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푸드로지] 올댓대구, 그 시원한 맛에 대하여
절로 입이 딱 벌어지는 큰입 생선의 맛, 대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1월, 바야흐로 대구의 시즌이다. 세계적으로 대구처럼 인기있는 생선은 드문데, 현재는 물론 과거에도 그랬고 동서양이 모두 좋아하는 생선이란 점이 눈을 크게 뜨고 볼 만한 사실이다.
잡기 쉽고 커다란 살집을 지닌 대구는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단백질을 상당 부분 책임졌지만, 그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고 부지불식 간에 침략을 돕기도 했다.
그 큰 입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은 대구의 맛에 대해 알아봤다.
바이킹은 말린 대구를 비상식량 삼아 배에 가득 싣고 멀리 노략질을 다녔다. 스페인 바스크(Basque) 인들은 대구떼를 따라가다 신대륙(북미 뉴펀들랜드 지방)을 발견하기도 했다.
서방 세계에서 자찬하는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 사실은 침략의 시대)의 원동력도 대구였다. 만약 말린 대구가 없었으면 ‘발견’도 ‘침략’도 어려웠다. 눈치빠른 한자(Hansa)동맹의 상인들은 노르웨이 베르겐에 당시 북해의 최고 히트 상품인 대구를 서남 유럽으로 유통하는 ‘창고형 물류센터’ 브리겐(Bryggen)을 짓기도 했다.
그만큼 대구는 유럽의 대표 어종으로 군림했다. 예전에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 해양국가에선 빵먹듯 대구를 먹었다. 일년 내내 보관해야 하니 해변에는 마치 우리네 황태덕장처럼 대구를 말리는 덕장을 지었다. 제철이 겨울인 대구는 북구(北歐)에서도 공중에 매달린 채 눈을 맞으며 정말 황태처럼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계절의 맛이 들어간다.
20세기 초 대구 어장을 놓고 아이슬란드와 영국이 벌인 대구 전쟁(cod war)는 당시의 냉전(cold war)만큼 심각했다. 물러설 곳 없는 아이슬란드는 단교와 선전포고를 거듭하며 대구 어장을 지켜냈고, 이때 이뤄진 것이 지금도 국제적 통용되고 있는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대구가 귀해진 탓에 한때 생대구는 최고의 값을 받았다. 연근해산 대구탕 한 그릇에 만원을 상회, 복어 값을 대번에 뛰어넘었다. 이후 연근해 치어 방류사업을 꾸준히 펼친 덕에 지금 많이 회복했지만 유럽에선 지금도 대구가 예전만큼 잡히지 않아 상당히 귀한 상태다.
대구는 대표적 한류성 어종으로 겨울에 잡히며 맛도 좋다. 대구과에 속하는 대구는 입이 커서 대구(大口)다. 조상들은 얼마나 대구를 즐겨먹었던지 한자를 합쳐놓은 대구 ‘화(夻)’자도 지어줬다.
아귀 만큼은 아니지만 입이 크고 몸짓이 빨라서 아무거나 쓱쓱 삼켜버린다. 배를 갈라보면 가끔 작은 물고기와 게, 새우 등이 나올 때도 있다. 당연히 살도 투실하고 크기도 크다. 1m가 넘는 놈도 있다. 알은 명태보다 작지만 내장은 큼지막하다. 야행성이라 밤에 바닷속 포식자로 활동한다.
살이 담백하고 비리지 않아 생선을 즐기지 않는 이들도 꽤 좋아하는 어종이다. 특히나 씹는 식감과 고소한 맛이 좋고 크기도 커서 포를 뜨면 다양한 음식으로 재가공할 수 있다.
한국의 생선전과 영국의 피시앤드칩스는 주로 대구로 만들었다.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 중 이만큼 유용한 것도 없었다.
대구로 국을 끓이면 특히나 고소한 맛이 좋은데, 국내에선 대구탕, 서양에서도 피시 수프 재료로 많이 쓴다. 노르웨이 베르겐 어시장에선 대구로 만든 피시 수프와 피시 케이크(어묵)를 곁들여 파는데 감칠 맛이 아주 좋다.
우리나라에선 대구를 아주 오래전부터 먹어왔다. 1500년 전 경북 고령 대가야 유적에서도 대구 뼈가 출토됐다. 워낙 어획량이 많았고 기름진 생선에 비해 잘 부패하지 않는 덕에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까지 유통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대가리를 내장, 콩나물 등과 함께 찌는 대구 뽈찜(뽈때기찜)은 씹는 맛도 좋은데다 요리조리 먹을 것도 많이 붙었다. 값이 상당히 나가는 까닭에 뽈찜과 뽈탕은 고급요리 축에 든다.
(국내에서 많은 생선이 그렇지만) 대구는 버릴 것이 거의 없는 생선이다. 커서 그렇다. 따로 떼내면 죄다 먹을 만한 양이 나온다.
대구요리 중 가장 이름난 것은 역시 대구탕. 여기서 맑은탕과 매운탕 등 기호에 따라 나뉠 뿐 대부분 탕으로 먹는다.
복국에 견줄 정도로 시원한 국물에다 뼈가 많지 않고 발라내기 좋은 살점은 수저로 긁어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명태보다 크고 단단한 살은 간장에 찍어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해장에 이만한 것도 없다. 반쯤 말린 대구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반건 대구탕은 더욱 구수하고 감칠맛이 더하지만 향이 진해 호불호가 갈린다.
특히 대가리를 넣은 뽈때기탕으로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어두육미(魚頭肉尾)는 아마도 대구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거제도 외포항 쪽에는 대구회를 팔기도 하는데 활대구는 살이 부드러워 살짝 말리거나 얼려서 썰어야 한다.
대구찜(뽈찜)은 아귀찜처럼 콩나물과 미나리, 매운 양념을 더해 중불에 볶아낸 음식인데 기름기없이 담백하고 칼칼한 맛으로 즐긴다. 자작한 국물을 머금은 대구 대가리는 씹는 맛도 좋아 안줏감으로 썩 훌륭하다. 특히 아가미 위쪽 살점은 킹크랩 주먹살처럼 쫄깃하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원래 경상남도에서 주로 먹던 요리라 배초향(방아잎)이 들어가기도 한다.
서양에선 주로 염장대구를 먹는다. 굽고 튀기고 삶고 으깨고 자작하게 스튜처럼 조려 먹기도 한다. 대구를 즐기는 포르투갈에선 ‘바칼라우(bacalhau)’란 이름의 대구 요리가 수천 가지가 있을 정도로 대중적 식재료다.
사실 바칼라우는 ‘염장 대구’ 자체를 의미한다. 이탈리아는 바칼라(baccala), 스페인은 바칼라오(bacalao), ‘테스형’이 살던 그리스에서는 역시 바칼리아로스(bakaliaros) 등 죄다 비슷하게 부른다.
염장하지 않고 통째 바람에 말리는 것은 스톡 피시(stock fish)라 한다.
염장건조를 하다보니 단백질이 변형돼 짭조름한 맛이 감칠맛으로 변했다. 간고등어와 비슷한 원리다. 이 때문에 남유럽에선 염장건조한 대구를 조리한 요리가 다양하게 발달했다.
염장대구 뿐 아니라 대구가 많이 나는 북해 황금어장을 보유한 노르웨이의 단단한 스톡피시를 두들긴 다음(이것도 우리와 유사하다) 치즈와 우유, 향신료 등을 첨가해 끓이는 요리도 널리 퍼졌다. 토마토 소스에 조리거나 볶아도 먹고, 대구 살을 으깨서 감자와 섞어 빵에 발라먹기도 한다. 말린 대구를 알칼리성 수용액에 담가 젤리로 만드는 노르웨이 루테피스크도 별미로 꼽힌다.
유럽에서도 역시 대구는 크리스마스 등 겨울에 주로 먹는데, 같은 종류의 생선에 맛이 드는 ‘제철’이야 대서양이나 태평양의 것이 서로 비슷한 덕이다.
찬 바람이 몰고 온 싱싱한 대구떼. 그 부드러운 살 한점과 시원한 국물 한 모금이면 새해 어떤 모진 풍파가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을 듯 든든하다.
<놀고먹기연구소장> www.playeat.net
어디서 먹을까?
◊신성=노포가 득실한 서울 무교동 다동 일대에서 오랜 시간 입맛을 사로잡아온 일식 노포다. 일식의 형태를 띠지만, 결국 제철 음식을 제때 조리해내는 남도 음식에 가깝다. 보리굴비 맛집으로 소문난 맛집이다. 겨울엔 생대구탕을 내는데 이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생선회 등 작은 요리를 곁들인다. 투실한 대구 조각과 미나리, 애호박 등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낸 맑은 탕이 인기다. 서울 종로구 무교로 42. 2만원
◊자원대구탕=삼각지를 이른바 ‘대구탕 골목’으로 이끈 대표 노포다. 식사로도 좋지만 저렴하고 푸짐한 안줏감으로 더욱 인기다. 커다란 대구 도막과 이리 등을 인심좋게 넣고 미나리 등 채소를 한가득 올려먹는 전골집이다. 칼칼한 양념 육수에 팔팔 끓여낸 대구살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면 부드럽고 고소하게 목을 타넘는다. 슈크림처럼 부드러운 대구살을 바삭하게 튀겨낸 대구 튀김도 빼놓을 수 없고, 기본으로 내주는 아가미 젓갈도 연신 젓가락을 잡아끄는 별미다. 내장 추가하면 국물은 더욱 깊어지고 건더기는 계속 새것이 되니 경제적이기도 하다. 사리를 말고 밥까지 볶아 먹으면 든든하다. 이 덕에 수 십년 째 단골이 많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2가길 6. 1만1000원.
◊무교원 원대구탕=윗집이 술을 부르는 대구집이라면 이 집은 그야말로 해장에 완벽하게 대응하는 한 끼 대구탕이다. 별로 든 것도 없다. 커다란 살코기 덩이와 반달 모양으로 썰어낸 무, 대파 몇 개가 떠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국물 맛이 기가 막히다. 술이 다녀간 흔적을 싸그리 쓸어낸다. 시원한 국물에 밥을 말아 그대로 훌훌 마시면 된다. 기름기가 모자란다면 계란말이로 보충해도 된다. 대구라는 생선이 존재하는 이유는 참 다양하다. 술과 따로 뗄 수가 없는 존재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11길 42. 1만원
◊부산 속씨원한 대구탕=과거 해운대 여행갔던 이들로부터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탄 집. 대구탕 국물 맛이 시원도 아니고 ‘씨원’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해운대 풍경에 취해 간밤 술자리를 즐겼다면 이 국물이 약이다. 해장의 제왕이라는 복국과 견주어도 가히 겨룰만 하다. 맑은 탕이 상에 오르면 의관을 정제(?)한 후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리고 국물부터 마신다. 목을 타고 위까지 흘러드는 뜨거운 국물이 당장 지친 몸을 되살린다. 떠먹는 것보다 들이켜보는 것이 낫다. 국물도 칼칼하고 김을 곁들여 먹는 것도 참 마음에 든다.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62번길 28 새아침맛집 1만1000원.
◊광화문 몽로=정통 이탈리아식 바칼라를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레스토랑. 이 겨울 바칼라를 즐긴다면 항공 삯을 아낀 셈이다. 염장 대구살(baccala)을 으깨 감자, 병아리콩과 함께 섞고 익힌 다음 치즈를 뿌려낸 음식이다. 무의미하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바칼라 만테카토(baccala mantecato). 형태마저 사라진 대구살(정확히는 대구포의 살)이 치밀하게 들어가, 포크로 잘라내면 아주 고소하고 부드러운 스프레드가 된다. 갓 구워내 바삭한 치아바타 빵에 발라먹는다. 겨울을 맞아 이탈리아에 놀러간 것처럼 우아한 한 끼 식사를 즐겨도 좋고 와인과 곁들여도 아주 궁합이 맞는다. 4인 이하 여럿이 식사를 할 때 모두가 파스타를 주문한다면 이때 바칼라를 주문하라. 꽤 그럴싸해 봬기도 하고 정작 맛있게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40. 2만3000원.