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반영구 문신 체험기
눈썹도 밀었냐?
한 선배가 백악관 기자회견장 도널드 트럼프처럼 비웃음을 잔뜩 문 입을 씰룩대며 말했다.
그럴리가 없잖은가. 당연히
발끈했지만 뭐라 쏘아붙일 계제가 아니었다. 실제 그래 보이니 말이다.
난 원래 눈썹이 반쪽 밖에 없었다. 머리숱이 적어 박박 밀고 다녔는데 마흔 넘어선 눈썹까지 빠지는지 희멀떡했다.
정수리에서 콧수염까지 훑어내려오면 내가 봐도 뭔가 심심했다. 아파보인다는 얘기도 들었고 맥반석 계란이니, 무릎(아니? 난 왜 얼굴이 아니고 부위야)이니, 닮았다는 것도 온통 둥글둥글하고 매끈한 것만 갖다 붙였다.
몇 년전 추석 연휴에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유전적 이유로 마찬가지 사정(?)을 겪던 친동생이 반영구 눈썹 시술 예약을 했는데 못가게 됐다는 것.
난 결심했다.
그래, 시술을 받자. 금을 긋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자.
마침 긴 연휴라 술을 마시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원래는 시술 후 무려 2~3일간 술을 마실 수 없다.
결심 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숯검댕이' 송승헌 눈썹 정도 만을 생각했는데 '짱구'가 되는 꿈을 꾸었다. 당일 아침엔 심장까지 뛰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없는 눈썹을 만들어준다는 서울 홍대입구(서교동) 'H살롱'. 반영구 눈썹 등 미용 전문숍이다. 실내에 들어서자 마자 깊은 숨이 연신 터져나왔다.(사실 엘리베이터 없는 3층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예약하신 분이죠? 여기 앉으세요. 우선 마취약부터 발라드릴게요.
상냥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왠지 어색하고 불안했다. 칼로 긋는 것일까. 문신이라 들었는데 이마에다 '무릎 아님'이라고 쓰는 것은 아닐까. 재채기를 하다 주욱 그어서 내 얼굴에 ‘더듬이’를 만들어놓진 않겠지?.
손님 죄송합니다. 머리통에 금이 그어졌으니 이왕 얼굴 붉힌 김에 차라리 금을 더 많이 긋고 '스파이더맨'을 만들어드릴까요?.
멍한 상태로 있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자, 자연스럽게요. 최대한"
시술을 책임진 원장은 경력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고 과연 그의 눈썹 역시 벵골만 인도여성처럼 또렷했다.
부검에 임하는 변사체의 자세로 한치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누워있었다. 내 눈두덩 윗부분에는 '비밀의 정원' 색칠하기 책처럼 또렷한 아웃라인 만이 남은 상태였다.
"사각사각" 무언가 날카로운 금속성 물질이 살갖 위를 수도 없이 긁으며 지나는 것을 느꼈다.
가끔 따가운 적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다. 아웃라인 속을 채워넣는 방식이다. 설명에 따르면 여성은 눈썹화장을 한 것처럼 시술하고 남성은 한획 한획을 짧게 그어 실제 눈썹처럼 그려낸다. 그래서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획이 그어진다. 한자 '가라말 려(驪)'자를 한 마흔번 쯤 썼을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어릴 적 이발소에서 처럼.
일어나란 소리에 '나사로'처럼 벌떡 일어났다. 약간의 화끈거림이 눈썹 부위에서 느껴지는 것이 뭔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당장 거울을 봤다.
익숙하다. 터키인 핫산이었나. 무스타파였던가?
발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눈썹이 거울 속 내 얼굴에 찍혀있었다. 지난달 전남 강진에서 열렸던 남도음식축제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빙글빙글 돌리던 케밥 장수의 늠름하고 단호한 그 눈썹이다.
"걱정 마세요. 지금보다는 훨씬 옅어질 겁니다" 걱정 가득한 내 표정이 어찌나 안돼 보였던지 원장과 다른 시술자가 동시에 위로(?)의 말을 전했다.
"며칠 후 탈각과정이 일어나면 색소도 빠지고 자연스러워져요, 압둘 씨". 아! 물론 그들은 내게 압둘 씨라고 부르진 않았다. 하지만 거울 속엔 분명히 열대건조 사막 기후에 적합한 얼굴이 울상을 짓고 있었다.
단숨에 몽골 북방계 얼굴을 서남아시아 베두인 계로 만들어버린 그들은 돈을 지불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나서는 내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흘간 절대금주령'과 하루 2번 바르라는 재생크림을 쥐어줬다.
이틀은 무척 길었다. 술을 마시지 못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만나자 마자 깔깔대는 친구들의 업신여김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응원해주는 이들도 많았다. 주변에서 의외로 커밍아웃하는 남성 지인들이 많다. 알고보니 내가 잘알고 지내던 최모 종원 부사장과 전시전문업체 박모 강섭 사장님도 얼굴에 '천자문'을 쓴 상황이었다.
과거 여성들의 전유물로 취급받았지만, 알고보니 남자들도 많이 받는다. 사실 내가 시술대에 누웠을 때 앞뒤 팀 모두 남성 고객이었다.
시술전 후 사진을 SNS에 공개하면 1만원을 할인해준다는 말에, 만천하에 털어놓았더니 세상사람 모두가 내 눈썹만 쳐다보는 것 같다. 버스 안 옆자리에 앉아 분홍색 '구루뿌'를 앞머리에 하고 열심히 화장을 하던 여성도 흘끔흘끔 내 눈썹을 보며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흘 째 되는 날. 약간 가렵기 시작하더니 정말로 탈각 현상이 일어났다. '탈각'이란 눈썹 시술 부위가 아물면서 껍질이 벗겨지는 현상인데 이때 무리하게 비비거나 긁으면 어렵게 시술한 부분이 사라지고 만다.
많이 옅어졌다. 하지만 어쨌든 내겐 눈썹이 선명해졌다. 특히 가장자리 쪽은 아예 없었는데 끄트머리가 확연히 드러났다.
보통은 '리터칭'이라 해서 탈각 이후에 완전한 보정을 실시한다. 내 경우엔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다시 한번 처음 시술 정도의 양을 다시 그려야 했다. 획수로 따지면 '기린 린(麟)'자를 열댓 번 정도 쓴 것 같다.
다시 나는 터키인이 되었고 이틀이 지난 지금, 나는 손톱으로 가려운 부위를 콕콕 찍고 있다.
●후기=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눈썹 없던 삶과 있는 삶은 아주 많이 다르다. 좀더 단호해 보이거나 고집이 세보이긴 하지만 똘망똘망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 20만원 이하의 투자로 대학원 학위를 받은 정도랄까. 콘트라스트(명도 대비)가 생긴 덕에 이렇게 인상이 달라진다. 컨디션이 아주 좋을 날에도 "아파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면 한번쯤 고려해볼 일이다.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