으로 유명하다.
엘불리의 페란 아드리아 역시 1년 중 6개월 문을 닫고 식재료와 요리를 연구하는데 집중한다.
이렇게 구한 식재료를 얼마나 맛있게 요리로 차려내는 것은 전적으로 셰프의 능력에 달렸다.
‘다른 곳에선 맛볼 수 없는’요리에는 예술작품처럼 많은 손이 간다. 소고기 채끝 등심은 숙성을 거쳐 숨은 칼집을 낸 후 오븐에 살짝 굽고 다시 토치로 불맛을 살린다. 전국 유일의 ‘큰 메추리’ 사육농가로부터 독점 공급받아 인삼에서 추출한 진액을 발라 구워낸 후 특제 소스를 끼얹어 농후한 삼계탕의 맛을 이끌어 낸다.
미더덕 특유의 맛을 추출해 콩 추출 단백질을 더해 거품 형태로 변형, 플레이트에 담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반드시 셰프의 명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숙련된 셰프는 독창적이며 맛있고 때론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손질에서 조리, 플레이팅까지 수많은 공정이 따르기 때문에 다수의 보조 셰프도 필요하다.
식재료 맛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개발한 자신의 솜씨와 경험은 물론, 현대 과학적 분자요리법까지 접목한다.
진공 상태에서 초저온으로 얼리고, 거품으로 추출하고 건조기로 말려서 맛을 살리고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모양새로 가공한다. 식탁에 앉은 이들에게 오로지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도를 한다는 얘기.
조그마한 접시 하나에도 최소 10번 이상의 손이 가는 개별 요리를 담아낸다. 이런 코스가 최대 16코스로 제공된다.
여기에 투자가 필요하다. 첨단 장비와 부자재 등 기기 구입과 유지 비용이 발생한다.
이뿐 아니다. 코스로 제공하는 음식의 양부터 테이블 서빙 앞 뒤 시간까지 미리 계산한다.
와인잔, 실버웨어, 커트러리 등 테이블 웨어는 값비싼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사용한다. 음식의 완성도에 격을 맞춰 고객 만족을 높이기 위해서다.
류니끄에선 리델과 로열코펜하겐, 장흥 편백 젓가락 등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 셰프가 직접 테이블에 와서 친절한 설명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도 파인다이닝의 즐거움을 더하는 부분이다.
식사의 즐거움은 반드시 음식 질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즐기는 가격은 7000~8000원 국밥 한끼의 약 30배인 23만원이다. 한달 국밥 값이 한끼에 고스란히 들어간다.
그나마 미식에 대한 비용지출은 의식주 중에서 가장 그 최고 최저 편차가 적다. 다시 말해 가장 돈이 적게 드는 ‘사치’는 식생활에서만 가능하다.
지극히 제한됐지만 대부분 큰맘 먹으면 경험할 수 있는 정도다.
패션에서 럭셔리한 상품, 즉 시계, 핸드백이나 옷, 코트의 가격은 일반 제품의 100배를 훌쩍 넘기기도 하지만, 미식은 딱히 그렇지는 않다.
세계적 관심 속 2008년 문을 닫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엘불리 El bulli는 그 화려한 명성과 제한된 소유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무려 40여 가지 요리를 코스로 차려내는 데 250유로(33만원) 정도를 받았다.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모든 재료가 최고급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냉장 냉동 보관도 하지 않는다.
이 환상적인 식사를 위해 무려 250만 명 정도가 매년 예약을 걸었지만, 불과 8000명(하루 50명 정도)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1년에 반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꼽는 라리스트La liste는 매년 세계 미식 레스토랑 1000 곳을 선정한다. 이중 최근 몇 년간 연속 으뜸 레스토랑으로 꼽힌 기사부아Guy savoy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려면 보통 1인당 300유로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음식평가서 미쉐린 레드 가이드에서 많은 별을 모은 조엘 로부숑의 수많은 레스토랑 들도 마찬가지. 가장 저렴한 식사래도 200~250유로는 줘야 한다.
일본 도쿄에 소재한 가스트로노미 조엘 로부숑은 1끼에 2만5000엔 정도를 받는다. 물론 와인 대신 침을 모아 삼켜야 한다는 끔찍한 조건이다.
제철 현지 최고급 식재료를 쓴다는 덴마크 노마Noma나 콕스Koks 역시 그 정도 가격을 매긴다.
국내 역시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한 편이다. 신라호텔 라연은 19만~27만원 정도, 롯데호텔 피에르가니에르는 17만~34만원을 받는다.
미쉐린 별을 2개 획득한 한식 베이스 파인다이닝 정식당은 8코스 22만원 정도를 책정했다. 역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권숙수나 밍글스도 이와 비슷한 정도다. 일식 파인다이닝 스시코지 역시 딱 22만원(저녁 오마카세)을 받는다.
집이나 자동차, 패션의 경우는 결이 좀 다르다. 최고로 꼽히는 제품은 상상 이상의 높은 가격이 매겨진다.
참고로 에르메스의 간판 상품인 버킨35 크로커다일 백은 모델에 따라 1억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10만원 짜리 가방에 견주면 1000배, 100만원 짜리라 잡아도 100개 값이다. 옷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알렉산더 맥퀸이나 돌체 앤드 가바나의 고급 원피스는 500만원을 훌쩍 넘긴다.
파인다이닝은 그나마 한 달 먹을 식대를 한 끼에 지불하면 맛볼 수 있으니, 탐미(耽美)와 탐미(耽味)는 그만큼 그 절실함과 투자의 비례가 다른 상황이다. 현재 국내 외식업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있는 상황이지만,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만큼은 셀프 격리 중에도 올라가고 있다.
미식 가이드 앱과 웹, SNS(사회관계망) 상 좋은 메뉴와 식당 검색어는 역병 창궐 중에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맛을 향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요원해 보인다. 다수의 한국인은 그 매혹적인 입맛을 이미 깨쳐버렸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