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애초 양은 말이 없었다

[문화일보 연재] 새로운 대한민국 식도락 문화를 이끄는 양고기

by 이우석 더 프리맨


양(羊). 양은 애초 말이 없었다. 알파벳 첫자 A에다 플러스가 몇 개가 붙고, 한우니 와규니 구분이 수두룩한 소와는 달랐다. 흑돼지니 듀록이니 하던 돼지만큼도 수식이 덜했다.
묵묵히, 대신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다.

사실 한국인이 양고기를 즐겨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물론 구곡양장, 양두구육 등 다양한 고사에도 등장하지만, 사육환경과 특유의 향 등 여러 이유로 양고기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주목받던 식재료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양고기는 21세기에 접어들어서야 값싸고 맛있는 양꼬치 형태로 대학가에서 인기를 모았다. 삼겹살보다 저렴한 양꼬치는 중국인 유학생 손님층을 뛰어넘고 ‘그 맛이 몹시도 궁금한’ 한국인까지 끌어모았다. 양고기 철판구이 ‘징기스칸’(몽골 칭키즈칸이 아니다)과 샤부샤부 식 훠궈(火鍋)가 유행하며 그 인기의 절정을 찍고 있는 중이다.

망원양꼬치2.JPG
양은 연령에 따라 생후 6~12개월을 램(Lamb), 그 이상을 머튼(Mutton)이라 구분하는데, 머튼의 경우 지방질에 카프릴산, 펠라르곤 산을 축적하기 때문에 특유의 냄새가 난다.

한국에서 쓰는 양 식육은 대부분은 램의 것이다. 양을 상식하는 서아시아 유목민과 중동 지방에선 느끼한 노린내를 풍기는 머튼 고기를 더 선호하는 이가 많다. 삭힌 홍어의 예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홍어에 묵은 김치를 곁들이듯 민트와 후추, 실란트로(고수), 커민 등 향신료를 곁들여 먹는데, 한국인 중에는 이 때문에 더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도 많다.

양고기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지방과 육즙이 더 많아 촉촉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소고기처럼 살짝 익혀먹어도 문제없다.

●‘양다리를 걸쳤다는군’ 용산양꼬치=양다리를 통째로 구워먹을 수 있다니. 양이고 소, 돼지를 떠나 낯선 풍경임에 틀림없다. 원시인이라도 된 것처럼 당장 묵직한 다리를 들고 물어뜯고 싶지만 모두들 눈독을 들일테니 그럴 호사는 없다.

용산양꼬치 양다리s.jpg 용산양꼬치의 양다리

숯불 위에 꼬치처럼 꿰어 돌려가며 익힌 다음, 어슷하게 카빙을 해준다. 다릿살에는 깊은 풍미가 숨어 있다. 양꼬치에서 느낀 감칠 맛이 토마토 주스 정도라면 다릿살은 토마토 케첩 수준이다.

기름이 빠져 부드러운 조직만 남은 살 맛이 깊다. 입에 짝짝 붙는다. 나중에 다리뼈와 뼈에 붙은 살을 모아 전골을 끓여주는데 이 맛 때문에 양다리를 주문한다는 이들도 있다. 식당에 들어서기 3시간 전에 주문하면 맛볼 수 있다.

어향가지 등 다른 요리 메뉴들도 맛이 좋다. 원래 솜씨가 좋은 집이다.

서울 용산구 백범로99길 60 1층, 지하1층. 양다리 1kg 4만원.(3시간 전 주문)

●‘정작 몽골사람은 모르는 요리’ 이치류=삿포로식 징기스칸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몽골의 정복왕 칭키즈칸의 이름을 땄지만 이젠 그저 일본식 양고기 요리 이름으로 통한다.

이치류 램크라운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위엄이 서렸다.jpg 이치류의 램크라운

무쇠 투구처럼 생긴 두꺼운 불판에서 채소와 양고기를 익혀 먹는 방식이다. 고기는 모두 호주산 1년 미만의 램을 사용하고 생갈비, 살치살, 생등심 등 부위 별로 판다. 당연히 전혀 냄새나지 않고 부드러운 고급 생고기를 친절히 구워도 준다. 채소와 고기를 구워 특제 양념소스에 찍어먹는 맛이 그야말로 고급스럽다.

모든 점포를 직영하는데 여의도점에선 램의 프렌치랙(Frenched lamb shoulder rack)을 활용한 ‘램크라운’을 판다. 램크라운(Lamb crown)은 글자 그대로 양갈비를 다발로 묶어 왕관처럼 구워낸 요리를 말한다. 국내에선 보기드문 특제 양고기 요리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한 조각씩 집어 베어물면 그 안에 가득한 육즙이 툭 터져 나온다.

이치류 램크라운2.jpg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8길 27-9 2층. 램크라운 10만원(3일 전 주문)


양꼬치는 한국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양고기 요리방식이다.JPG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모으고 있는 망원양꼬치

●‘꼬치꼬치 캐물어 찾아간 집’ 망원양꼬치=망원시장에서 입소문을 떨친 나머지, 이젠 멀리서도 찾아오는 집이다. 2층인데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손님이 몰린다. 직접 손질해 일일이 꿰어 만든 양꼬치가 아주 맛이 난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도 적당한 이집 양꼬치는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지방층을 자랑한다. 쯔란(커민)과도 아주 궁합이 좋다.

망원양꼬치.JPG 망원양꼬치

좀더 부드러운 것이 먹고싶다면 양갈빗살꼬치를 주문하면 된다. 보다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양꼬치(羊肉串)는 일본의 야키도리처럼 다양한 재료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꼭 양고기 만 구워먹는 것은 아니란 뜻. 쫄깃한 동맥혈관 등도 별미다.

동북식 순대, 토마토 계란탕 등 요리도 다양해 많은 이들이 양꼬치와 함께 곁들인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3길 17 2층. 양꼬치 1만2000원.

불이아 양고기정식.JPG 양고기에 특히 어울리는 훠궈

●‘훠궈(火鍋) 그리워 마라(麻辣)’ 불이아=전문 양고기 집은 아니지만 양고기를 주 메뉴로 하고 그 맛도 좋다. 국내에선 중국 신장 명물음식 훠궈(火鍋)를 일찌감치 시작했는데, 아마도 훠궈와 마라(麻辣) 사랑의 시작을 이 집에서 한 이들이 많을게다.

양고기와 소고기 등 선호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정식 형태로 판매를 한다.(섞은 것도 있다.) 취향에 따라 매운 홍탕과 고소한 백탕으로 나뉜 솥(Hot Pod)에 얇게 저민 양고기와 당면, 버섯, 채소 등을 슬쩍 담갔다 먹으면 된다. 특제 소스가 일품인데 소스에 양고기를 찍어 먹으면 당장 맛이 살아난다. 건더기를 건져먹다가 나중에 고기와 채소 맛이 우러난 홍탕 국물을 얼큰하게 즐기면 정신이 번쩍 든다.

불이아 훠궈.JPG 불이아 훠궈

소고기도 좋지만 양고기 특유의 향이 우러나 국물 맛을 더욱 깊게 만든다. 이름은 정식이지만 고량주와의 궁합도 좋아 저녁 술자리를 갖는 이들로 줄을 세운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182-6. 양고기정식 2만1000원. 해물정식 3만5000원.


램랜드s.jpg 램랜드에선 양고기를 구워 올리브와 마늘을 올려 난에 싸먹는다

●‘원조 양(羊)식당’ 램랜드=한국식 양고기 요리의 명가. “양고기라는 것 먹으러 갈까?” 꽤 오랜 시간 입소문을 타고 직장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곳. 인기가 좋아 더 넓혀 인근으로 이전했다. 자리는 인기는 여전하다. 불판에 양고기를 구워 한잔하려는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있지만 퇴근 시각 무렵에는 줄을 서야 할 정도다.

램랜즈5s.jpg 양전골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갈비(삼각갈비)를 주메뉴로 담백한 수육과 칼칼한 양념의 전골을 낸다. 고기는 1년생 미만 호주산 램의 갈비뼈를 통채로 잘 저며내 그저 후추만 뿌려 낸다.

구운 마늘과 올리브를 올려 얇게 부친 난(밀가루 전병)에 싸먹는 등 이집 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다. 삼각갈비는 꽤 두툼하지만 살이 부드러워 씹는 족족 쑥쑥 목을 타고 넘어간다. 무릎뼈와 함께 들깨와 깻잎을 곁들여 팔팔 끓여낸 전골은 전통 한식 조리법이 양고기와 만나 천상의 궁합을 이룬 예다.

서울 마포구 토정로 255. 삼각갈비(200g) 2만5000원. 수육(200g) 2만6000원. 전골 1만3000원.

<놀고먹기연구소>


항방양꼬치2.jpg 서교동 항방양꼬치
보양의 아이콘, 육식의 새로운 기준이 되다. 양고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식육 중 하나다. 육식 자체를 금하는 불교를 제외하고 힌두이즘, 할랄, 코셔 등 종교적 터부에서도 어느 하나 거리낄 것이 없는 까닭이다.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수요도 크게 늘었다. 양고기 수입량은 1만7336톤(2018년 기준)으로 최근 5년간 매년 급증했다. 더 이상 생소한 식재료가 아니라 일부러 찾아먹는 식육이 되었다.
삼복이 끝났지만 여전히 찌는 날씨 탓에, 보양 목적으로 양고기를 찾는 이들도 주변에 꽤 많이 늘었다.
한방에서도 양은 양(陽)을 돋운다 했다. 본초강목에서 양고기는 ‘기(氣)를 돋우는 음식’이며 규합총서는 ‘몸이 허하고 냉(冷)할 때 딱’이라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의 건강을 위해 어의가 양고기를 처방했다. 하지만 성군인 세종은 우리나라 땅에서 구하기 힘든 양을 명으로부터 수입하느니 그 돈을 백성들에게 쓰라며 양고기를 거부했다고 전한다.
중국과 중동에서도 스태미너 음식으로 양고기를 으뜸으로 꼽는다. 무더위에 양고기가 당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양갱(羊羹)도 여기서 나왔다. 굳혀 먹는 양고기 국물이란 뜻이다. 양고기는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는 L-카르니틴이 어떤 식재료보다 많아 당뇨나 고혈압에 좋다. 역병이 다시 창궐 중인 무더위 속, 건강과 면역을 위해 양고기가 저절로 떠오르는 한여름의 끝자락이다.

<놀고먹기 연구소> www.playea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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