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의 삶에서 겪은 다소 나른한 조바심

차가운 세상속 미지근한 점심 한끼

by 이우석 더 프리맨

구직센터를 다녀오는 길, 다행히 눈은 쌓이지 않았다.

버스에서 잘못 내렸다. 합정역에 내렸어야 한다.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고 한참을 걸었다. 철핀은 슬개골 안쪽에 그대로 박혀있다.

일년이 지났지만 이물감은 여전하다.

큰 길에 멈춰섰다. 역과 정류장 주변 금연구역 통제선이 미처 점령하지 못한 틈새다.
그래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한 개비 담배를 피우며 눈으론 커피숍을 찾아봤다. 점심약속에 40분이나 남은 탓이다.

“왜 할리스는 스타벅스와 같은 가격을 받는걸까”

당뇨를 앓는 오십의 실직 사내가 갈 곳이라곤 싸구려 커피숍 밖에 없다. 주문은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는 양과 온도로 마시는 것. 잠깐 망설였다 결국 레귤러 사이즈를 시켰다.


스웨덴어처럼 자모가 복잡하게 얽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몇번이고 누르느라 40분은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테이크아웃으로 시켰으면 1500원인데 괜히 2000원을 냈다. s와 a, 낯선 수열을 자판에서 찾느라 500원과 배터리를 낭비했다,

밥을 사준다는 이는 20분이나 늦었고, 그게 미안했는지 "아무데나 가자"고 해서 한번도 간적 없는 설렁탕집(다시는 안갈)에 들어갔다.

점심은 그야말로 점심點心이다.
정말 마음에 한점이 된듯, 진국이라 오히려 불쾌한 설렁탕 속에 고기는 한점에 불과했다.


미지근한 국물은 뜨는 둥 마는 둥 대파만 건져먹으며 “세상은 춥다, 경기는 어렵다”는 역시 따뜻하지 않은 얘길 들었다.

혈당과는 상관없는 현깃증이 인다. 마지막에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듣지 않았지만 충분히 유추할 수 있어서다. 말투까지 흉내를 낼 수 있다.

서둘러 일어서 두 행선지로 나뉘는 자리, 문득 좋은 커피가 먹고 싶어진다.

이번엔 파스쿠치를 갔다. 모두들 공부 중이다. 열 댓명이 있었지만 모두들 시선이 다르다. 비슷한 얼굴에 다양한 노트북과 마주하고 있다.(얼마전 구입한 내 한성컴퓨터는 없었다.)

이곳에서 최소한 검판사라도 몇 명 나올 기세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주문했지만 큰 소리나는 기계로 원두를 갈았다. 왠지 말소리를 내면 안될 것 같아서 해피포인트가 있다고 말하지도 못했는데....

왠지 미안해 어쩔바를 모르겠다.

원두는 진하고 쌉쌀했다. 이전 것보다 낫다. 역시 최소한의 돈은 있어야 기분이 좋아지는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우린 털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