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건 뭘 하건 김밥만 있다면, 오늘은 소풍날
삐리리 삐리리
1비트 전자음 알람시계의 역할을 대신한 것은 바쁜 부엌에서 흘러들어온 고소한 참기름 냄새다.
어머니는 전전반측한 나보다 더 일찍 깨어나 부지런히 김밥을 말고 있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 냉큼 김밥 하나를 통째로 집어 입에 물고 달음질을 친다. 갓 말아낸 김밥의 따스한 온기가 입가에 묻어나고, 참기름 향이 콧속을 찌른다.
김밥을 볼이 미어져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노라면 재료들이 뒤섞이며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혀를 한쪽으로 밀어붙이면, 부드러운 소시지와 밥이 함께 씹히며 달짝지근한 맛을, 또 반대편으로 밥을 넘기면 우엉과 단무지의 아삭하고 짭조름한 맛이 난다.
이번엔 가운데로 모아 우걱우걱 씹어본다. 익숙하다. 산채비빔밥에서 느꼈던 그 맛이다. 고추장 대신 김 향기가 가미됐을 뿐 딱 비빔밥 맛이다. 혀 놀림에 따라 하나하나 모두 다른 맛을 낸다. 이것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이다. 그랬다. 김밥은 비빔밥과 같은 맥락이라 한국인에게 인기가 높았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복합미(複合味, Blending taste)를 선호한다. 반찬을 한데 죄다 넣고 슥슥 비벼 먹는다. 그 안에서 맛을 찾는다. 비빔밥이며 김밥, 섞어찌개 등이 그렇다. 심지어 한정식도 그렇다. 반찬을 십수 가지 차려놓고 밥 한술과 함께 여러 반찬을 먹는다. 양푼이 아닌 입안에서 섞여 복합미를 낸다. 모두 한 상을 받았지만 다들 다른 맛을 느꼈다.
어떤 이는 우엉을 먼저 먹고 깻잎과 수육을, 그다음에 밥을 밀어 넣고 동치미를 떠먹는다. 건너편에 앉은 이는 호박전을 먹고 열무김치와 무채, 그리고 국에 만 밥을 먹는다. 같은 상 다른 식사다. 경우의 수에 따라 입속 맛의 조화가 몇 백 가지가 나온다.
다시 돌아와 김밥 얘기. 참기름 밥 속에 든 아삭하고 짭조름한 단무지, 분홍빛 싸구려 소시지는 분명 찰떡궁합이다. 어묵 조림도 우엉과 천생연분이다. 계란말이는 이를 완충시키고 김은 모든 것을 감싸 모양을 유지한다. 시금치와 당근, 때론 참치까지 초청 게스트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
당연히 김은 주인공이다. 너무도 지당한 말이겠지만 좋은 김밥은 무엇보다 김과 밥이 훌륭해야 한다.
사실 김밥은 고귀한 몸이었다. 지금이야 바쁜 일상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구황 식품’ 신세가 됐지만, 예전엔 값비싼 별미였다. 손이 많이 가는 탓에 평소에는 하지 않는, 그래서 소풍쯤은 가야 먹는 음식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메뉴도 김밥이다.
그때는 몸값도 귀했다. 1981년 4월 10일자 매일경제신문에는 롯데쇼핑센터 지하 1층에서 인근 회사원들의 점심 식사로 각광받던 김밥이 900∼1500원에 팔리고 있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10여 년 후인 1992년 10월 25일 동아일보는 1000원 하던 김밥 가격을 1200원으로 올렸다며 고속도로 휴게소의 ‘일방적인 바가지 상술(예나 지금이나!)’을 비판했다.
요즘 좀 비싸다 싶은 김밥이 3000원쯤(보통은 2000∼2500원)을 받으니, 30∼40년 전의 2배 정도다. 40년 동안 가격이 이 정도만 오른 물건은 김밥과 바나나(이건 오히려 내렸다)밖에 없는 듯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김밥 얘기를 해보자. 김밥은 어디서 왔을까. 대나무 발로 말아낸 오늘날의 김밥 형태는 일본 노리마키(海苔券)에서 시작된 것이 맞다.
이를 위해 김을 네모나게 뜨는 ‘김발’도 그렇다. 하지만 앞서 가장 강조한 김밥의 특징인 복합미, 여기서부터 김밥과 노리마키의 차이점이 생긴다.
우리와는 달리 일본은 음식에서 단순미(單純味)를 선호한다. 대표적인 호소마키(細券, 가늘게 만다는 뜻)의 경우, 박고지나 아카미(赤身) 등 재료 하나만 넣고 작게 말아 한 가지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긴다.
김과 밥이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낸다고 생각해 본래 이름도 사라진다. 메뉴가 재료의 이름을 따는 것이다. 간표마키(박고지), 데카마키(참치등살), 갓파마키(오이), 신코마키(다쿠앙) 등이 그런 예다.
초대리(노리마키용 밑간) 대신 참기름장과 갖은 채소, 다진 고기를 다채롭게 채워 넣는 방식은 순전히 우리식 입맛이다. 일본에도 여러 재료를 넣고 크게 말아놓은 간사이(關西)식 후토마키(太券)가 있긴 하지만, 어떤 지역에선 풀어헤쳐서 하나씩 맛을 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거기다 20세기 초에야 처음 문헌에 등장할 정도로 호소마키에 비해 그 역사가 짧아 우리 김밥과 서로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 불분명하다.
일본식 말이 기법과 도구를 사용하지만 김을 생산하고 밥을 싸먹는 본질적 김밥의 원리는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됐다는 의견이 많다. 심지어 김을 양식하고 즐겨 먹은 역사는 문헌상 우리가 더 빠르다.
김은 삼국유사에도 등장하고 본초강목 등에도 ‘신라의 김’이 언급된다. 경상도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광양과 하동에서 김을 길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인조 18년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이던 전남 광양 김여익이 최초로 김 양식법을 보급해 그의 성(姓)을 따서 ‘김’이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선조들은 김을 어떻게 먹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애초 ‘김쌈’이란 음식이 있었다. 일본의 노리마키 등장 시기인 에도시대와 비슷한 1800년대 말엽에 나온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김에 솔로 기름을 발라 구웠다가 밥을 싸먹는 데 쓴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문헌상으로는) 후토마키보다 먼저(1928년) 별건곤에 등장하는 글에는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재웠다가 석쇠에 구워 밥 위에 놓아 먹는다’고 적었다. 따라서 김밥은 기존에 이미 상식(常食)하던 음식 ‘김쌈’이 일본의 식문화 영향을 받아 말아먹는 형태로 변형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김밥은 맛도 좋지만 영양학적으로도 꽤 균형 잡힌 음식이다. 고기와 채소, 짠지를 충분히 넣었고 해조류로 감싼다.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어 좋고, 간편하게 섭취하지만 밥의 양에 비해 찬이 많아 섬유소는 높고 열량은 그리 높지 않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채소를 한꺼번에 넣어 한입에 즐기는 햄버거처럼 간단하게 먹을 수 있지만 비만을 초래하는 외국계 패스트푸드에 비할 바 아니다.
이처럼 한국인의 즐거운 날과 함께해온 김밥은 이제 허둥지둥하는 출근길 아침이나 바쁜 작업, 이동 중 끼니를 책임지는 역할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학생과 회사원에게 값싸게 한 끼를 책임지는 ‘면학과 근로의 연료봉’으로서 그 충실한 기능도 당당하게 해낸다.
김밥과 함께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좋다. 향긋한 김 속 고소한 참기름밥, 그리고 아삭한 채소와 짭조름한 고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김밥을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풍의 즐거움 절반쯤은 경험하는 셈이다. 바야흐로 김밥 한두 줄 손수 싸서 소풍이라도 다녀왔으면 하는 좋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