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지] 오곡백과와 더불어 만두 익어가는 가을
부드러운 겉과 뜨거운 속, 대체 넌 누구니?
명절이 코앞이라 슬슬 만두를 준비하는 집이 많다. ‘그럴만두’하다. 만두는 시식(時食)이자 절식(節食)인 까닭이다. 경기도 북부와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등 북쪽 지방에선 명절이나 집안 어른 생신 등 행사 때 으레 만두를 빚었다. 설날에 특히 많이 준비하지만 추석이나 잔치에도 만두는 상차림의 주인공이었다.
밀가루 피에 고기로 만든 소를 채워넣은 음식, 중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세계적으로 인기를 이어가는 보편식.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그것’을 총칭해 만두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만터우(饅頭)라 하면 아무 소를 넣지 않은 밀가루 빵을 이른다. 다른 반찬과 함께 먹는 밥 또는 식빵 개념이다. 우리가 아는 만두는 바오즈(包子), 또는 가오즈(餃子)라 따로 이른다. 그 외에도 샤오마이(燒賣), 샤오룽바오(小籠包) 등으로 각각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다.
일본에서도 교자, 슈마이 등으로 부르지 총칭해서 만두라 하진 않는다.
영어로는 덤플링(dumpling)이 보편적이지만, 튀긴 만두의 경우 팟 스티커(pot-stickers)라고도 부른다.
만두의 기원이야 더 이상 언급하기도 무엇할 정도로 제갈량의 남만(南蠻) 정벌 고사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그 시기가 AD 2세기에 불과하기에 이전에도 만두와 비슷한 음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세계 인구의 30% 이상이 주식으로 먹는 밀. 밀 문화권에서는 단백질이나 염분을 보충한 다른 ‘소’를 써서 만든 밀반죽(즉 만두의 원리와 같다)을 먹는 일이야 허다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만두는 빵의 일부란 뜻이다. (고기로 만든) 소가 들었고 안들었고의 차이다. 결국 만두나 사모사(samosa), 미트파이는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사모사는 튀긴 만두다. 고기와 채소를 다져 간을 하고 밀 반죽 피 속에 넣고 튀겨낸 음식이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인도라 콩이나 콜리플라워, 감자 등 채소만 넣은 것도 있다.
중국의 만두도 그렇지만 즐기는 인구가 상당히 많은 덕(?)에 인도 대표 요리 중 하나로 분류되지만 사실 중동과 서남아시아 지방 대부분 국가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사모사다. 내용물과 맛은 조금씩 다르지만 삼사(터키), 삼부사(이란), 산부삭(아랍) 등 비슷한 음식을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며 먹는다.
특히 삼사라는 이름이 가장 많은데, 우즈베키스탄이나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에선 이 ‘고기 빵’이 거의 주식이나 다름없다. 빵 속에 양고기를 조려 넣는다.
러시아 서부에도 피로시키나 사므사, 펠메니로 불리는 고기 만두가 있다. 터키 만트는 그 이름도 닮았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ravioli)도 일종의 만두라 할 수 있겠다. 중국 만두처럼 커다랗지는 않다. 치즈나 고기 종류를 슬쩍 넣었을 뿐이다. 소가 별로 들어있지 않은 납작만두에 가깝다. 다만 이탈리아인들은 라비올리를 만두가 아닌 국수로 여긴다. 먹을 때는 물만두처럼 파스타로 먹는다.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영국문화권에서 즐기는 미트파이 역시 원리 상 만두 종류다. 고기를 다져 양념을 한 후 빵 반죽에 넣고 구워낸 것이 미트파이다.
만들 때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먹을 때는 만두가 가장 편하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채소류를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다. 샌드위치, 햄버거나 마찬가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카오에서 주파바오(豬扒包 돼지갈비를 끼운 빵)을 맛보고 ‘개방된 만두’(open dumpling)라 여기는데, 여기서 서구인들이 만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누구에게나 맛있고 균형잡힌 영양가 덕분에 만두는 세계 곳곳에서 각각 두루 발전했다. 중국과 가까운 한국 역시 편수, 꿩만두 등 만두 문화가 발달하며 식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 냉동 만두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몇 년전부터 미국 내 만두 판매 1위는 당연히 한국 업체의 몫으로 자릴 잡았다.
그만큼 만두에 있어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 뒤지지 않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개성지방의 명물인 편수는 일반적 만두인 교자나 포자의 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인도 만두인 사모사(samosa)와 닮았다. 옆에서 보면 피라미드 모양 사각뿔이고 위에서 보면 네모지다.
소로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는 두부와 숙주나물, 고기 뿐 아니라 굴과 잣, 버섯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 레시피만 봐도 굉장히 고급음식인 셈이다. 고기도 소고기에 꿩, 돼지 등 다양한 부위를 섞어서 쓸 정도다.
주로 만둣국으로 먹는데 보통은 차게 먹는다. 북한에선 물 위에 네모난 조각이 떠 있다고 해서 편수라고 한다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편수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문헌에 네모난 물만두 형태를 편수, 또는 편식이라 불렀다는 고증이 더러 나온다. 중국에 삼을 팔러갔던 송상들이 전해온 것이라는 설이다.
어쨌든 찬물에 말아먹는 것이 남쪽 사람들의 입맛에는 그리 맞지 않았는지 편수의 유행은 남한으로 내려오진 않고 오히려 북쪽으로 올라갔다. 러시아로 건너간 편수는 크기나 먹는 방법이 바뀌고 이름도 퍈세(пянсе)가 되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명한 간식거리가 바로 퍈세다.
우리나라 만두 문화에서 특징을 하나 꼽자면 바로 꿩을 쓰는 것이다. 특히 남한 강원도와 충청북도 일원에선 겨울에 꿩을 잡아서 바로 통째로 맷돌에 갈아 만두소로 쓴 ‘꿩만두’가 별미 음식이었다. 물론 피도 구하기 어려운 밀가루 대신 메밀을 썼다.
뼈째 갈았기 때문에 다소 버석거리긴해도 진한 꿩고기 맛을 한입에 즐길 수 있다. 만두란 원래 손이 많이 가는 고급음식. 편하게 집어먹고 맛을 음미하는 동안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에 대한 결핍을 단번에 채울 수 있었다.
꿩만두는 생치만두(生雉饅頭)라 해 지금도 파는 집이 원주와 평창 쪽에 더러 있는데 아무래도 꿩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소비자들도 생소한 식재료를 꺼리는 분위기 탓에 그리 인기를 얻진 못하는 형국이다.
한국 만두의 또다른 특징은 바로 김치다. 무엇이든 김치만 넣으면 무난한 음식이 되는데 굳이 만두라고 김치 소를 안넣을 이유는 없다. 볶음밥에 넣을 것이 궁해 무심코 썰어 넣었던 김치가 누구나 사랑하는 김치볶음밥으로 재탄생한 것도 김치의 향이 가진 위력이 실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당면을 잘라 넣어 만두 소의 양을 불리고, 때론 두부와 숙주가 고기 맛을 보충하기도 하지만 김치의 강력한 풍미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제 김치만두는 ‘짜장이냐 짬뽕이냐’처럼 만두를 선택할 때 한국인의 뉴노멀 기준 중 하나가 됐다. 만두의 형식을 채택했지만 한국인의 입맛은 은연 중에도 폭삭은 김치 맛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만두 크기도 엄청나다. 어른 주먹보다 큰 ‘이북식 만두’는 그 안에 든 소의 열량보다는 그 크기에서 주는 시각적 포만감이 실로 대단하다.
당연히 수저로 터뜨려 먹는다. 한식에선 대부분 요리가 소찬(小餐) 위주다. 중식이나 양식에 비해 각각의 양은 적은 편이지만 만두만큼은 제일 크다.
만두는 일상식이나 간식에도 빠지지 않는다. 아예 떡볶이용 튀긴 만두를 따로 만들 정도다. 그냥 베어물기에 매우 딱딱한 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푹 적셔 먹도록 했다. 떡볶이 전용 만두라니,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것이 없는 유일한 만두다.
대구에선 전처럼 부친 납작만두를 즐긴다. 납작만두는 만두라 하기엔 별 것 안들었지만 전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감지덕지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얇은 두 겹의 만두피 사이에 갈아낸 듯 약간의 채소와 당면이 남아 자신이 '만두의 혈통'임을 주장한다. 라비올리의 스타일과 다름없다. 기름에 부쳐 매콤달콤한 쫄면이나 양배추를 싸먹으면 그 맛이 꽤 훌륭하다.
세월이 흐르고 만두가 사방지천 흔해지면서, 한국에선 만두가 그리 고급스런 요리의 반열에 오르진 못했다. 명절에나 맛볼 수 있던 진귀한 음식이, 천원을 더 붙여 라면 따위에도 들어가고 군부대 PX나 편의점 마이크로웨이브 기기에서 빙글빙글 익어간다는 것은 아마도 절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조상님들은.
일본에는 자생적 만두가 없다. 오랜 시간 육식을 금한 까닭이다. 대신 중국 만두를 본떠 팥소 등을 넣은 찐빵(あんまん) 비슷한 음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기 소가 들어있지 않은 까닭에 우린 그것을 만두라 부를 수 없다.
대신 일본인들은 만두를 좋아해 반찬처럼 상식한다. 집에서 교자(餃子) 만두를 구워 밥과 함께 먹기도 한다. 슈퍼에는 만두 전용 간장이 다양하게 출시되어 있을 정도다. 특히 라멘과 야키교자는 찰떡궁합처럼 여긴다.
포자(包子)만두는 주카망(中華まん)이라 해 호빵처럼 곳곳에서 판다. 딤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슈마이도 즐겨먹는다.
일반적인 만두는 중국인이 가장 잘한다. 볶음밥처럼 종주국 솜씨에 결코 따라갈 수 없는 메뉴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만두다. 모든 재료는 만두가 될 수 있고 또 그맛을 따라잡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요즘같은 때엔 삼치를 사다 어만두를 만든다. 만두에도 제철이 있는 셈이다.
중국에는 국수와 밥, 요리를 파는 식당이 있고, 아예 만두만 파는 만둣집이 따로 있는데, 이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무슨 규범처럼 철저히 지켜진다. 만두와 요리를 함께 파는 경우는 대형식당이거나 관광객을 받는 관광식당이다.
만둣집에서 밥 메뉴를 팔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만두가 바로 밥이기 때문이다.
중화요리 메뉴 중 ‘딤섬’(点心)이 바로 이런 소소한 식사에서 나왔다. 간편하면서도 필수 영양소는 모두 채울 수 있고 열량 또한 그럭저럭 충분하다. 특히나 피가 두껍고 폭신한 바오즈는 정말 밥처럼 느껴진다.
중국의 만두는 워낙 다양해 현지인도 놀랄만큼 낯선 것도 많다. 가끔은 밀가루 반죽을 밀어낸 피가 아닌 것으로 만두를 빚기도 한다. 채소 이파리나 생선살, 생선껍질, 닭껍질, 닭날개, 계란부침, 불린 해삼 등을 쓴다. 배춧잎으로 말아낸 만두는 따로 숭채만두라 한다.
둘둘 말아내면 만두가 되지 않는다. 사방이 막혀있어야 비로소 만두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유사한 소가 들었대도, 전병이나 춘권이라 따로 부르지 만두가 될 수는 없다.
중국 수교자(水餃子)는 이름 뜻 그대로 우리가 아는 물만두다. 다만 중국인들은 두껍고 넉넉한 피를 펄럭이는 만두를 수제비처럼 먹는다는 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한국에서 물만두란 간식이나 보너스 음식으로 취급받는다.)
크기가 작은 만두는 양은 적지만 저마다 강렬한 특색이 있어 사랑받고 있다. 새우나 채소 등을 넣고 쪄내 한입 크기로 맛볼 수 있는 샤오마이는 미식천국인 홍콩에서도 별미로 손꼽힌다.
작은 바구니(小籠)에 쪄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 샤오룽바오(흔히들 소룡포라 잘못 알고 있다)는 수많은 만두 종류에서도 가장 정체성이 확실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최근에는 ‘만두의 기본이자 딤섬의 시작’으로 알려지며 곳곳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냉장과 조리 온도 차를 이용해 육즙을 가둬 촉촉하고 진한 맛을 한입에 느낄 수 있다.
여러 이유로 한국에서 중국식 만두는 그 만드는 공에 비해 어처구니 없이 저렴하게 팔린다. 짜장면 서너 그릇만 주문하면서도 ‘군만두 서비스’를 기대하는게 현실이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 분)은 15년 간 좁은 방안에 갇혀 군만두를 주식으로 먹었지만 사실 그 군만두는 박철웅(오달수 분)가 부하들과 시켜먹은 짜장면의 ‘보너스’였을 뿐이었다는 게 너무도 잔인한 설정(?)이라며 관객들은 분노했다.
원래 화교 사회에서 만두란 공장에서 떼오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직접 빚어 만드는 것이기에 서비스로 줄 만큼 값싼 만두는 없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만두를 잘 빚기로 소문난 몇몇 화상(華商) 중국요리점이 만두 마니아의 입소문을 타고 기나긴 줄을 세우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직접 빚은 군만두나 찐만두, 부추합 등은 기존 공장 만두(?)와는 확연히 다르다. 솜씨 훌륭한 만둣집 덕에 이젠 만두가 제 값을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먹을까
●대문점=1968년부터 반세기 이상 영등포를 지키고 선 대문점은 만두와 오향장육만 파는 집이다. 다른 요리는 하나도 없다. 군만두 찐만두 고기만두 물만두 등 만두를 종류별로 팔고 오향장육과 족발을 중국식으로 내는 집이다. 직접 빚은 만두는 각각 특색이 있어 어느 하나 포기하기란 쉽지가 않다.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10길 30. 5000~6000원.
●연교=연남동 연교는 만두와 함께 간단한 요리를 파는 집인데 만두도 요리도 모두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다. 이름에 교(餃)가 들어가니 당연히 만두맛집. 물론 가장 인기있는 것은 샤오롱바오. 육즙 가득한 만두는 미각과 후각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한 면만 바싹 구워낸 성젠바오(生煎包)도 맛이 좋다. 가게는 몇 테이블 되지 않아 늘 대기와 포장 줄을 길게 세운다. 서울 마포구 연희로1길 65 1층. 6500원
●태산만두=대구 화교들도 만두를 잘한다. 특이한 점은 찐만두를 찐교스라 부르는데, 아마 교자(餃子)의 변형일테다. 태산만두와 영생덕이 유명하다. 영생덕은 찐교스와 고기만두, 태산만두에선 군만두가 인기다. 태산만두는 바삭한 군만두를 매콤한 무침과 곁들여 내온다. 간장만 슬쩍 찍는 대신 채소무침과 곁들여 아삭하고 바삭하게 즐긴다. 비빔군만두 비빔찜만두 등 대구만의 스타일 만두 메뉴도 있다.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 2109-32. 5000~5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