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 하드디스크 속 내 지난 여행의 진한 흔적들
잃어버린 여행, DCIM 폴더 속 내 지난 여행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리 얼마 안됐는데, 벌써 해외 여행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다.
며칠 전. 망각 속으로 숨어버린 내 지난 여행이 문득 궁금해졌다. 선풍기 앞에 누워 수박을 먹다 갑자기 팽겨치고, 내 모든 디지털 디바이스들을 가져왔다. 20TB(테라바이트)도 넘는 JPG의 심연 속에서 SSU요원처럼 추억을 캐기위해 헤집고 다녔다.
디지털 포렌식 수사라도 하듯 샅샅이 뒤져보진 못했지만 미처 예상치못한 많은 기억과 다시 조우해 무척이나 즐거웠다.
결혼식 사진 앨범이 특히나 그렇듯, 모두들 사진을 찍어 모아놓지만 대개는 잘 열어보지 않게된다. (코를 높혔거나 쌍꺼풀 성형이라도 했으면 필사적으로 닫아두게 된다.) 늘 새로운 사진에 덮혀버리는 신세가 ‘추억의 옛 사진’ 따위다.
그러다 어쩌다 본가 책상 서랍을 열어본 듯, 언젠가의 사진과 마주치게 되면 그리도 반갑다. 당장 벅찬 감동이 퐁퐁 솟아날 때도 있다.
냉동식품처럼 불변할 것만 같던 기억이 가물거리는 것을 보니 이미 마음 속으로 많이 버렸나보다.
6월이 지나면서 더욱 빠른 가속으로 소멸하고 있는 내 여행의 잔흔이 아쉬웠던 나머지, 난 사진을 정리하며 지난 여행을 ‘복기’해보기로 했다.
수많은 DCIM 폴더에는 명란만큼 많은 10*_PANA 들과 DSC_****들로 빼곡하다. 하나하나 숨을 참고 힘주어 찍었을 사진들의 (그저 공식적인) 명칭이다.
스페이스 바에 침을 묻혀(아날로그 감성) 한 두장 씩 넘겨보니 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있다.
독일 검은 숲(Schwarzwald)에서의 하얀 겨울, 그곳에서 만난 스키어의 고글에 가득 찬 활기.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부탄 팀푸에서 만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를 오랜만에 물끄러미 지켜봤다.
비록 얇은 디스플레이 액정이 가로막혀있었지만 난 이미 그 화상 속으로 살짝 들어갔다 왔다.
DCIM 폴더 역시 내 책상처럼 엉망이어서 여름과 겨울, 봄에다 해외, 국내가 혼재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그저 바라볼 뿐인데도 동화된다. 와글와글 수많은 메가픽셀이 합창하는 가운데 그 속으로 저절로 빠져드는 것이 퍽 신기할 뿐이다.
인도 코친의 여름 바다를 보며 덩달아 땀을 흘린다. 몸이 포스트잇처럼 끈적끈적해질 무렵,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 사진 폴더를 열어보니 당장 심장이 뛰었다. 어디선가 캐럴이 들려온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기 위해 추운 광장으로 몰려나온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의 시민.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며 빙빙 돌던 극동에서 온 중년 기자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다.
돌이켜봐도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코끝에 영롱한 콧물을 주렁주렁 달고다닐 정도로 추웠대도, 소금에 절인 지우개나 식용 코르크를 잔뜩 먹었어도 그땐 정말이지 즐거웠다.
이름이 좀처럼 외어지지 않던 핀란드 로미바에미, 아니 로바니에미(Rovaniemi). 고작 북위 66도33분의 이곳도 북극이라며 하얀 수염을 기른 산타가 있었다. 8월 여름날에도 동굴 속에 들어앉아 비싼 입장료를 지불한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팔았다.
그 산타는 몇 해가 지난 어느 겨울 비스타 워커힐에도 왔는데 나를 알아보지 못해 실망감을 내게 안겼었다는 것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아마도 비정규직 산타 몇 명이 수염을 갈아붙이며 로바에니미(뭐였지?)의 그 좁은 집에 들어앉아 있던 게 틀림없을 거라 생각하며, 난 루돌프 역시 마스크를 쓰고 찾아올 이번 크리스마스를 상상했다.
현지인이 등장하는 몇몇 사진은 죄다 몰래 찍은 것이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잘못하다간 시비가 붙거나 체포되기 십상이다. 특히 멋진 피사체 앞에서 연인이 얼싸안고 키스를 한다는 것은 여행작가에겐 행운이다. 자기가 하는 것보다 낫다.
고양이가 비둘기를 잡듯 멀리서 몰래 숨을 참아가며 다가가 스륵 셔터를 누르고, 못본 척 딴청을 부려야 한다.
얼마나 많은 숨을 참았던가. 아마 8개월 정도되는 시간 동안 호흡을 참았을 것이다.
사진을 보니 신문에 나왔던 ‘이쁜 그림’만 있는게 아니다. 고생했던 일들도 떠오른다. 안간다는 일행을 조르고 졸라 멀리 아틀란틱 로드까지 갔으며, 마분지 맛이 나는 빵과 우유, 식은 치킨 한 마리로 끼니를 떼운 적도 촬상소자에 남아있다. 아! 그 차가운 치킨의 맛이라니.
소위 음성지원도 된다. “배가 끊겼나요?, 아... 우린 거기 꼭 가야하는데요”하는 장면도 남아있다.
탐스러운 눈송이가 잘트부르크 게스트라데 거리에 내리고 있지만, 그 이상의 눈이 내 정수리에 쌓인 것은 아무도 모른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눈사람이 되버린 내 모습이 먼저 생각났다.
다른 외장하드를 열었다. 아예 코드조차 다른 옛날 방식이다. 기대가 컸다. 여기엔 무슨 내 일상이 정전기로 아로 새겨져 있을까.
추억의 무게와 깊이는 각각 나름 중했지만, 사진이 차지하는 메가바이트는 달랐다. 2018년 떠난 몽골 바양고비에 쏟아지던 별비는 13.4MB에 달했지만, 2005년에 갔던 키르기즈스탄 이쉬쿨 호숫가는 고작 3MB에 불과했다. 스크래치 디스크가 증발한 것은 아니고 카메라 성능의 발전이 가져온 차이다.
파일 크기야 어쨌든 추억의 무게는 다르지 않았다.
피지의 4000m 상공에서 기내식을 먹는 대신,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던 그 끔찍한 공포는 알씨(Al See) 클릭 한번으로 당장 되살아났다.
심지어 사진에는 없던 그날 밤 맥주 한잔 첫 모금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셀렉(작가들의 용어)’될 만큼 중요한 순간의 사진은 그 찍은 날 앞뒤의 일들도 단번에 소급해낼 만큼의 존재감이 서렸다.
기내식을 포함해 수많은 음식 사진을 넘겨보며, 그 맛은 일일이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분위기와 당시의 느낌이 포만감으로 이어졌다.
이중 몇몇은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노르웨이 베르겐에서의 오픈 샌드위치와 오만 무스카트 시내 고급 식당의 양고기 스튜, 일본 아오모리의 우유버터치즈라멘, 서호주 원주민 야생식사 체험에 나온 애벌레.
이 메뉴들은 차례대로 가격과 냄새, 칼로리, 식감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재현됐다.
단지 스크래치 디스크 몇 개를 뒤졌을 뿐인데 장도의 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캐리어 대신 외부저장장치를 풀었고 휴대전화기의 갤러리 폴더를 거꾸로 뒤졌을 뿐이다.
그저 몇 백원의 전기세만 들였을 뿐일테지만 당시 느꼈던 감동까지 그대로다. 심지어 시차까지 느껴진다(잠을 설쳤으므로).
DCIM으로 떠난 여행. 짧은 시간이지만 꽤 보람차게 즐길 수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