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털고 나왔다.

종이가 없는 삶

by 이우석 더 프리맨

<우린 털고 나왔다>

"거 실례합니다." 고작 50cm 정도? 옆간에 있던 사내A가 말했다.

사내B "편히 말씀하세요"

사내A "혹시 거긴 휴지가 있습니까?"

사내B(한참을 뜸들이다 놀란 목소리로) "아… 반칸 정도가 마분지에 붙어있을 뿐이군요"

사내A "아휴, 참 건물 관리하고는…", "그쪽은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사내B "난감하군요. 무슨 종이같은건 아예 없네요"

사내A "저어… 채윤이 만들었다지요, 종이는"

사내B "애초 중국산이군요. 5000년 전에는 이집트 파피루스가 있긴 했지요"

사내A "양피지나 파피루스는 비쌌을테니 어차피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겠군요. 그때도"

사내B "하하 지금의 우리랑 같네요. 종이가 없이 산다는 것은"

사내A "주변에 연락하면 당장 달려와 줄 독지가가 계십니까?"

사내B "초행길이라…"

사내A "귀타귀처럼 펄쩍 뛰어서 종이를 가지러 다녀오면 좋을텐데요 ㅎㅎㅎ" "귀타귀 아세요?"

사내B "알고말고요, 고등학생 시절에 국도극장에서 봤습니다"

사내A "아, 그럼 형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다. 전 이제 마흔입니다"

사내B "휴… 불혹에 벌써 종이 없는 삶이라니요, 힘내세요" "그땐 신문이라도 많이 봤지요. 그럼 그걸 줏어다…"

사내A "엉덩이에 기사가 찍혀나오기라도 했을텐데, 낄낄"

사내B "그땐 엉덩이만도 못한 사건 기사들도 많았지요, 아휴 옛생각나네"

사내A "잠시만요 형님, 지금 우리에겐 변화가 일고 있어요"

사내B "뭔가요? 아우님"

사내A "마르고 있어요. 급격히"

사내B "아, 그렇군요. 저도 그래요 원래 수분이 별로 없었어요. 대장이 좋은터라"

사내A "용종이 없으면 수분흡수가 잘되지요."

사내B "의사신가요?"

사내A "아닙니다. 건강다이제스트를 구독하거든요"

사내B "아, 지식으로 몸을 구제한다는 그?"

사내A "네, 형님"

사내B ""아우님, 이제 나갑시다, 모두 다 털어버리고"
(찰싹 찰싹 허벅지를 때리는 소리)

사내B 사내A (동시에) "난 다 털어버렸습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닫힌 문을 박차고 일어서자구요"

(나와서 어깨동무를 하는 두 사람)

사내A 사내B "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멀어진다)
F.O

B.G.M이 깔리며 엔딩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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