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우리는 콩을 먹지않고도 하루를 살 수 있을까.
바야흐로 콩 수확철이다. 지금부터 거둬들인 콩깍지를 까며 단백질 여유로운 겨울을 준비한다. 한국인의 오랜 일상이다.
늦봄과 초여름 한켠에 심어둔 콩을 가을에 거둬들여 일년 내내 허기를 견뎠다. 게다가 맛까지 냈다. 대표적 두장(豆醬)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은 콩으로 메주를 쑤고 된장과 간장을 담가 맛과 에너지를 얻어왔다.
당장 오늘 받아든 밥상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콩밥에 된장찌개, 콩자반, 콩나물, 두부 등이 있지 않았을까. 밥에 청국장을 얹고 숙주나 콩나물을 쓱싹 비벼 먹었다면 거의 콩이 일상 끼니를 책임진 셈이다.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니다. 간장으로 양념하고 된장을 넣어 버무린 음식이라도 있었을게다. 장조림, 생선조림, 나물 무침이나 된장박이 등이 죄다 콩이 들어간 요리다. 뭔가 기름을 두르고 굽거나 튀긴 반찬이 있었다면 대두유를 맛봤을 확율이 높다.
난 오늘 반찬없이 라면(국수)을 끓여먹었는데요
라고 반문할 경우에도 해당한다. 국수에 든 유부나 라면 건더기 스프 속 고기처럼 생긴 것은 모두 콩 단백질이다.
콩 없이 하루를 살긴 힘들었다. 그만큼 한국인은 콩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또 다시 웰니스 현상과 함께 그 연을 깊히 맺어가고 있다.
'콩알만한'것에 어찌 그리 큰 매력이 숨었을까
동아시아의 대표적 작물인 콩은 세계 3대 곡류에 들지 못한다. 쌀과 밀, 그리고 신대륙의 옥수수가 콩 대신 든다. 몇천 년 전 기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인류의 재배 역사도 길고 재배 면적도 넓지만 ‘근본이 없는(?)’ 옥수수에 밀렸다.
자체만 그대로 주식으로 삼지 못한다는 점이 콩이 3대 곡류에 끼지 못한 큰 이유다. ‘콩가루 집안’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점성이 부족해 다른 곡물과 섞거나 물리적 화학적 변형을 가해야 한다.
메밀국수와 밀면은 각각 메밀과 밀로 국수를 뽑아낸 것이지만 콩국수는 콩물에 말아낸 밀국수를 말한다.
대신 특유의 높은 단백질 함량과 고유의 맛으로, 다양한 식재료로의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이 콩이 가진 큰 장점이다.
소화율을 높이기 위해 단백질만 추출해 두부를 만들거나 싹을 틔워 나물로 기르기도 한다. 또 볶고 가루를 낸 콩고물로 다른 음식에 맛을 더하기도 한다. 버릴 것도 없어 효율이 좋다. 두부로 단백질을 추출하면 콩비지가 남고, 기름을 짜고나면 대두 단백이 남는다.
경상도에서 주로 먹는 콩잎 장아찌는 낙엽(?)과 비슷한 식감에 특유의 삭힌 맛이 좋아 추억의 음식으로 통한다.
약간의 가공을 통해 유부나 유바(湯葉 두부껍질), 두부피, 식물성 고기 등 육류와 비슷한 맛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콩고기’라 불리는 대두 단백 성분 대체육에는 아미노산과 아르기닌 등이 들어있어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다.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콩고기’는 생각보다 역사도 길다. 중국과 일본 등에선 과거 사찰에서 다양한 콩고기를 만들어 먹었다. 조리기술도 대단해 고기와 다름없는 모양과 맛을 내는 경우도 있다. 중국과 대만, 일본 사찰의 정진요리나 홍콩의 자이루웨이(齋滷味) 등이 그것이다. 콩에는 다른 곡류에는 부족한 단백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곧 맛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아미노산 중 ‘감칠 맛’을 내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은 분해되면서 단맛을 내고 지방에는 고유의 느끼한 지방맛(oleogustus)이 있다. 단백질은 감칠맛을 낸다.
고대 로마의 젓갈인 가룸과 메콩 강 유역의 남쁠라나 느억맘(fish sauce) 등 어장(魚醬) 문화권에서도 오래 전부터 발효과정을 통해 감칠맛을 얻었고, 유목민들은 낙농 유제품에서도 좋은 맛을 찾을 수 있었다.
된장을 얻는 과정에 생산되는 것이 간장이다. 된장, 간장이나 피시소스(액젓)는 원리가 같다. 단백질을 분해시켜 맛을 내는 아미노산을 얻는 것이 장을 담그는 주된 목적이었다.
특히 우리 선조들은 콩으로 메주를 쑤고 빚으며 조그만 콩알 안에 숨어있는 맛을 찾아내려 했다.
메주의 역사는 무척 길다. 삼국사기에도 나올 정도다. 그 이전에도 고구려의 장이 특히나 맛있다고 기록한 중국 고서(정사 삼국지)가 있다.
메주를 담그는 일은 무척 손이 가는 작업이다. 메주콩을 불려 삶은 다음 이를 으깨야 한다. 다시 네모지게 빚어 말리는 시간을 거친다.
‘시간의 맛’이다. 된장을 얻기 위해선 메주를 소금물 독에 띄워 발효시키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발효시킨 소금물은 간장이 되고, 메주는 꾸덕한 된장으로 바뀐다.(된장 이름의 유래 역시 되다랗다는 뜻이다)
발효를 거친 후 간장과 된장에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와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은 궁핍한 농경민족의 식탁에 든든한 밑반찬이 됐다.
봄이면 된장찌개에 냉이를 넣고 여름이면 다슬기와 우렁을, 또 가을엔 미꾸라지를 갈아 넣었다. 부추와 우거지, 시래기 등 밭과 들, 강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산물을 넣고 끓여도 언제나 맛이 좋았다. 영양가 든든한 찌개로 또는 국으로 거친 밥 한 끼를 넘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군대 시절을 떠올려보면 알겠지만 지금도 한식의 기본은 된장이다. 김치찌개나 고추장찌개는 된장에 입맛이 떨어질 때 차리는 대체재였을 뿐이다. 고추를 사용한 음식의 역사도 길지 않다.
맛도 좋지만 몸에도 이롭다. 그냥 가지고 다니다 먹으면 꽤 영양가 높은 식량이 된다. 그래서 옛날에는 군인들이 가지고 다녔다.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제에 수시장(水豉醬)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볶은 콩을 삶아 띄운 것을 말려서 필요할 때 물과 소금을 섞어 먹는다고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청국장을 온돌이나 볕에 말려 종이에 싸서 보관하다 필요할 때 불려 쓸 수 있다고 했다. 어찌보면 인스턴트 즉석식품의 기원이었다.
국은 기본적으로 된장국을 의미할 정도로 늘 미소(味噌)를 상식하는 일본의 고서에 흥미로운 기록이 등장한다. 에도시대 정치가이며 유학자인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1717년 쓴 동아(東雅) 중 장조(醬條)에 따르면 “예전에 고려의 장인 말장(末醬)이 일본에 들어왔는데 고려 북쪽 방언인 ‘미소’로 부른다”며 미소(일본 된장)의 유래에 대해 썼다.
만주가 원산지인 대두와 이를 이용한 두장의 전래 경로가 한반도였다는 뜻이다. 이전에도 ‘말장’에 대한 서술이 등장한 것으로 볼 때, 일본에서 최고 유행한 음식인 ‘된장과 간장’은 한반도를 통해 전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말장이란 간장을 빼고 난 마지막 장이란 뜻이다.
현재 세계에서 간장 된장의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인구수에서도 차이도 나지만, 고추장, 고춧가루, 액젓 등 기타 조미료의 소비가 많은 한국에 비해 대부분 일식에선 양념으로 간장을 쓰고 끼니마다 된장국을 마시는 탓이다.
특히 간장. 지극히 사랑하다 못해 수많은 관련상품을 생산했다. 계란프라이 전용, 생선회 전용, 메밀국수 전용 간장 등 다양한 간장이 출시된 곳이 일본이다. 국내 제과업계에선 내세우지 않는 ‘간장 맛(醬油味)’ 과자가 일본에선 기본 맛에 속한다.
다만 일본의 간장은 콩만 쓰는 것이 아니라 쌀과 밀, 보리 등 다양한 곡물을 쓴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또 메주를 쑤고 띄우는 과정이나 누룩 발효 과정이 없이 바로 단백질을 산분해한 것을 쓰는 경우가 많다.
간장에는 공법 상 5가지 종류가 있다. 조선간장으로 알려진 한식간장과 양조간장, 혼합간장, 산분해간장, 효소분해간장 등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간장에 대한 명칭 논란이 한창이다. 메주나 누룩(麴菌)을 쓴 한식간장 등 발효간장 이외에는 간장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 없고 산분해간장은 아예 ‘아미노산액’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혼합간장 제품에 산분해간장과 양조간장 비율을 표시하도록 행정예고 한 바 있다.
한편 간장은 생각보다 칼로리가 높다. 예전 한식 상차림에서 5첩 반상이나 7첩, 9첩 반상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간장종지다. 고소한 간장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밥을 삼켰다.
세종 때 한양도성 건설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간장국을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수성하던 조선군 식량 기록에 ‘쌀 1만 섬, 간장 100 항아리’가 나오는데 이는 간장을 굉장히 중요한 반찬이자 식량으로 여긴 것이다.
지금도 오랫동안 종갓집에서 내려오는 씨간장의 경우 1리터에 몇 천만원이 넘는다. 고급 위스키 이상의 가격이다. 비싼 모든 재화가 그렇듯 대대로 내려온 희소성이 더해진 가치다.
콩은 한국인의 주식(主食)이라 쳐도 어색하지 않을 작물이다. 그래서 콩과 관련된 말도 많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 “콩 심은데 콩난다”, “눈에 콩깍지를 씌웠다”,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못믿는다”. “가뭄에 콩 나듯”,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 등 콩에 연유한 속담이 유독 많다.
오죽하면 장기에도 콩팥(kidney)이라 붙였을까.(참고로 팥도 분류 상 콩과에 속한다.)
‘알콩달콩’이나 콩쥐팥쥐 설화도 콩에서 그 말을 따왔다. 현대에 들어서도 그렇다. 만원버스는 콩나물 시루에 비교했다. 또 키 작은 이를 가리켜 ‘콩알만하다’ 또는 ‘땅콩’이라고도 한다.(반대로 키크고 마른 이에겐 콩나물 같다고 이른다) 화목하지 않고 반목하는 가정을 힐난할 때도 ‘콩가루 집안’이라고 쓴다.
좋을 때도 나쁜 때도 말에 콩이 들어갔다. 우리 삶은 언제나 콩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를 제외하고 콩은 그리 인기 있는 작물은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대체적으로 콩을 대체할 수 있는 유단백과 고기, 생선을 충분히 생산했을 뿐 더러, 콩 특유의 비린내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콩깍지 속 알알이 박힌 콩의 생김새도 징그러워 했다.
하지만 중남미에선 달랐다. 옥수수와 감자를 키우며 제법 넉넉한 탄수화물은 구했대도, 단백질은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이다. 17~18세기가 되서야 아시아로부터 전래한 콩으로 조리한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각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디서나 쉽게 잘 자라는 콩은 소중한 식량자원이었다.
미국에서도 인기가 좋은 칠리 콘 카르네, 프리홀(Frijol), 페이장(feijao), 페이주아다 등 중남미 각 국가 별로 전통 콩 요리가 있다.
아랍권에서도 병아리콩을 갈아 만드는 훔무스가 있고, 세계 정복을 위한 강력한 군대를 유지했던 영국인들은 해군 군량으로 쓰던 베이크드빈스를 지금도 아침식사로 즐겨먹고 있다.
하지만 역시 동북아시아의 콩 섭취에는 따라갈 수 없다. 중국인들의 아침은 으레 두유 격인 또우장(豆醬)으로 시작하며, 일본은 콩을 삶아 발효시킨 시(豉), 즉 낫토(納豆)를 그대로 밥에 얹어먹는다. 물론 두부, 두반장, 첨면장, 미소(味噌), 쇼유(醬油), 모야시(萌やし.숙주나물), 에다마메(깍지콩) 등도 매일같이 즐긴다. 그들도 한국인 못잖게 일상 속에 콩을 상식하며 살아왔다.
산업화 세계화 시대를 거치며 각국의 맛난 식재료가 날아들어 우리 식탁과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수천 년간 콩이 우리 유전자에 전해준 영양 덕일까. 오늘도 우리 밥상에는 여전히 어떤 형태로든 콩이 있고 그 맛도 변함없이 좋다.
늙어서 부리는 욕심, 즉 노추(老醜)를 경계하자는 노마염태호(老馬厭太乎)란 말이 있다. 원뜻은 “늙은 말이라고 어찌 콩을 마다할까?”다.
알알이 콩을 거두고 있는 이 풍요롭고 하늘깊은 가을엔 그 말이 어째 다른 뜻으로 들린다.
<놀고먹기연구소장> www.playeat.net
●‘발효의 미학’ 된장 양평동 또순이네=서울에서 된장찌개하면 이름에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이집이다. 봄에는 냉이나 달래, 그 이후론 부추를 넣고 숯불에 보글보글 끓여낸다. 소고기 베이스로 진하게 우려낸 육수가 끊임없이 밥을 부른다. 몇 숟가락 얹고 밥을 비비면 구수한 된장맛에 매료돼 얼마나 많이 먹고있는지 잊을 정도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로47길 16. 6000원.
●‘부산물의 승리’ 간장게장 태안 솔밭가든=까먹기 귀찮은 꽃게와 간장이 만나 밥도둑의 원조 격이 됐다. 짭조롬한 간장에 재운 암꽃게 속에는 샛노란 알이 한가득 들었다. 살을 쭈욱 짜내면 부드러운 살이 솜사탕처럼 피어난다. 게딱지에 밥을 비비자면 세상이 제것이 된 기분이다. 간장게장은 태안이 잘하고 그중에서도 솔밭가든이 맛있다고 소문났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 장터로 176-5. 2만5000원(게장정식).
●‘면이 아니라 내가 주연’ 콩국수 전주 주마본=콩을 즐겨먹는 전주에서도 콩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있고, 상호도 외우기 버겁지만 많은 이들이 어찌 알고 찾아온다. 진하다 못해 늪처럼 걸죽한 콩물에 칼국수 면을 말아내고 콩가루까지 듬뿍 얹는다. 비린내는 어디가고 고소한 맛만 남은 콩물은 면과 함께 입속을 풍미로 가득 채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용머리로 36. 8000원.
●‘콩의 변신’ 순두부 정원순두부=서소문에서 50년 가까이 순두부를 팔아온 집이다. 여들한 순두부와 고기를 넣고 한소끔 끓여낸 뚝배기는 매콤하고 고소하며 또 시원하다. 갓 지은 돌솥밥과도 어울린다. 후후 불며 떠먹고 비벼먹는 한술 한술에 꽤 넉넉한 솥밥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언제나 긴 줄을 세우지만 금세 빠지니, 못참고 발길 돌리는 것보다야 남는 장사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11길 33. 8500원.
●‘속성의 향기’ 두림 청국장=콩 전문 레스토랑이니 손두부며 전골이 모두 맛있다. 청국장을 점심에 내는데 이 또한 구수하다. 특유의 정겨운(?) 냄새는 나지 않아 아쉽지만 깍뚝 썬 무와 두부, 수저를 뜰 때마다 알알이 건져나오는 청국장에 밥이 잘도 넘어간다. 비빔그릇도 필요없이 그저 밥 위에만 끼얹어 먹어도 좋다. 서울 종로구 종로7길 29-17.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